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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고전번역원과 함께 읽는 승정원일기<31>-한 번뿐이었던 어연…하나하나 감독했던 영조
조선시대 궁중에서 베푸는 연회로는 회례연(會禮宴), 풍정(豊呈), 진연(進宴) 등이 있다. 회례연은 설날이나 동짓날에 임금이 신하들의 노고를 치하하는 것이고, 풍정은 임금의 탄신을 경축하고 축수를 올릴 때 여는 것이다. 중종 이후로는 풍정 대신에 그 규모를 줄인 진연을 자주 시행했다.


영조는 대비를 위한 진연은 했지만 자신을 위한 연회는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영조 19년(1743) 9월 16일, 창경궁 명정전에서 어연(御宴)을 거행했다. 영조의 보령 50세를 맞아 신하가 경축하고, 임금은 신하들에게 답례한다는 두 가지 의미가 있는 어연은 조선시대에 한번뿐이었던 연회였다.

숙종이 보령 50세를 맞아 진연을 설행했던 전례를 따라 신하들이 영조에게 진연을 청하면서 어연의 논의가 시작됐다. 영조는 흉년이 들어 백성들이 고달프다는 등의 이유로 거절했지만 신하들의 요청과 인원왕후의 권유에 결국 진연을 허락했다.

진연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영조는 임금과 신하가 함께 마음을 나누는 자리이므로, 연회를 올린다는 ‘진(進)’자 대신에 임금과 함께 한다는 의미로 ‘어(御)’자를 써서 ‘어연’이라 명명하고 의식도 간소하게 줄였다.

어연의 모든 과정은 《승정원일기》에 기록영화처럼 자세하게 남아 있다. 재미있는 것은 행사가 진행되는 중에도 영조의 감독과 지시가 계속 이어진다는 점이다. 영조는 백관들이 계단 위에서 절을 하는 것은 실례라고 지적하면서 도감 당상을 엄하게 추고(심문)하라고 하고, 또 명정전에 군복을 입은 사람이 마음대로 다니는 것을 지적하면서 해당 중관(中官)을 엄하게 추고하라고 한다. 그리고 효종(孝宗)의 사위로 당시 92세인 박필성이 술잔을 올리자 그에게 자손들의 부축을 받아 술잔을 올리라고 지시하는 내용 등이 중간 중간에 삽입되어 있다.

이날 행사에 대한 기록이《영조실록》에도 실려 있으나, 그 내용은 매우 소략하다. 반면에 《승정원일기》에서는 술잔을 올릴 때 언제 어떤 음악을 시작하고 그치는지, 언제 무슨 춤을 추는지까지 기록되어 있다. 조선시대 궁중 잔치를 오늘날에도 그대로 재현할 수 있게 해 주는 소중한 기록 유산이다.

강대걸(한국고전번역원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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