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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자기 작가 이수경 ‘믿음의 번식’ 개인전] “붓질의 그루브 위해 경극 춤 배웠죠”
동물사체 위 정면응시하는 신선 등
최면 통해본 전생과 그 전생의 전생…
회화로 담아낸 ‘전생역행 그림’ 이채
‘그림자 춤’ 등 영상작품 2점도 눈길
인간 통제 너머의 세상과의 소통시도


서울대학교 서양화과 출신. 버려진 도자기의 깨진 조각들에 금박을 더해 만든 ‘번역된 도자기’ 시리즈로 국내외 화단에서 끊임없이 러브콜을 받는 이수경(52·사진) 작가. 


그는 “붓질을 더 잘하고 싶어서 중국 경극 배우로부터 춤을 배웠다”고 했다. 이미 탄탄한 서양화 기본기를 갖췄을 뿐 아니라, 기존 도자기 시리즈만으로도 잘 나가는 작가가 무엇이 아쉬워 붓질을 더 잘하고 싶었을까.

그는 “기존의 붓질로는 스스로 감동을 얻을 수 없었기에 춤을 통해 붓질의 그루브를 배웠다”고 말했다. 몸으로 익힌 춤의 움직임을 붓을 쓰는 에너지로 끌어온 것.

도자기 조각가로 유명한 이수경 작가는 회화, 영상 등 다양한 분야에서 새로운 실험을 하는 중이다. 그는 “지구상에 새로운 작업이 어디 있겠냐”며 자신만의 방법론을 찾기 위해 애썼다. 회화에 대한 고민을 춤으로 푼 것도 이 같은 맥락이다.

전문 심리상담사도 찾았다. 심리학 박사이자 최면 분야의 전문가로 통하는 엄영문 씨를 만나 지난해 1년 동안 한 달에 한번씩 최면 상담을 받았다. 깊은 무의식의 세계에서는 그리고자 하는 것에 대한 영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예상은 적중했다. 무의식 세계에서 무궁무진한 이미지들을 끌어냈다. 그리고 그리기 시작했다. 아직까지 100분의 1도 채 다 그리지 못했다고 했다. 그릴 것들이 너무 많아 행복하다고도 말했다. 

‘전생 역행 그림’, 캔버스에 유채, 162×97㎝, 2015. [사진제공=아뜰리에 에르메스]

이수경 작가가 ‘전생 역행 그림’이라 불리는 회화 시리즈를 선보인다. 서울 강남구 도산대로에 위치한 아뜰리에 에르메스에서다. 전생 역행 그림은 올해 초 대구미술관에서 먼저 공개한 바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같은 시리즈의 신작을 내놨다. 동물 시체를 깔고 수정구 위에 앉아 정면을 응시하는 신선과, 최면 속 위기 상황 때마다 등장했던 여자를 반복적으로 그린 그림이다.

사실 작가의 그림은 세밀하면서도 성글다. 어설퍼 보이기도 하고 부적같은 느낌도 든다. “아카데믹한 잣대로 봤을 때 구도도 이상하고 못 그린 그림이라는 평가를 들었다”고 작가 스스로 말할 정도다. 그런데 묘한 분위기에 끌린다. 작가가 무의식 세계의 이미지들을 캔버스로 옮기며 치유를 경험했던 과정이 제 3자에게도 전해지는 듯 하다. 영(靈)적인 상호작용이다.

전시에는 영상 작품 2점도 나왔다. 이 안에는 직접 춤을 추는 이수경 작가가 있다. 경극 배우 뒤에서(‘그림자 춤’ㆍ5분 47초), 아시아 3개국의 지역 전통축제와 종교 현장 등에서(‘하얀 그림자’ㆍ8분 13초) 춤을 춘다. 하얀 옷으로 얼굴부터 발끝까지 가린 채 배경 속 어느 구석진 곳에 숨어 있어 찾아내기가 쉽지 않다.

작가는 이방인이나 구경꾼 같은 제 3자가 아닌 ‘참여자’로서 작품 속으로 들어갔다. 이유는 “노동과 사유는 함께 가야 한다”는 철학 때문이다. 그는 단순히 아이디어를 내는 데 그치거나 주문 생산을 하는 것이 아닌, 직접 몸을 들이는 방식으로 작업에 임한다고 말했다. 매 작품마다 이러한 작업 과정을 거치며 이전과는 다른 사람으로 거듭나고자 함이라고.

춤은 인간이 신과 교감하는 방식. 전생은 인간의 통제 너머 세상이다. 춤, 전생 등을 작품 활동의 매개로 삼은 것은 동양적 세계관과도 닿아 있다.

전시를 기획한 김윤경 큐레이터는 “삶과 죽음을 대립항으로 전제하는 선형적 세계관이 아니라 모든 존재, 모든 현상이 일정한 방향도 목적도 없이 무한히 곡선을 그리는 순환적 세계관에 기반하고 있다”며 “이수경의 작업은 모든 지극한 아름다움에 관해 사유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준다”고 평가했다.

전시는 9월 18일부터 12월 20일까지. 10월 10일 오후 2시부터 3시 30분까지는 아티스트 토크가 열린다. 

사진·글=김아미 기자/amig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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