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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요광장-정용덕] 선거경제주기 증후군
조지 부시(George H. W. Bush)는 자신과 큰 아들에 이어 현재 작은 아들까지 대권 장악을 시도 중인 미국 최고 정치명문가의 창업자다. 그가 1992년 대선에서 패함으로써 연임에 실패한 주원인으로 흔히 선거경제주기(electoral-economic cycle) 조작의 미숙을 꼽는다. 중앙정보청(CIA) 수장을 지낸 그가 대(對)중국 관계 등 외치에서는 나름대로 성과를 냈으나, 내치에서 그만 유권자들의 마음을 끌지 못했다. 내년 대선에서 작은 아들의 유력한 경쟁후보인 힐러리(Hillary)의 남편이자, 자신의 경쟁자였던 빌 클린턴(Bill Clinton)이 선거 캠페인에서 “문제는 경제야, 바보야!(It‘s the economy, stupid!)”를 외치고 다닐 빌미를 제공한 것이다.

우리 역시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선거경제주기 조작 증후군이 포착되고 있다. 이달 1일 법무부장관과 검찰총장이 한 목소리로 공직자 부정부패 단속 지시를 통해 사정 분위기를 띄우는 것, 지난달 행자부장관의 “총선! 승리!” 건배사 등은 모두 비(非)경제 부문에서의 선거주기성 징후들이다. 1998년에 총무처와 내무부가 행자부로 통합되었을 때, 앞으로 교수출신이 이 통합조직의 장관되기는 어려울 거라는 뒷담화들이 있었다. 자유당 정권의 마지막 장관을 지냈다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최인규 사례가 입증하듯 과거 내무부는 선거관리 주무부처로서 정치성이 농후한 행정기구였다. 이 기구가 통합된 것이 행자부이니 여간한 ‘폴리페서’가 아니고서는 감당하기 어려울 거라는 얘기다. 그러나 민주주의 이행 이후 선관위의 기능 확대와 지방행정의 자치화에 따라 내무부(또는 그 후신)의 정치성도 줄어들었다.

정치적 경기순환의 진면목을 보려면 기재부의 움직임에 주목해야 한다. 장관 자신의 입지 또한 걸려 있는 내년 총선에서 여당이 승리하려면 경제가 활성화돼야 한다. 특히 선거 당일에 최고점에 도달하도록 통화량과 재정지출은 늘리고 세금과 실업률은 낮춰야 한다. 근본적인 부문별 구조개혁은 추진주체조차 모호한 채로 부유(浮游)중인데, 120만 청년실업자 문제에 대한 되풀이 미봉책들과 각종 면세 조항들이 최근 쏟아져 나오는 이유다.

지난달 28일 기재부장관이 간부들을 대동하고 금통위 수장인 한은 총재와 간부들을 만났다. 뒤늦게나마 자리 잡아 가고 있는 ‘중앙은행 독립성’ 문제와 관련한 알레르기성 눈총들을 무릅쓴 1년여 만의 만남이다. 그 전날은 여당 정책위원장 일행을 상대로 당정회의도 가졌다. 이때 밝혀진 내년도 총예산 요구액(약 391조원)의 금년 대비 증가율(4.1%)은 박근혜 행정부가 편성한 지난 2년간의 예산요구액 증가율(평균 5.15%)보다 오히려 낮다.

이처럼 낮은 증가율이 의외는 아니다. 노무현 행정부가 편성한 17대 총선이 있을 2004년도 예산요구액은 1.2%에 불과했다. 반면, 2002년 이래 역대 대통령들이 편성한 대선이 있을 해의 예산요구액 증가율(평균 5,5%)은 전체 증가율(평균 4.9%) 보다 항상 높았다. 박근혜 행정부가 내년의 총선 보다는 후년에 있을 대선에 총력을 기울이기 위해 재정동원 능력을 최대한 비축 중이라는 가설이 나올 만하다.

“정치인(politician)은 다음 선거를 생각하지만, 경세가(statesman)는 다음 세대를 생각한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선거경제주기의 이론적 토대인 공공선택 시각에서 보면, 경세가란 이상형은 현실에서는 존재하기 힘들다. 우리나라 공직자들이 정치인인지 아니면 경세가인지를 따지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그 보다는 내년 총선과 후년 대선에 즈음하여 현 정부가 조작을 시도할 ‘정치적’ 경기순환이 순수하게 ‘경제적’ 측면에서 한국경제와 세계경제의 주기에 최대한 시의적절하게 부합하도록 모두가 견제하고 협력하는 것이 좀 더 현실적인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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