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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READERS CAFE] 순수문학 작가 5인, 야한 연애소설 써 보니
한국에서도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나 ‘롤리타’ 같은 글로벌급 연애소설이 나올까.

10대들이 교과서 사이에 끼워 몰래 보거나 20, 30대는 전자책으로 즐겨 읽는 것으로 알려진 로맨스 소설. 영미권에서는 1초에 4권씩 팔려 나가는 뜨거운 시장이지만 국내에서는 서점 매대에서 찾아보기 힘든 게 사실이다. 출판사 나무옆의자가 한국형 로맨스 소설 개발의 기치를 내걸고 ‘로망 컬렉션’이란 시리즈를 내놨다 그동안 본격문학을 해온 작가들이 틀을 깨고 놀 수 있도록 멍석을 깔아준 셈이다. B급 연애까지 품겠다는 로맨스 소설의 야심적인 출발에 다섯 명의 작가가 먼저 참여했다. 
사진은 왼쪽부터 하창수, 전아리, 김서진,박정윤, 한차현

예스럽고 관능적인 문체로 연애소설에 도전한 전아리의 ‘미인도’, 30년대 번성한 여급 까페를 무대로 화끈한 10대의 성적 자유선언(?)을 그린 박정윤의 ‘연애독본’, 40대의 사진작가와 20대 여성의 짧은 사랑 얘기인 하창수의 ’봄을 잃다‘, 사이보그 걸과의 사랑을 소재로 SF 쟝르와의 결합까지 시도한 한차현의 ’우리의 밤은 당신의 낮보다 요란하다‘와 김서진의 마법같은 소년과의 사랑이야기 ’네이처 보이‘ 등이다. 001번으로 시작해 5권을 1차로 출간한 25일 오후, 하창수, 한차현, 박정윤, 김서진, 전아리 등 50대부터 30대까지 다섯명의 작가가 인사동 찻집에 모여 이전에는 거리가 멀었던 연애소설에 대한 생각을 나눴다.

로맨스 소설은 ’야해야 한다‘는 강박에 대해=로맨스 소설의 대명사격인 할리퀸 소설은 일정한 형식이 있는 것으로 얘기된다.

평범하거나 비천한 출신의 여성과 신분이 높거나 부자이고 잘 생기기까지한 남성과의 사랑이라는 신데렐라 이야기로부터 성애의 노골적 묘사와 해피엔딩이라는 일정한 패턴이 있다. 영미권에서 ‘엄마들의 포르노’란 노골적인 수식어를 단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도 10대를 대상으로 한 할리퀸 소설은 아니지만 이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연애소설의 이런 틀은 작가에게 일종의 강박처럼 작용하게 마련이다.

50대의 하창수는 성공적인 연애소설의 경우 “그 시대를 아우르든가 넘어서든가 하는 성적 묘사가 있어야 한다”며, 그런 것이 소설화됐을 때 독특한 힘이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그는 경험적으로 연애소설의 최고봉을 중학교 1학년 때 읽은 박계주의 ’순애보‘를 꼽았다. 장안의 화제였던 19금 ‘순애보’는 지금이라면 1000만부는 나간 초베스트셀러. 소설엔 중학생이 이해하기에는 난해한 농밀한 표현이 많았다. 한창수는 이번 소설을 쓰면서 ‘순애보’를 떠올렸지만 표현의 한계를 느꼈다고 고백했다. “50대의 나이에 사랑은 치정이 되기 쉽거든요. 그러다보니 자기검열이 작동해 성적표현에 있어서 그다지 야하지 않게 됐어요“

한차현은 불필요한 성적묘사에 거부감을 나타냈다. “성적 묘사는 ‘야동’을 쓸 게 아니라면 길게 늘어놓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박정윤은 “한번도 연애소설을 써보고 싶은 적이 없었는데 제의가 오자 기존 틀을 벗어던지고 마음 편하게 써보자는 생각이 들었다”며, “30년대 시공간을 설정하다 보니 더 과감해졌다”고 말했다.

드라마 ’사랑과 전쟁‘의 방송작가 출신의 김서진은 ”그동안 범죄소설을 주로 써왔는데 로맨스가 내게 맞나. 지조가 훼손되는 것 아닌가 고민이 있었다“고 털어놨다. 러브 스토리보다는 범인 찾기가 특기인 그는 이번엔 낭만적 사랑에 초점을 맞췄다. 그래도 미스테리한 요소를 버리진 못했다.

로맨스 소설, 이건 필수!=연애소설에는 응당 연애가 있어야 한다. 하룻밤 사랑이든 목숨을 건 사랑이든 다섯 작품은 사랑의 본질에 닿고자 한다. 김서진은 로맨스 소설의 본질을 ‘심쿵’으로 제시했다. “하이틴 로맨스의 본질은 마음을 떨리게 하는 거에요. 요즘 말로 심쿵하게 하는 게 핵심이자 로맨스의 본질이라고 생각해요.”

하창수는 “연애사건이 진행되고 사건 자체가 연애가 돼야 한다. 그 외에 반드시 지켜야 할 것은 없다”고 했다. 박정윤은 “연애소설이 뭘까, 아직도 잘 모르겠어요. 연애의 감정을 잘 전달해서 기쁨을 공유하는 게 연애소설인지 쓰고 난 뒤에도 아리송하다”는 입장. 춘화에서 영감을 얻어 ‘미인도’를 그려낸 전아리는 김유정 소설을 연애소설의 전형으로 꼽았다. “징글징글하고 찰지고 구수하고 그런 것”이 로맨스 소설의 맛이라고.

연애 경험이 로맨스 소설에 유리할까?=“원래 연애 경험 없는 사람이 더 잘 쓴다는데 용기를 가지고 썼어요”(하창수),

“그냥 상상이 어딨나요? 다 어딘가에서 나온 거지. 연애도 기억에서 불러오는 거죠.”(한차현)

그렇다면 이번 첫 경험을 한 이들 작가들은 또 연애소설을 쓰고 싶을까? 전아리는 “야한 단어는 하나도 나오지 않지만 야한 스릴러 소설을 쓰고 싶다”고 했다. 김서진은 이번 작품이 낭만적 사랑 이야기라면, 다음 번은 자신의 특장인 미스테리 러브 스토리를 쓰게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털어놨다. 비극적 결말을 즐겨 써온 박정윤은 모처럼 소설 쓰는 재미를 느껴 밝은 쪽으로 소설을 쓰게 될 것 같다고 했다.

2차분 로망컬렉션은 문형렬, 김도연, 박상, 서진연, 이명랑 등 다섯 명의 작가가 대기중이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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