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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리즘 - 김아미] 미술관 ‘오디오 가이드’
지난 7월말, 여름방학을 맞은 아이와 함께 미술관에 갔다. 삼성미술관 리움과 국립현대미술관(이하 국현) 서울관 두 곳이다. 리움에서는 ‘세밀가귀’전을, 국현에서는 ‘소란스러운, 뜨거운, 넘치는’전을 주요 전시로 열고 있었다.

아이를 미술관에 데리고 간 목적은 단순했다. 스마트폰 게임하는 시간을 줄여주기 위해서. 정서 함양 같은 건 기대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반전이 일어났다. 리움에서다.

이름과 연락처를 쓰고 공짜로 오디오 가이드를 빌렸다. 작품 앞에 서니 자동으로 글과 사진, 육성으로 시ㆍ청각 자료가 이어졌다. 아이는 모든 고미술 작품을 꼼꼼히 감상했다. 미술이라면 보는 것도 그리는 것도 관심없는 초등학교 5학년 남자 아이인데 말이다. 리움의 현대미술 상설전에서도 ‘초집중’은 계속됐다.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설명을 들으며 작품을 모두 감상하고서야 미술관을 나올 수 있었다. 

며칠 뒤 국현 서울관을 갔다. 대여료 3000원을 내고 오디오 가이드를 빌렸다. 아이는 이어폰을 꽂더니 이내 ‘내동댕이’쳤다. 버튼을 눌러 조작하는 것부터 복잡했고, 기기 안에 저장된 작품 설명이 몇 개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전시에 대한 흥미도가 급격히 떨어졌다.

두 미술관의 오디오 가이드는 왜 이렇게 차이가 날까. 리움의 오디오 가이드는 삼성 갤럭시 노트를 이용한 디지털 기기다. 작품 주변에 설치된 센서를 감지하면 자동으로 해당 작품에 대해 화면과 음성으로 설명이 흘러나온다. 이 안에는 거의 모든 전시 작품에 대한 설명이 내장돼 있다.

국현이 쓰고 있는 오디오 가이드는 엠티시스템코리아라는 중소기업 제품이다. 전시 운영지원팀 설명에 따르면 2013년 11월 서울관 개관 때 이 기기를 들여왔다. 버튼 위 글자가 지워진 것 정도는 대수롭지 않다. 문제는 가이드 역할을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오디오 가이드에는 ‘소란스러운…’ 전을 포함해 전시 4개에 대한 설명이 들어 있다. 현재 진행 중인 전시는 9개다.

전시 설명도 한참 부실하다. ‘소란스러운…’ 전 같은 경우 작품 수는 270점에 달하는데 가이드는 고작 10점 정도만을 설명하고 있다. 외국어 서비스도 마찬가지다. 영어나 중국어 설명이 없는 것이 대부분이다.

“전시팀이 전시를 시작하기 전에 스크립트를 먼저 줘야 하는데 협조를 잘 안 해줘서 모든 민원을 저희가 받고 있어요.” 운영지원팀 직원의 얘기다.

“서울관과 과천관의 1년 전시 갯수가 약 40개, 학예사 수가 40명이에요. 학예사 한 사람당 전시 1개를 맡는 시스템인데, 업무가 과중되고 빠듯한 실정입니다.” 김장언 전시기획2팀장의 말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은 한국 최고 권위의 미술관이다. ‘문화융성’ 구호는 날로 높아가고 있지만 이를 맨 앞에서 이끌어 갈 국립미술관이 이래저래 뭇매맞을 일 투성이다. 카타르 왕가가 자국 미술관에 피카소 그림을 들여놓기 위해 수천억원을 쓰는 때다. 우리 국립미술관은 오디오 가이드부터 바꿔야 한다.

amig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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