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1970년대 한국 추상미술, 1940년대생 작가들을 통해 재해석하다

[헤럴드경제=김아미 기자] ‘물성(物性)을 넘는다’는 것과 ‘여백을 찾는다’는 것.

지난해 ‘단색화’가 급부상하면서 한국 화단은 1970년대 한국 추상미술의 독자성을 재정립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해졌다. 전후 유럽의 앵포르멜(Informel)과 미국의 미니멀리즘(Minimalism), 일본의 모노하(物派)로부터 영향을 받았으면서도, 그 안에서 한국 고유의 정신성을 찾으려는 노력이다. 정신성의 핵심 개념은 물성을 뛰어넘고, 여백을 추구하는 것으로 수렴된다.  

최근까지도 이우환(1936-), 박서보(1931-), 하종현(1935-), 정상화(1932-) 등 1930년대에 태어나 1970년대 단색계열의 회화 사조로 화단을 이끌던 원로 작가들의 전시가 국내ㆍ외에서 활발하게 열렸다. 미술시장에서의 열기도 뜨거웠다. 원로들의 그림이 수십배 뛴 가격으로 불티나게 팔렸다. 미술계 일각에선 ‘거품’ 논란도 제기됐다.

단색화 열풍에 대한 분분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누구 하나 명쾌한 전망을 내놓지 못하는 상황에서 그 지속가능성을 실험하기 위한 뚝심있는 전시가 열렸다. 평창동 가나아트갤러리(대표 이정용)에서다. 전시 타이틀은 ‘물성을 넘어, 여백을 찾아서-한국 현대미술의 눈과 정신 1’이다. 이번에는 1930년대생 작가들이 아닌, 1940년대 작가들을 중심으로 했다. 이승조(1941-1990), 박석원(1942-), 이강소(1943-), 김인겸(1945-), 오수환(1946-), 김태호(1948-), 박영남(1949-) 7인이 전시에 참여했다. 

이들은 1930년대생 작가들과 선생과 제자, 혹은 선배와 후배 사이면서도, 1970년대 당시 함께 활동했던 동료 작가들이기도 하다. 그러나 미묘한 차이가 있다. 1930년대생 작가들이 청년기에 한국전쟁을 직접 체험한 세대라면, 이들은 전후 세대에 해당한다는 점이다. 

박석원, Accumulation 8138, 1980, Granite, 60×60×60㎝ [사진제공=가나아트갤러리]

김인겸의 평면 조각. [사진=김아미 기자/amigo@heraldcorp.com]

박영남의 회화. [사진=김아미 기자/amigo@heraldcorp.com]
이강소의 ‘虛-Emptiness’ 등 회화와 조각작품 전시 전경. [사진=김아미 기자/amigo@heraldcorp.com]

작업 방식에서도 차이를 보인다. 윗 세대가 반복적이고 지속적으로 몸을 들이는 행위를 통해 정적이면서도 구도적인 작업에 치중했다면, 이후 세대는 각자의 개성을 중심으로 앞으로 나아가려는 움직임, 액셔니즘(Actionism)의 경향이 있는 것으로 평가 받는다. 


같음과 다름을 인정하는 가운데 한국 추상미술의 맥을 찾겠다는 것이 이번 전시의 핵심 의도로 읽힌다. 

전시 기획은 전 홍익대학교 예술학과 교수이자 미술평론가인 김복영씨가 맡았다. 그 역시 1940년대 생이다. 그는 “서구미술이 소비 자본주의의 정점에 있었다면 우리 미술은 물질의 빈곤시대에 물질을 뛰어넘으려고 노력했다”면서 “화면을 꽉 채우는 서구 미니멀리즘과 달리 휑하게 비어있는 느낌, 그것이 한국의 여백미”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한국의 비움은 중국미술의 노장(老莊)적인 비움과도 구별돼야 한다”고 말했다. “중국의 비움이 정교하면서도 거대하다면 한국의 비움은 훅 불면 날아갈 것 같은 느낌”이라는 것.

그는 “화면과 입체를 물질로 채웠으되 그 결과는 물성을 넘었으며 텅빈 여백을 빌려 물성을 커버했다”는 설명으로 1970년대 한국 추상미술의 특징을 압축했다.

전시에 나온 작품들은 정적이지만 힘이 느껴진다. 공간을 부유하는 무질서함을 평면과 입체 안에 응축시켜놓은 것 같은 느낌이다. 그 안에서 요동치는 에너지들이 강렬하게 다가온다. 육중한 돌덩이에 크랙(Crack)을 가한 박석원의 조각과, 스테인리스 스틸에 검은 안료를 칠한 블랙미러 소재로 매끈한 평면같은 김인겸 조각이 서로 다른 기운을 내뿜는다.

이승조의 모던한 색면구성, 김태호, 박영남의 질감 두터운 대형 회화들도 시선을 사로잡는다. 전반적으로 어두운 전시공간과 달리 눈부시게 밝은 화이트큐브에 전시된 이강소의 작품들은 ‘훅 불면 날아갈 것 같은’ 한국 추상미술의 여백미를 느낄 수 있게 해 준다. 전시는 9월 29일까지.

amigo@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