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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47일간의 세계여행] 48. 칠레하면 포도만?…산티아고는 서울을 닮아있다
[헤럴드경제=강인숙 여행칼럼니스트] 아따까마(San pedro de Atacama)부터 깔라마(Calama), 깔라마에서 산티아고(Santiago)까지 거의 하루 반을 달렸다. 하루가 넘는 긴 이동도 이젠 거뜬(?)하다. 정오쯤 게스트하우스에 도착, 체크인 하기엔 이른 시간이라 주저앉아 지친 몸을 쉬며 시간을 기다린다. 와이파이가 되니까 심심하진 않다. 소파에 널브러져 한국에 연락도 하고 검색도 해보다가 드디어 체크인을 하고 샤워를 한다. 긴 이동의 피로가 몰려들 틈도 없이 버스를 함께 타고 온 한국인 동행들과 산티아고의 거리로 나간다. 이유는 하나, 배가 고프기 때문이다.

페루, 볼리비아의 고지대와 사막지역에서 열흘이상을 지내고 내려온 내게 산티아고는 서울의 향기를 느끼게 한다. 잘 정돈된 익숙한 대도시 풍경을 떠나오고 처음으로 보는 것이라 그럴까? 우리나라에 수입되는 칠레포도만을 떠올리던 막연한 느낌과는 다른 칠레의 수도다.



진짜 오랜만에 한국음식을 먹고 싶어서 작은 거리로 나선다. 한국식당을 찾아가는 동안 만난 사람들은 칠레 사람도 있지만 여기 사는 교민도 두 번이나 만난다. 한국인을 이렇게 쉽게 만날 수 있다는 게 놀랍지만 그분들이 별로 반기지 않는 것으로 보아 이곳은 한국인 여행자들이 많이 찾아오는 곳임에 틀림없다. 어쨌든 한국인을 거리에서 만나 한국어로 상세히 설명을 듣는 것만으로도 산티아고가 친근하게 느껴진다. 삼겹살을 파는 한국식당을 기웃거리다가 한국인이 운영하는 중국음식점으로 가기로 한다. 한국 방송을 보며 짬뽕을 먹는다. 해산물이 풍부한 칠레의 짬뽕 국물은 얼큰하고 시원하다. 서울 같아 보이는 풍경을 보고, 한국 사람을 만나 길을 묻고, 한국에서 먹던 음식을 먹으니 여기가 더욱 한국처럼 느껴진다. 짬뽕한 그릇에 잠시 향수에 젖는다.



점심을 먹은 곳에서 멀지 않은 산크리스토발 언덕(Cerro San Cristobal)까지 걷는다. 다들 초행인 산티아고지만 동행이 있어 발걸음이 가볍다. 함께 말을 나눌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이 좋다. 산크리스토발 언덕은 우리나라로 치면 남산 공원 같은 곳이다. 남산에 올라 서울의 전경을 바라보는 것처럼 이곳에 올라 산티아고 시내를 조망할 수 있는 공원이다. 전망대까지 오르는 케이블 열차를 탄다.

산티아고의 전경이 눈에 들어오는 정상의 조망은 어쩐지 서울의 그것과 닮아 있다. 남미에서도 잘사는 나라에 속하는 칠레라서인지 산티아고는 별다르지 않은 대도시 풍경이다.



게다가 여행준비하며 알게 된 칠레의 현대사는 호기심을 자극한다. 민주적 선거로 선출된 세계 최초의 사회주의 대통령 아옌데가 이끄는 정부는 1973년에 미국의 개입과 군부 쿠테타로 몰락했다. 아옌데는 자살인지 타살안지 명확하지 않은 죽음에 이른다. 그 후 피노체트의 군사 독재가 17년간 지속되어 많은 사람들이 고문, 납치, 살해된다. 글을 쓰고 노래하는 것조차 망명을 각오해야 하는 정도였다고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아옌데 시절 악화되었던 경제는 피노체트의 독재 시절에는 성장한다. 지금도 아옌데를 부정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하는 칠레의 현대사가 한국을 연상시키기도 해서 더욱 인상적이다.

칠레의 거리 노점에서 많이 파는 복숭아 수정과 같은 모떼콘우예시요(Mote Con Huesillo)를 한 잔 사서 정상의 바람으로 땀을 식히며 한 잔 마신다. 이곳에 오르면 다들 마시게 되는 음료일 것이다. 평일이라 그런지 사람은 별로 없다. 



계단의 끝 가장 높은 곳에는 하얀 성모상이 산티아고 시내를 굽어보고 있고 거대한 도시가 한 눈에 보이는 언덕 위에 소박한 교회가 있다. 들어갈 수 없는 아담한 교회 마당에서 서성이는 기분이 참 정갈해진다.

산크리스토발 언덕을 내려오는 길에 커다란 실수를 하게 되었다. 케이블 열차를 타고 오르는 게 비용은 비싸고 시간을 너무 빨라서 천천히 걸어 내려가기로 했는데, 언덕이라기보다 높은 산에 가까울 만큼 시간이 걸린다. 길을 더듬어 내려가다가 캠핑장에서 어떤 가족들도 만나고 친절한 칠레노들이 길도 잘 알려 줬지만, 내려가는 길은 생각보다 많이 멀다. 가끔 운동복을 차려입고 가볍게 달리는 사람들을 쳐다보면서 거의 2시간을 내려온 것 같다. 열차를 타고 내려왔다면 10분이면 될 길이었는데 어처구니없다. 땀을 뻘뻘 흘리며 내려와서는 어이없어 한참을 웃는다. 



인원이 셋이라 택시를 잡아타고 아르미스 광장(Plaza de Armis)으로 간다. 국립박물관이나 대성당, 가까운 거리에 대통령궁도 있고 산티아고의 모든 것이 모여 있는 곳이다. 걷는 게 일인 여행자들의 발걸음은 분주하다. 안데스 고원과 우유니, 아따까마의 사막지대가 휙 멀어진다. 산티아고는 특별히 남미의 도시라기보다 여느 유럽 도시 같은 느낌이다.

오후가 되자 체스를 두는 사람들과 그걸 구경하는 사람들 모습이 느긋하기만 하다. 공사 중인 거리 때문에 가림막이 설치되어 불편하지만 그 와중에도 저녁의 거리엔 화가가 그림을 펼쳐 놓는다. 각종 퍼즐을 능수능란하게 맞추고 있는 젊은이의 손길을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길을 끌기엔 충분하다. 비상한 두뇌의 소유자인 것은 확실하다.



어느 모퉁이에서는 한 바탕 귀여운 소년 소녀의 춤판이 벌어지기도 한다. 프로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흥겨운 공연이다. 7시쯤에는 성당에 들어가 미사도 보고 나온다. 성당 문이 닫히자 밖의 소란스러움은 성당의 경건함에 묻히고 문 하나를 두고 안과 밖은 성과 속의 세계로 분리된다. 들뜬 마음도 순식간에 사그라진다. 밖에선 보는 것을 즐겼는데 성당 안에서는 여기까지 온 나를 생각하게 된다.



성당에서 나와 지금까지의 남미와는 달리 편한 마음으로 치안 좋은 산티아고의 밤을 즐긴다. 어두워질수록 볼 것도 먹을거리도 많은 길을 발바닥이 아프도록 돌아다닌다. 이런 풍요로운 대도시에 동행이 있어 더 즐거운 하루다. 식당을 찾아들어가 칠레식 해산물 스프를 맛보고 칠레 와인도 한 잔 마신다. 거리의 높은 테이블에 서서 간단히 맥주를 마시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아이스크림을 핥으며 걷는다.

밤이 더 깊어지자 건물 매장들은 문을 닫고 그 앞에 노점상의 좌판이 펼쳐진다. 속옷이며 양말이며 액세서리 같은 잡동사니들을 바닥에 깔아 놓고 파는 것이다. 12시가 다 되어 숙소를 찾아 들어간다. 꽤 늦은 시간이라 생각했는데 도미토리엔 아직도 들어오지 않은 사람이 많다. 치안 걱정 없는 대도시의 밤엔 마음만 먹으면 즐길 거리가 오죽하겠나 싶다. 이래저래 산티아고에서는 서울의 향기가 솔솔 풍긴다.


정리=강문규기자mkka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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