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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슈퍼리치] 두 명의 회장, 롯데의 몰락
-90대 총괄회장의 섭정에, 한ㆍ일 장악한 아들의 반격
-진흙탕 폭로전에 롯데 브랜드 가치 추락, 신동빈 회장 국내 부호 7위에서 15위로


[헤럴드경제=슈퍼리치섹션 성연진ㆍ민상식 기자] “아버지(신격호 롯데그룹 총괄 회장)가 계셔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2011년 2월 회장 취임 후에도 서울 명동 롯데백화점에 있는 집무실에 올라갈 때 전용 엘레베이터를 따로 두지 않았다. 기자가 만나 인터뷰 요청을 할 때면, 한결같이 대답했다. 아버지가 계시기 때문에 전면에 나서기 껄끄럽다는 것이었다. 신 회장은 명함은 두 손으로 받았고 인사를 할 때는 고개를 숙였다. 겸손하고 수줍고 차분한 분위기였다. 그도 그럴 것이 신 회장은 회장이 되기까지 21년이 걸렸다. 재계에서 경영수업 21년이란 역사는 보기 드물다. 그보다 한 세대 어린 3세대 경영인들이 ‘책임경영’ 타이틀을 달 때, 롯데그룹은 ‘명예 회장’이 아닌 ‘총괄 회장’이란 이름으로 창업주를 모셨다.

이 구도는 이제 깨지고 있다. 먼저 돌을 던진 이는 신동주 전 일본 롯데 부회장이지만, 그는 안타깝게도 이 싸움을 진흙탕으로 더럽힌 관전자일 뿐이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적은, 형이 아닌 아버지다.

(왼쪽부터) 신동주 전 일본롯데 부회장,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

▶뒷방으로 물러나지 않겠다던 창업주, 아들 숨 조여=2011년 2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임명 당시, 언론은 매우 생소한 단어를 보도했다. ‘총괄회장’. 보통 창업주가 2세대에게 자리를 물려주면서 명예회장이 아닌 총괄회장으로 물러나는 경우는 드물었다. 경영에서 손을 떼지 않겠다는 신격호 창업주의 의지가 분명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당시 신동빈 회장의 승진은 예고된 것과 다름 없었다. 2010년 한국 롯데의 성장은 승진으로 보상받을 만큼 충분했다. 그해 롯데는 61조원의 매출을 올리며 전년(47조3000억원)보다 30% 가량 성장했다. 사상 최대 실적이었다. 백화점, 대형마트 등 주력사업인 유통을 비롯해 석유화학 등 전 계열사가 고루 좋은 성적을 냈다.

덕분에 신격호 총괄회장의 현해탄 경영도 균형이 깨졌다. 경영 현안이 일본보다 한국이 더 많다보니 ‘짝수달 일본, 홀수달 한국’의 원칙이 깨진 것이다.

회장 승진은 그러나 ‘권한’을 모두 넘기진 않았다. “아버지가 계셔서”라던 신동빈 회장의 발언은 이후에도 이어졌다.

신 총괄회장은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34층에서 사장과 임원들로부터 받는 ‘릴레이 보고’를 멈추지 않았다. 수시간 째 서서 보고하는 것이 임원들에게는 고된 과정이었다. 당시 “주가가 왜 이 정도밖에 안되느냐”는 호통도 들었다. 경쟁사 신세계보다 주가가 저평가되자 주가를 두배로 끌어오려야 한다고 지시하기도 했다.

롯데는 2명의 회장을 모시는 셈이었다. 아버지와 아들의 경영방식은 달랐다. 껌을 팔아 부호가 된 아버지는 보수적 투자 방식을고수했지만, 아들은 인수합병(M&A)으로 회사를 키웠다. 최근까지도 신동빈 회장은 임원회의에서 “경영 환경이 좋지 않아도 미래를 위한 투자를 아껴선 안 된다”면서 ”성장 동력을 확보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 과정에서 큰 누나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이 롯데백화점 밖으로 나가게됐다. 신영자 이사장이 신동빈 회장으로부터 등을 돌리게 된 계기다. 신 이사장은 1973년 롯데호텔에 입사한 뒤 1979년 롯데백화점 설립에 참여하는 등 30년 넘게 경영 일선에서 활동했다. 롯데백화점이 국내 1위 백화점이 되는 데 일등 공신이었던 셈이다. 2005년 개점한 롯데백화점의 최고급 명품관 ‘에비뉴엘’은 신 이사장과 당시 해외명품팀장이던 그의 딸 장선윤 호텔롯데 상무의 작품이다. 그러나 모녀가 모두 롯데백화점 밖으로 내몰리게 되면서, 신 이사장은 동생에게 섭섭함을 느끼게 됐을 것으로 풀이된다. 

(왼쪽부터) 쓰쿠다 다카유키 일본 롯데 사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이인원 롯데쇼핑 부회장

▶등 돌린 신격호의 남자, 이인원ㆍ쓰쿠다=등 돌린 것은 신동빈 회장과 막역하던 신영자 이사장만이 아니다. 한국과 일본의 ‘상왕의 남자’들도 새로운 왕 편에 섰다.

한국의 이인원 부회장은 신 총괄회장의 최측근으로 분류된다. 그런데 창업주가 이번 ‘형제의 난’에서 이 부회장 해임을 지시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오히려 신동빈 회장의 한국 롯데 장악력에 재계가 놀라고 있다.

이 부회장은 수십년간 신 총괄회장의 수족 노릇을 해왔다. 1973년 롯데호텔에 입사해 1987년 롯데쇼핑으로 자리를 옮긴 후, 1997년 롯데백화점 대표에 올랐다. 이후 19년간 롯데그룹에서 최고경영자를 맡고 있다. 2011년에는 롯데그룹에서 ‘비 오너 일가’ 중에서는 처음으로 부회장 직책에 올랐다.

이런 그를 신 총괄회장이 해임 명단에 포함했다는 것은, 이 부회장마저 신동빈 회장에게로 돌아섰다는 의미가 된다.

더 놀라운 것은 쓰쿠다 다카유키 일본 롯데홀딩스 사장의 배신이다. 그는 현재 신동빈 회장이 일본 롯데를 장악하는 일을 돕고 있다. 신 총괄회장을 대표에서 해임한 지난달 28일 “롯데홀딩스 긴급 이사회’를 주재한 것도 그였다. 쓰쿠다 사장은 2009년 신격호 총괄회장이 직접 스카우트해 임명됐다. 

올 3월 베트남에서 열린 한ㆍ일 롯데 식품 계열사 대표회의에서 신동빈 회장을 앞에 두고 ‘One Lotte, One Leader(하나의 롯데, 한 명의 리더)’라는 표현을 쓰면서, 아버지의 남자에서 아들의 남자가 됐다.

▶롯데가, 재계 5위 지킬 수 있을까=아버지 섭정의 반기를 든 신동빈 회장이 롯데그룹 경영을 고수하든, 90대 아버지를 등에 업은 신동주 전 일본 롯데 부회장이 제 자리를 찾든 롯데그룹의 브랜드는 추락할 것으로 보인다.

롯데쇼핑의 주가는 3일 24만원대로, 2010년 신격호 총괄회장이 “지금의 두 배는 돼야 한다”던 주가 30만원대보다도 낮다.

일본 우경화와 광복 70주년 등으로 반일 정서가 높아진 가운데, 일본어로 인터뷰하며 롯데그룹의 국적 논란이 야기된 것도 단기간 내 해소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복잡한 지분 구조로 사실상 지주사가 일본 회사란 점도 ‘도대체 롯데는 어느 나라 회사냐’는 의문을 더 키우고 있다.

게다가 90대 아버지가 60대 아들(신동빈 회장)의 뺨을 때렸다는 막장드라마식 폭로전이 이어지면서, 롯데의 오너가에 대한 신뢰도 많이 훼손된 상태다.

3일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롯데쇼핑 등 6개 주식에 대한 지분 평가액은 1조4350억원(31일 종가 기준)으로 1년전 1조6950억원에 비해 2500억원이 줄었다. 이에 따라 국내 부호순위도 7위에서 15위로 8계단이 떨어졌다. 같은 기간 신동주 전 일본 롯데 부회장 역시 1조5600억원에서 1조2800억원으로 지분 가치가 떨어지며, 국내 부호순위 18위로 주저앉았다.

yjsu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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