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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명은 공연에 생명력 불어넣는 마지막 터치”...빛의 마술사 구윤영 조명디자이너
[헤럴드경제=신수정 기자]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 수퍼스타(지크수)’의 무대는 황량한 사막이다. 주름잡힌 모래언덕 외에 무대장치는 거의 없다. 하지만 시시각각 변하는 조명에 따라 무대는 지저스가 기도하던 겟세마네 동산이나 재판정 등으로 순식간에 변화한다.

뮤지컬 ‘고스트’에서 유령인 주인공 샘의 몸에 감돌던 푸른 빛,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에서 주인공이 지킬과 하이드를 왔다 갔다 할 때 흰색과 초록색 조명의 교차, 뮤지컬 ‘아리랑’에서 철길 위를 기차처럼 빠르게 지나는 하얀 조명 등은 말그대로 조명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지크수’를 비롯 뮤지컬 ‘영웅’, ‘서편제’ 등 굵직한 작품에 참여해온 구윤영 조명디자이너는 “조명은 공연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마지막 터치”라고 말했다.
구윤영 조명디자이너는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로기수’와 연극 ‘카포네 트릴로지’ 등에서 치밀한 조명을 통해 극의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정희조 기자/checho@heraldcorp.com

▶‘지저스 크라이스 수퍼스타’ 조명에 얽힌 이야기=샤롯데씨어터에서 공연 중인 ‘지크수’는 뮤지컬의 거장 앤드루 로이드 웨버가 작곡한 작품이다. 라이센스 뮤지컬이지만 무대, 조명 등은 한국 제작진이 새롭게 창조했다.

구 디자이너는 2013년 ‘지크수’ 공연에 비해 올해 조명 디테일을 보완해 “더욱 세련된 느낌이 든다”는 반응을 얻고 있다.

뮤지컬 조명은 단순히 무대를 어둡고 밝게 하는데 그치지 않는다. 조명은 극의 배경이 되는 시간, 공간과 등장인물의 심리 등을 묘사하는 빛의 마술이다.

구 디자이너는 지저스가 등장할 때는 호박색, 유다나 제사장이 나올 때는 초록색이나 파란색 조명을 사용해 대립 구도를 표현했다. 마리아가 지저스를 향해 걸음을 옮길 때는 조명이 하나씩 하나씩 들어오게 하면서 점차 다가가는 마음을 나타내기도 했다.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사진제공=설앤컴퍼니]

극의 하이라이트인 ‘겟세마네’에서는 지저스에게 오직 하얀색 조명만 비춘다. ‘겟세마네’는 지저스가 신에게 “누굴 위해 죽어야 하느냐”며 절규하다 결국 죽음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하는 곡이다.

“노래가 고조될수록 점점 흰색 조명이 밝아지다가, 클라이막스 부분에서는 팔로우(follow) 조명 세 대가 한꺼번에 비춰지죠. 지저스의 얼굴이 완전 하얗게 보이는데 ‘난 준비됐으니 당신 뜻대로 하세요’라는 결심을 강렬하게 보여주기 위한 장치예요”

반면 ‘헤롯의 노래’의 경우 조명을 아래에서 위로 비춰 그로테스크한 느낌을 살렸다. 이 노래를 부르는 헤롯왕은 극중 남자인지 여자인지 알 수 없는 캐릭터다.
뮤지컬 ‘로기수’ [사진제공=스토리피]

25년 베테랑 조명디자이너=이처럼 조명은 색조화장처럼 잘 쓰면 무대의 입체감을 살리지만 잘못 쓰면 촌스러워보이게도 한다.

“색깔에도 상징이 있는데 이를 중구난방으로 쓰면 관객들이 혼란스러워질 수 있어요. 예를 들어 저는 흰색, 파란색 위주로 조명을 쓰다가 과거 회상 장면에만 빛바랜 느낌을 주기 위해 노란색을 쓸 때가 있어요. 하지만 노란색 조명이 예쁘고 화려하다고 이 장면 저 장면에 다 쓰면 임팩트가 없어지는 거죠”

구 디자이너가 1991년 동숭아트센터에 입사했을 때만해도 조명은 그저 꺼졌다 켜지며 깜빡깜빡거리는 장치에 불과했다. 조명감독이라는 명칭도 없을 때라 ‘기사님’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90년대 중반 이후 기술적인 부분을 다루는 조명감독과 색깔 등을 창의적으로 입히는 조명디자이너가 구분되기 시작했다.

“저는 스물한살에 조명일을 시작했어요. 여자인데다 나이가 어리니까 무시당하기 일쑤였죠. 그래서 엄청 소리지르고 싸워서 쌈닭 소리를 들었어요”

그는 직장 생활을 10년 채우고 2001년 프리랜서가 됐다. 프리랜서를 선언한 첫해 연봉 500만원에서 이듬해 1200만원 등으로 차츰차츰 올려나갔다. 2008년 ‘바람의 나라’, 2010년 ‘영웅’, 2014년 ‘해를 품은 달’로 각종 뮤지컬 시상식에서 조명 부분 상을 휩쓸면서 몸값이 더욱 높아졌다.

‘지크수’를 보러온 제프 칼훈 연출 역시 엄지를 치켜들었다. 구 디자이너는 제프 칼훈의 뮤지컬 ‘마타하리’를 비롯 향후 ‘인 더 하이츠’, ‘오케피’ 등에도 참여할 예정이다.

“올해 25년째 되니까 이제 조명이 뭔지 알겠어요. 조명을 위한 조명보다 작품에 잘 맞는 조명을 하고 싶다고 생각이 바뀌었죠. 옛날에는 제가 무섭다고 소문이 났는데 요즘은 얼굴이 편해보인다는 말을 많이 들어요”

예전에 비해 현장에서 소리 지르고 싸우는 일은 줄었지만 조명에 있어서만큼은 여전히 치밀하다. 젊은 감각을 유지하기 위해 Mnet ‘쇼미더머니’나 가요 순위 프로그램도 열심히 챙겨보고 있다.
연극 ‘카포네 트릴로지’ [사진제공=스토리피]

뮤지컬을 보면서 조명을 의식하는 관객은 많지 않다. 하지만 조명은 관객들이 내레이터가 없어도 자연스럽게 극에 스며들게 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3시간에 달하는 공연 시간 동안 많게는 900번 이상 조명에 변화를 주는 조명 스태프들의 수고 덕이다.

“공연을 제작할 때 조명은 가장 마지막에 하는 작업이예요. 무대 장치나 의상, 소품, 배우들의 분장도 조명디자이너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굉장히 다르게 보일 수 있죠. 공연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껴요. 조명으로 인해 무대가 살아나고 아름다워질 때 정말 행복해요”

/ssj@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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