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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상읽기 - 문호진]박 대통령의 ‘자기 정치’
박근혜 대통령의 정치적 위기 탈출 능력은 이번에도 놀라웠다. 메르스 정국의 수세를 단칼에 (국회법) 거부권 정국의 공세로 전환시키지 않았는가. 이후 사람들의 관심은 ‘메르스 확진자’에서 ‘배신자 유승민’으로 단번에 옮아갔다. 국정의 타깃도 메르스 잡기에서 ‘유승민 찍어내기’로 이동했다. ‘차떼기 정당’ 심판론을 천막 당사로 막아낸 정치적 승부수가 이번에도 적중했다. 더 놀라운 신의 한 수는 ‘적의 칼로 싸우는’ 이이제이(以夷制夷 )다. 친박계를 이탈한 배신자(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로 하여금 다른 배신자(유승민 원내대표)를 처단하게 해 비박계 내에서 내분이 일게 한 것이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당의 주도권을 쥐기 위해 골몰하고 있는 친박계를 간접 지원하는 결과까지 얻어냈다.

이처럼 자신과 당파의 위기 탈출에는 능한 박 대통령 이지만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 위협받을 때는 무능하기 짝이 없다. 지난번 세월호 참사로 그 곤욕을 치렀으면서도 이번 메르스 사태 대처에 달라진 것이 없다. ‘세월호 7시간’이 ‘메르스 6일’로 대체됐을 뿐, 초동 대처에 허둥대다 골든타임을 놓쳐 피해자를 키운 건 판에 박은 듯하다.

이런 일이 자꾸 반복되다보니 ‘불경스럽게도’ 박 대통령의 태생적 한계까지 생각하게 된다. 어머니 육영수의 모성적 리더십 보다는 개발독재의 권위적 리더십을 지닌 아버지 박정희 유전자가 박 대통령 피에 더 강하게 흐르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박 대통령이 생전의 육 여사 처럼 소록도 나환자들과 먹고 마시고 빰을 비비는 측은지심을 가졌더라면 국민이 고통받는 현장 속으로 더 빨리, 더 깊이 들어가 국민의 눈물을 닦아주는 대통령으로 칭송받았을 것이다. 선거 지원에 나섰다 면도칼 테러를 당한 후 병상에서의 일성이 “대전은요?” 였다는데 이런 투철함이 민생 위기 앞에서는 왜 작동하지 않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박 대통령의 정치철학이 권력을 잡기 전과 후과 판이하게 다른 것도 고개를 갸우뚱하게 한다. 박 대통령은 지난 대선에서 야당의 의제였던 경제민주화와 보편적 복지론을 기꺼이 껴안겠다고 공약해 당선됐다. ‘5ㆍ16’, 유신에 대해서도 헌법가치 훼손이라고 인정했다. .‘레드 컴플렉스’ 시비에도 빨강색을 당의 상징색으로 채택했다. 이처럼 세상과 소통을 잘하던 정치인이 권좌에 앉은 후 불통의 아이콘이 돼버렸다. 이러니 호사가들이 ‘가면의 정치’를 입에 담는 거 아닌가.

박 대통령은 유승민의 죄목으로 ‘자기 정치’를 들었지만 서민과 중산층 편에 서겠다는 개혁적 보수 또는 신보수론은 박 대통령이 대선에서 외쳤던 경제민주화와 다르지 않은 것이다. 자신이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이중적 잣대가 아닐 수 없다.

박 대통령은 유승민의 ‘자기 정치’에 돌을 던지라고 했지만 국민은 대통령의 ‘자기 정치’에 더 큰 배신감을 느낀다. 메르스 부실 대응을 사과해야 할 시점에 권력다툼을 일으켜 면피성 국면전환을 꾀하고, 집권당 원내 사령탑을 계파 하수인을 동원해 숙청하는 식의 제왕적 리더십은 시계바늘을 거꾸로 돌리는 퇴행적 정치다. 국정 파트너인 여당의 지도부를 무릎 끓리는 상명하복의 독선으로 어찌 야당과 국회, 시민단체를 국정 개혁과제에 동참시킬 수 있겠는가. 이 정부 후반부가 벌써부터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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