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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 칼럼 - 김성진]귀하신 멀티플렉스의 ‘여의봉 스크린’
음악, 영화 싫어하면서 자란 사람 거의 없다. 여자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많은 남성들의 로망 중의 하나가 ‘홈시어터’를 갖는 것이었다.

LP나 CD, 비디오테이프와 DVD가 벽면을 가득 메우고(아 한쪽 면은 비워야한다) 70인치 대형 화면에 수준급 오디오와 돌비 시스템이 갖춰진, 그리고 푹신한 소파가 있는 공간. 돌이켜보면 평범한 월급쟁이들이 갖기엔 가당찮은 꿈이었다.

방 1개나 2개짜리 신혼시절엔 아이들 이층침대로 몰아넣으면 되지만, 머리가 좀 굵어지면 방 하나씩 안 만들어줄 도리가 없다. 먹을 거 안 먹고, 잘 거 안자고 열심히 일해서 방 4개 짜리 산다고 ‘아버지의 AV룸’이 허락되는 것은 아니다. ‘서재’, ‘독방’같은 말은 금기어나 다름없다. 자식들이 일가를 이룰때 내방 하나 생기겠지 하면, 시집 장가 밑천 대느라 집은 다시 축소된다. 자꾸 따져봐야 가슴만 아프다. 하지만 꿈을 갖는 것 까지야 문제될 건 없겠지.

요즘은 시대가 변했다. 아날로그처럼 DVD로 영화를 보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극장에 직접 가거나 파일로 다운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내 공간이 없어도, 빔 프로젝터나 노트북으로 혼자 보기도 한다.

어쨌든 ‘내가 보고 싶은 영화를 보고 싶다’는 욕망은 원초적이며, 무리한 바램도 아니다.

만약 내가 어렵게 만든 AV룸에 형이나 친구, 회사 상사가 와서, 전혀 내 취향이 아닌 영화를 틀어대며 “같이 보자. 보기 싫으면 관둬”라고 한다면? 가만 있을 사람 별로 없을 것이다.

좋은 영화는 말려도 찾아가서 보지만, 보기 싫은 영화는 공짜표를 줘도 보고 싶지 않게 마련이다. 93년 ‘서편제’가 단성사 한곳에서만 100만 관객을 돌파한 일은 전설처럼 남아있다.

‘하나의 극장에 8,9개의 상영관’을 가진 멀티플렉스의 탄생은, 다양한 영화를 즐기고 싶은 영화애호가들을 기쁘게 했다. 그 기쁨이 오래가지는 않았지만….

외국의 흥행 대작, 방학특선영화, 명절특선 영화, 멀티플렉스 유관 기업의 투자영화들이 개봉할라치면 극장가는 일제히 매스게임을 펼친다. 멀티플렉스는 이제 ’똑같은 영화를, 작은 방 여러곳에 나눠앉아 본다‘는 뜻이 되어버렸다. 사람들이 많이 찾아서 상영관이 늘어나는게 아니라, 많이 볼 것 같은 영화, 비싸게 사온 영화를 와이드 릴리즈하고 보기 싫으면 말라는 식이다.

‘1000만영화’ 명량과 국제시장에 이어 최근 ’연평해전‘이 1000개가 넘는 상영관을 확보하는 개가(?)를 올려 화제다(하루만에 줄어들기는 했다).

2002년 국민들을 놀라게하고, 가슴아프게 했던 연평해전. 많은 이들이 기억하고 애통해하는 사건이지만, 영화적인 완성도는 다른 문제다. 철저히 돈에 따라 움직이는 멀티플렉스들이 과연 1000개의 스크린을 열어줄 정도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갖는 사람도 없지 않다. ‘국민적 관심사를 다룬 영화는 대승적 차원에서 스크린을 대량 제공할 수 있다’는 조항이 있을리 만무하다. 정치적인 논란은 둘째 문제다. 왜 작은 영화들은 그렇게 잡기 힘든 ‘귀하신’ 스크린이, 어떤 경우에는 이렇게 후한걸까.

withyj2@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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