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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리즘 - 박도제]잘려진 고양이 머리
40대 들어 불편하게 살기로 마음먹은 터였다. 6월 어느날 출근길 버스정류장에 줄을 서 있던 A 씨는 마을버스 지붕에서 ‘쿵’하는 소리와 함께 잘려진 새끼 고양이 머리가 땅바닥으로 떨어진 것을 목격했다. 하얗게 질린 고양이 얼굴에 첫차를 기다리던 주민들의 비명이 터져나왔다. A 씨도 고개를 돌렸다.

평소 같으면 그냥 지나쳤겠지만, A 씨는 이날 따라 ‘제보 시민’이 되고 싶었다.

밤새 민원 전화로 지친 듯 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제보 하려고요. P 아파트 입구정류장에서 잘려진 새끼고양이 머리가 버스 천장에서 바닥으로 떨어졌어요. 정신 이상자가 던졌을 수도 있으니, 확인이 필요한 것 같아요. 혹시 사이코패스일 수도 있잖아요.”

“어느 아파트라고요? 출동해서 조치하겠습니다.” A 씨는 제보 시민으로 거듭난 것이 내심 뿌듯했다. 며칠 전에 잘려진 생쥐 머리까지 목격한 까닭에 ‘사이코패스의 추가 범죄를 막는 데 기여했다’는 벅찬 감정이 들기도 했다.

정확히 5분 뒤 A 씨의 스마트폰에는 저장되지 않은 번호가 하나 떴다. 다소 이른 시간이었기에 그는 직감적으로 경찰일 것이라 생각했다.

“경찰입니다. ○○아파트 ○○○동 앞입니다. 고양이 시체는 보이지 않는데요.”

한숨부터 나왔다. “도대체 신고 내용을 어떻게 전달 받으신 거예요. OOO동 앞이 아니라 아파트 입구 마을버스 정류장이라니깐요. 그리고 고양이 시체가 아니라, 잘려진 고양이 새끼 머리라고요.” 제보 시민으로 거듭났다는 뿌듯함은 경찰에 대한 답답함으로 변하고 있었다.

이틀 뒤 A 씨는 다시금 112를 눌렀다. 버스 업체 등을 통해 제보 내용을 확인하는 데 그 정도의 시간은 걸릴 것이라 생각하며 이틀이나 꾹 참아온 상태였다.

“그제 신고한 사람인데요. 후속조치에 대한 연락이 없어 전화했어요. 고양이머리 사건은 어떻게 됐나요?”

“제가 담당자가 아니어서요. 아파트 앞에 잘려진 고양이 머리가 없었다라고만 기록돼 있어요. 세부적인 내용은 출동했던 경찰을 통해 이야기 들을 수 있습니다.”

제보 시민으로 거듭나기로 마음먹고 112를 누른 것에 대한 후속 조치가 너무 성의없게 느껴졌다. 사이코패스의 추가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 최소한의 조치도 하지 않는다는 생각에 경찰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 죄다 떠오르는 듯했다.

곧 출동경찰로부터 본격적인 수사를 하려면, 지구대에 와서 조서를 작성해야 한다는 얘기와 그리고 불편하더라도 그렇게 하겠냐는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별 일도 아닌 것 가지고 호들갑 떤다’는 속내가 들리는 듯했다. 기왕 불편하게 살아보겠다고 마음 먹은 까닭에 A 씨는 쉽게 포기할 수 없었다. 그는 기어이 지구대로 찾아가 다시금 잘려진 고양이 머리에 대해 조사해줄 것을 요청했다.

그날 A 씨는 밤 9시가 넘은 시점에 아파트로 찾아온 경찰차를 옆에 두고 신고 조서를 작성해야 했다. 경찰차 경광등 불빛 사이로 아파트 주민들의 의심스런 시선이 쏟아졌다. 동시에 A 씨의 제보 정신은 고양이 머리처럼 잘려 나갔다. pdj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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