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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47일간의 세계여행] 37. ‘잉카 영광’ 품은 3300m 쿠스코…갑자기 고산병이…
[헤럴드경제=강인숙 여행칼럼니스트] 버스는 18시간을 굽이굽이 산길을 돌고 돌아 쿠스코(Cuzco)로 오른다. 인도에서 밤기차나 야간버스를 많이 타봤지만 남미의 야간버스는 또 다르다. 산악지대가 많은 남미의 특성상 기차가 아니라 버스 등의 차량이동을 해야만 하니 버스체계가 발달되어 있다. 내가 탄 쿠스코로 가는 버스는 와이파이도 되고 예쁜 승무원이 서빙도 해주는 호화(?)버스다. 식사와 음료도 서빙되고 화장실까지 버스 안에 갖춰져 있다. 여행지에서 무료 와이파이를 찾는 것도 일인데 오랜만에 한국에 있는 사람들과 연락도 한다.

그런데 밤이 깊어지고 버스안의 사람들이 다 잠들었을 즈음 슬슬 배가 더부룩하고 속이 불편해진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좌석이 맨 뒤라 승무원과 화장실이 가깝다. 서너 번을 화장실에 들락거려 속을 비운다. 처음에는 고산증세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버스여행의 후유증인가 싶었지만 시간이 흐르고 높이 오를수록 그것이 고산 증세임을 깨닫게 된다.

그렇게 고산 증세는 가끔 머리를 아프게 하거나 배에 가스가 차게 하긴 했지만 도저히 견딜 수 없는 것은 아니어서 다행이다. 고산 증상이 오는 사람은 남녀노소의 차이가 아니라 개인차라고 한다. 운이 매우 나쁘면 몸이 고지대에 적응을 못해 낮은 지대로 내려가야 한다. 고산병이 한번 걸리면 그저 내려가는 것밖엔 방법이 없다. 다행히도 내 몸은 소로체라는 고산병 알약 몇 알을 복용하는 것으로 진정이 되니 너무도 고맙다.



아침이 되고 풍경이 창밖으로 보인다. 버스는 계속 쿠스코를 향해 오르고 있다. 해발 2,500, 2,800, 3,000m… 고도가 높아질 때마다 옆 좌석의 여행자는 고도계를 보여준다. 쿠스코보다 더 높은 네팔의 푼힐도 트레킹 했었는데 그때는 며칠을 걸어서 올라갔고 지금은 버스로 단시간에 고도 변화를 겪어서인지 몸이 푸석푸석하다. 그래도 이만한 걸로 다행이다.

예약한 게스트하우스에 짐을 풀고 근처의 세탁소에 빨래를 맡긴다. 리마의 눅눅함과 와카치나 사막의 모래, 바예스타의 짭짤한 바닷물이 스민 빨래들을 맡기고 나니 속이 다 후련하다. 지난밤 피로도 잊고 광장으로 나간다. 피곤해도 도미토리의 침대나 숙소 마당에 널브러져 있는 게 더 싫다. 



아르미스 광장(Plaza de Armis)으로 나간다. 이제서야 알게 된 것이지만 스페인 언어권의 남미의 도시에서 중앙광장은 주로 아르미스광장(Plaza de Armis)혹은 마요르 광장(Plaza de Mayor)이다. 인도의 주요 도심 거리이름이 MG로드인 것처럼 말이다.

아르미스 광장에 서니 대성당(Catedral)이 보인다. 바로크 양식으로 지어진 아름다운 성당이긴 하지만 스페인 침략 시절에 잉카의 신전을 부수고 세워졌다고 한다. 침략의 역사로 남은 스페인의 잔재를 이 고지대에서도 본다. 잉카의 유적을 가대하고 왔는데 쿠스코 시내는 온통 스페인풍이다. 거리의 아케이드에는 스타벅스 같은 다국적 매장들이 늘어서 있어서 여기가 쿠스코라는 사실을 잊게 한다.



3,300m의 고지대이긴 하지만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아늑한 느낌을 주는 쿠스코는 옛 잉카 제국의 수도였다. 이 지형이 천연의 요새가 되어주고 주변에는 우루밤바 강(Rio Urubamba)이 흘러 농경지까지 확보하여 수도로써 안성맞춤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스페인군을 물리치지 못하고 잉카는 멸망해 간다. 이 스페인 분위기의 광장에서 고대 잉카 문명을 느끼기엔 역부족이다.

‘세계의 배꼽’이라는 의미를 가진 도시 쿠스코는 스페인의 침략에 무력화 되어 약탈당하고 유린당한 쿠스코에는 잉카제국 신전이 섰던 자리에 유럽의 건축물이 세워져 있다. 이런 질곡의 역사를 가진 쿠스코지만 그렇다고 현재의 모습을 부정할 수는 없다. 페루의 카톨릭 인구는 전체 인구의 90%이상이라고 하니 침략당한 역사 속에서 수용한 종교의 울림은 다른 어느 지역보다도 각별히 크다. 



오후의 교회 앞에서 예복을 차려입은 사람들을 만난다. 결혼식이다. 바닥에 주저앉아 사람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재미있다. 어느 나라에서 왔느냐를 묻는 사람들에게 서툰 스페인어로 요 소이 꼬레아나(Yo soy Coreana)라고 한국 사람이라고 하면 늘 따라 붙는 질문은 “남쪽인가 북쪽인가?”이다. 언젠가 부터는 꼭 꼬레아 델 수르(Corea del Sur), 남한이라고 말하게 된다. 분단국가로 전 세계에 각인된 우리나라의 슬픈 현실이다. 그러나 저러나 스페인어를 잘 못하는 것은 너무 답답하다.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없으니 말이다. 



골목의 돌담이 빈틈없이 쌓여있다. 7각,8각형 정도는 기본이다. 최대는 12각의 돌도 있다. 이런 촘촘한 돌로 쌓여진 벽은 정교하고 튼튼해서 대지진에도 끄떡없었다고 한다. 잉카인들의 지혜와 석공기술을 보여준다.

좁은 골목을 돌아다닌다. 잉카인들의 후예들이 물건을 판다. 어느 티셔츠 가게에서 산 주황색 티셔츠는 이 여행 내내 나의 베스트 아이템이 되었다. 



외곽으로 갈수록 산기슭마다 비슷비슷한 모양의 집들이 모여 있고 광장을 중심으로 뻗은 가게들은 아기자기하다. 관광객 상대의 가게들이라 흥정하는 재미도 있지만 떡하니 정가를 붙여놓은 곳에선 그런 즐거움은 없다.

여태까진 날씨가 더웠는데 고지대라 그런지 이곳은 쌀쌀하다. 남미는 지금이 여름이지만 고도차 때문에 기후가 들쑥날쑥하다. 이젠 다시 바람막이를 꺼내 입고는 알파카로 만든 숄이나 외투를 파는 고급 매장에 들어가 아이쇼핑을 한다. 원산지라 싼 가격이라는데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수 십 만원을 호가한다. 가난한 배낭여행자는 그냥 구경하는 것으로 만족이다.



밤새 버스로 쿠스코를 향해 올라와서 다시 밤이 된다. 쿠스코의 야경은 아름답다. 그것은 대도시 빌딩라인이 만드는 아름다움이 아니다. 낮엔 산으로 둘러싸인 쿠스코라고만 생각했는데 밤이 오고 전기가 들어오니 풍경이 바뀐다. 먼 산에 반짝이는 별들이 가득하다. 지금 내가 있는 곳은 쿠스코의 중심이고 멀리 반짝이는 별들은 바로 쿠스코 외곽 산동네의 전깃불이다. 푸른 빛이 도는 형광등이 아니라 노란 백열등이라서 더 따스하게 보인다. 아르마스 광장에는 현지인들과 여행자들이 밤의 쿠스코를 즐기고 있다. 사람 사는 온기가 느껴져서일까? 아케이드 매장의 손님을 유혹하는 환한 불빛보다 멀리 산기슭에서 반짝이는 별들에 눈길이 간다. 산동네에서 내려다보는 이 광장은 어떤 모습일까 궁금해진다. 눈에 보이는 풍경보다 내 안의 풍경이 더 아름다웠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따뜻한 저 불빛들을 본다.


정리=강문규기자mkka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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