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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이프 칼럼-김다은]장미의 이름, 보다 유혹적인
1327년 겨울, 이탈리아 북부의 베네딕트 수도원에서 수도사들이 차례로 죽어서 발견된다. 황제의 명을 받고 마침 수도원에 머물게 된 월리엄 수도사가 죽음의 원인을 추적한다. 수도사들의 억눌린 성과 관련된, 혹은 권력 다툼과 관련된 연쇄살인으로 보인다. 하지만 수도사들의 혀가 한결같이 검게 변색된 채 죽은 것이 단서였다. 이들은 독을 발라놓은 줄도 모르고 금서를 읽었던 것이다. 책장을 넘기기 위해 손으로 침을 묻혔고, 손가락에 묻은 독이 혀에 닿아 독살된 것이었다.

움베르트 에코의 장편소설인 ‘장미의 이름’이 떠오른 것은 며칠 전 황당한 사건을 겪은 직후였다. 연구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 돌아보니, 같은 층의 교수가 커피 한 잔을 쥐고 들어섰다. “막 내린 원두커피인데, 일찍 출근하신 것 같아 한 잔 가져 왔어요”라며 웃었다. 커피 향이 코에서 몸 전체로 퍼져들면서, 그처럼 황홀한 모닝커피를 마신 기억이 없을 정도였다. 마지막 한 방울까지 마시고 잔을 내려놓았을 때, 건강검진용 채혈을 위해 전날 저녁부터 물 한 방울도 입에 넣지 않고 있었던 사실을 깨달았다. 급한 이메일을 처리하고 병원갈 참이었는데, 까마득하게 잊어버리고 고스란히 커피를 마셔버렸던 것이다.

소설 속에 설정된 문제의 금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2’로 희극의 시학을 다룬 필사본이다. 베네딕트 수도원에서는 웃음이 인간의 두려움을 없앤다고 믿었다. 두려움이 없으면 인간은 신을 믿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가짜 진리를 신봉한 살인자는 결국 독을 바른 책을 씹어 먹으며 불길 속에 타 죽어간다. 장미는 가짜 진리에 대한 맹신의 상징이다. 그래서 소설 ‘장미의 이름’에는 장미가 한 송이도 보이지 않으며, 장미에 대한 유일한 구절은 “태초의 장미는 이름으로 존재하나, 헛된 이름일 뿐(stat rosa pristina nomine, nomina nuda tenemus)”이다.

커피? 연구실에는 여러 종류의 커피가 이미 쌓여 있었으니, 단순히 커피에 매혹된 것은 아니다. 신선한 5월의 아침에 커피 잔을 든 여교수가 등장해서 커피를 내밀었다. 그리고 그녀는 장미보다 더 유혹적인 어떤 행위를 한 것이다. 그녀의 미소였다. 입가의 근육을 살짝 움직이는 것만으로 그녀는 10시간 이상 음식은 커녕 물도 마시지 않고 버텨 온 사람을 단번에 무장해제시켜 버렸다. 상대방은 무방비로 유혹 당해버렸던 것이다. 공복상태에서, 마신 검은 액체가 얼마나 달고 맛있었는지! 병원 예약을 취소하고도 오전 내내 혼자 웃었다.

베네딕트 수도원에서처럼, 우리 삶에 웃음이 금해진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웃으면 죽는다. 이 가짜 진리를 무너뜨리기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것은 너무나 간단하다. 한 번만 웃으면 된다. 그래서 웃음은 장미의 이름보다 더 유혹적인 신비다. 웃음처럼 간단한 기적의 변신이 있을까. 사람들 사이에 호감을 주고, 스트레스를 줄여 자신감을 준다. 심장병도 줄여주고, 암도 사라지게 해준단다. 한번 크게 웃으면 에어로빅 5분 한 에너지를 소모하게 해주고, 15초 동안 웃으면 수명이 이틀 늘어난다고 한다. 가짜 웃음조차 효과가 있다니! 루브르 박물관의 ‘모나리자의 미소’가 문득 떠오른다. 오늘따라 시인 김상용의 ‘남쪽으로 창을 내겠소’의 마지막 시구도 다르게 읽힌다. “왜 사냐건/웃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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