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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군 Story] 귀신잡는 해병, ‘열혈여아’도 있다
제주도에서 지원입대한 해병대 여자의용군들의 모습.

[헤럴드경제=신대원 기자] 우리나라 여군의 역사는 1948년 5월 제1육군병원 창설과 간호인력 선발 결정에 따른 같은 해 8월 간호장교 후보생 임관으로 시작된다.

하지만 일반병과로 범위를 좁히면 1950년 6·25전쟁 발발 이후 8월의 해병대 여자의용군이 처음이라 할 수 있다.

1950년 8월 당시 해병대는 인천상륙작전을 앞두고 제주도에서 학생과 교사, 청년 등 3000여명을 4개 기로 모집해 3개 보병대대를 증편했다.


제주도에서 지원입대한 해병대 여자의용군들의 모습.


이 가운데는 8월31일 제주 동초등학교 운동장에서 태극기를 가슴에 달고 입대식을 가진 126명의 제4기 해병대 여자의용군이 포함돼 있었다.

여성 육군이 같은 해 9월1일 창설명령에 따라 9월4일 입대식을 가졌다는 점에서 해병 여자의용군이 일주일가량 앞선 셈이다.

해병대 여자의용군은 여학교였던 제주여중과 신성학원, 남녀공학이었던 한림중학 소속 여학생들이 대부분이었으며 중학교를 마치고 교사양성소에서 학업을 이어가던 학생과 일부 미혼 여교사들이 포함됐다.

출발은 순조롭지만은 않았다. 여학생들과 여교사들은 이전부터 지원의사를 밝혔지만 당시 해병대사령관이었던 신현준 대령은 여성에 대한 배려 차원에서 완곡한 거절 의사와 함께 돌려보냈다고 한다.

하지만 낙동강 전선마저 위협받던 엄혹한 시기에 여학생들과 여교사들의 지원입대 의사가 거듭되자 신현준 사령관은 전방에 나서는 남자해병들 대신 행정과 서무 등 후방지원 업무를 맡길 수 있다고 판단하고 이들의 입대를 허용했다.

해병대 여자의용군 탄생에는 가슴 아픈 우리 현대사의 그늘도 자리하고 있다.

상당수의 해병대 여자의용군들이 자발적으로 지원하긴 했지만 1948년 제주 4·3사건의 영향으로 인해 의무감으로 지원한 경우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우여곡절 끝에 탄생한 해병대 여자의용군은 두 차례 훈련 끝에 정식 군번을 받을 수 있었다.

이들은 먼저 1950년 8월31일 입대식을 가진데 이어 9월2일 진해로 이동해 경화국민학교에서 기초훈련을 받았다.

이어 9월20일 기초훈련을 마치고 해군 신병훈련소 특별분대에 편입돼 또다시 본격적인 해병대 훈련에 돌입했다.

M1소총과 칼빈소총을 휴대한 단독군장으로 남자와 동일한 제식교련·총검술·사격훈련·포복훈련 등을 소화해냈다.

꽃다운 나이로 어여쁜 손에 펜 대신 총을 든 이들은 40여일간의 훈련을 마치고 1950년 10월10일 군번과 함께 계급장을 받아들 수 있었다.

이들 가운데 55명은 훈련 수료와 함께 바로 제대했으나 71명이 임관해 부대배치를 받았다.

장교 4명, 예비 조장(예비 상사) 2명, 예비 1등병조(예비 중사) 7명, 예비 2등병조(예비 하사) 15명, 예비 1등수병(예비 상병) 34명 등이었다.

같은 훈련을 받긴 했지만 여군과 관련된 제도가 채 정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학력과 나이 등을 고려한 조치였다.

이들은 이후 부산 해군본부와 진해 통제부, 해군병원 등에 배치돼 임무를 수행하다 6·25전쟁이 교착상태에 있을 때인 1951년 7월 무렵 대부분 제대했으며, 1955년 1월 장교 2명의 전역을 끝으로 역사의 뒤안길로 물러났다.

제주여중 학도호국단 간부로 최초의 해병대 여자의용군에 이름을 올린 문인순 여사는 당시의 경험을 ‘뿌리 깊은 빨간 오뚜기 91073’, ‘신병 훈련소’, ‘총소리 들으며’ 등의 시로 남겼다.

문인순 여사는 현재 전쟁기념관 여군실에 전시된 ‘빵모자’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해병대 여자의용군은 이후 오랫동안 맥이 끊겼다 2000년대 들어 여군장교와 부사관 배출로 다시 부활했다.

지난 2월에는 제주대학교에 재학중인 김상아(24)씨가 해병대 학군사관학교후보생(ROTC)으로 입단함으로써 최초의 여성 해병대 ROTC가 탄생하기도 했다.

남자들도 쉽사리 선택하지 못하는 해병대지만 ‘열혈여아’(熱血女兒)들의 도전은 끊이지 않고 있다.

현재 여성이 해병대 장교가 되는 길에는 세 가지가 있다.

우선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한 뒤 해병대를 선택하는 방법이 있다. 매년 2~3명의 여생도들이 해병대를 지원하고 있는 추세다. 다음으로 사관후보생 시험에 합격해 10주간의 교육수료를 마치고 임관하는 길이 있다. 또 김 씨처럼 해병 ROTC 선발시험에 합격한 뒤 해병대 ROTC로 입단할 수도 있다. 다만 제주대와 부경대, 한국해양대, 목표해양대 학군단만 가능하다.

이와 함께 매년 5월과 10월 중순 입영해 3년간 복무하는 여성부사관으로서의 길도 열려있다.

‘누구나 해병이 될 수 있다면 결코 해병대를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는 말은 126명의 해병대 여자의용군은 물론 현재의 여군 해병대원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 격언이다.



신대원기자/shindw@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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