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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장에서> 우왕좌왕 인사혁신처, 연금개혁 의혹만 확산
[헤럴드경제=김상수 기자]지난 9일 오전 10시. 인사혁신처 출입기자에게 문자가 도착했다. 당일 12시에 공무원연금 개혁안 재정분석 보고 간담회를 연다는 내용이다. 불과 2시간 전에 공지된 긴급 브리핑이다.

정부종합청사에는 순식간에 취재진으로 가득 찼다. 인사혁신처는 정부제시안과 새누리당안, 김태일 교수안, 김용하 교수안, 공무원단체 추정안 등 5개 주요 개혁안의 재정분석 결과를 발표했다.

그 결과 총 재정부담을 줄이는 데에는 김용하 교수안이 394조원 절감으로 가장 효과적이며, 그 뒤로 새누리당안, 김태일 교수안 등의 순이었다.


숫자는 정직하다. 그런데 숫자를 두고 뒷말이 무성하다. 발표시점부터 결과물까지 갖가지 의혹과 불만이 쏟아졌다.

왜 인사혁신처의 ‘숫자’는 이런 불필요한 의혹까지 받게 된 걸까.

찬찬히 따져보면 이해하기 힘든 대목이 많다. 긴급 브리핑은 말 그대로 긴급한 사안에서 나올 일이다. 개혁안 재정분석이 중요한 사안임은 맞지만 촉각을 다퉈 발표해야 할 사안은 아니다.

강기정 새정치민주연합 정책위의장은 인사혁신처 브리핑 직후 “갑자기 인사혁신처의 발표가 나와 일정이나 의제 조율이 중단됐다”고 토로했다. 정작 논의 주체인 국회와도 논의되지 않았던 셈이다. 특정 개혁안을 유도하고자 사전 조율 없이 독단적으로 발표를 강행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인사혁신처도 왜 긴급 발표를 했는지 명확한 이유를 대지 못했다. 진정 뭔가 밝힐 수 없는 이유가 있는 걸까? 의혹은 또 의혹을 낳는다.

혼란은 그뿐 아니다. 부랴부랴 일정을 잡은 탓인지 엠바고 시간도 촌극을 빚었다. 엠바고는 불가피한 사안에 한해 일정 시점까지 보도를 유예하는 약속이다. 인사혁신처는 엠바고를 ‘새벽 1시’라는 얼토당토 않은 시간을 내놨다.

새벽 1시 엠바고가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통상 시차를 감안해야 하는 해외 국제기구의 발표나 정상의 해외순방 보도 정도다. 왜 그 시간으로 정했는지에 대해서도 시원한 설명이 없었다. 국민이나 당사자인 공무원은 다 자는 시간이다. 기자들의 항의가 잇따르자 부랴 오후 4시로 변경했다.

브리핑 후에도 혼란은 이어졌다. 이번엔 숫자가 틀렸다. 발표 내 기여율을 잘못 표기했다는 내용이다. 2시간 간격으로 2차례에 걸쳐 수정을 요청했다. 정부가 공식 발표한 자료에 숫자 수정을 요구하는 건 이례적인 일이다. 그것도 2차례나 말이다.

정부의 압박과 특정안을 유도하려 한다는 불필요한 의혹까진 제외하더라도, 이 모든 정황은 인사혁신처의 인식 수준을 가늠케 한다. 수백조원이 오가는 발표다. 숫자 하나에 미래세대가 달려있다. 빠른 합의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건 제대로 된 합의다.

‘배나무 밑에선 갓끈을 고쳐매지 마라’, ‘급히 먹는 밥이 체한다’. 어느 속담이 더 이 상황에 어울릴까. 둘 다 같다.

dlcw@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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