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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등포 ‘노숙인 밀당남’을 아시나요
쉼터, 쪽방촌 등 약 1300명 관리
“때론 단호하게 때론 다정하게”
죽어서도 천대받는 노숙인 현실


[헤럴드경제=이지웅ㆍ양영경 기자] ‘노숙인 밀당남’을 자처하는 사람이 있다. 서울 영등포역파출소에서 노숙인 반장을 맡고 있는 정순태(53ㆍ사진) 경위다. 그는 “밀 때는 경찰관처럼 단호하게, 당길 때는 상담사처럼 다독인다”며 5년차 노숙인 관리 노하우를 공개했다.

정 경위는 2010년 6월 중순부터 영등포 근방 공원, 광장, 쪽방촌 주변을 떠도는 노숙인을 관리하기 시작했다. 그 대상만 쉼터에머무는 600명, 쪽방촌에 거주하는 600명, 영등포역 등 거리노숙을 하는 100명을 포함한 약 1300명 규모다.

그는 거리에 방치된 노숙인들에 응급조치를 취하거나, 이들을 영등포 근방의 상담센터 2곳, 쉼터 4곳에 연결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최근에는 대포폰, 대포통장 등을 만드는 데 노숙인의 명의를 사용하는 범죄가 늘면서 이를 예방하기 위한 노숙인 교육도 한다.


지난 5년의 세월은 그의 일지에 빼곡히 담겨 있다. 한 번도 씻지 않아 새카맣다는 뜻에서 ‘까마귀’라고 불리는 노숙인을 데려가 빡빡 씻긴 일, 비닐봉투에 전 재산 405만7500원을 가지고 다니는 노숙인 할머니를 위해 통장을 만들어 준 일, 구걸하던 노숙인을 사회복지법인에 입학시켜 요양사로 만든 일 등 당시의 상황이 생생히 기록돼 있다.

특히 정 경위는 북한산에서 9개월 노숙을 하다가 2013년 3월 영등포로 넘어온 김모(54)씨 이야기를 강조했다. 등산객을 대상으로 구걸을 하던 김씨는 정 경위를 만난 후 “일을 하고 싶다”는 의견을 내비쳤다. 맨 처음 파출소에서 안전화를 대여해 막노동을 시작한 김씨는, 며칠만에 안전화를 반납하고 자신의 돈으로 안전화를 사 신었다.

일을 시작한 지 일 년이 지난 지금, 김씨는 노숙생활에서 탈피해 지금은 신림동 고시촌에 머물고 있다.

정 경위는 “‘초기 노숙’을 바로 잡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노숙생활이 길어질수록 탈출이 어려워지기 때문에 노숙생활에 막 접어든 사람이 자립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단 것이다. 그는 “노숙인 자활을 돕는 ‘빅이슈’처럼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이 일을 하다 보면 씁쓸한 순간도 많다. 거리를 전전하는 한 노숙인이 안타까워 수소문해 아들에 연락을 했더니 “아버지를 피해 사는데 왜 연락을 했느냐”는 말이 돌아왔다. 정 경위는 “가진 게 없어 죽어서도 천대받는 게 노숙인들의 현실”이라며 “노숙인 사망 후 시신인계를 거절하는 유족도 많다”고 했다.

정 경위는 노숙인 문제에 대해 “노숙인도 우리 사회에 실존하는 고민의 한 부분이 아니겠냐”며 “서로가 불편 없이 살아가기 위해선 노숙인 문제를 방치하기보단 공존하려는 해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plat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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