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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리즘-한석희]외환은행 노조의 투쟁기금 모금…왜?
어렸을 적 ‘개미와 배짱이’ 얘기는 귀가 닳도록 들었다. 뻔한 애기다. 개미처럼 평상시에 열심히 일 하고 저축 하라는 훈계다. 하지만 머리에 든 게 많아질 수록, 반대로 머리 숱이 적어질 수록 ‘개미와 배짱이’ 처럼 무수히 많은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게 되는 우화도 그리 많지 않다. ‘개미처럼 죽도록 일할 것인가’는 일차원적인 질문이다. ‘개미는 과연 누구를 위해 뙤약볕에 땀을 뻘뻘 흘리고 일을 했는가’라는 질문을 떠올리면 개미와 배짱이 모두 불쌍한 ‘미생’(未生)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게 된다.

뜬금 없는 애기냐고 하겠지만, 외환은행 노조가 투쟁기금을 모금한다는 소식에 ‘개미와 배짱이’ 얘기가 떠나질 않는다. 왜 지금 시점에 투쟁기금을 모금해야 하는지 갸우뚱하게 된다. 더 큰 문제는 노조가 ‘여왕개미’가 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감도 든다.

외환은행 노조는 이달 초 투쟁지침에서 “사측이 최악의 발악을 하고 있는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더 중요한 시기이고 보다 강력한 투쟁을 전개해야 할 때”라면서 34억원의 거액을 모금하기 시작했다.

노조가 투쟁기금을 모금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이번이 5번째다. 지난 2006년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팔겠다고 시장에 내놨던 2006년부터 4차에 걸쳐 총 125억원의 거액을 모았다. 물론 당시엔 명분이 있었다. 생존권이 걸려 있었고, 해외 투기자본의 먹튀 방지라는 대의도 있었다. 노조원이 아닌 지점장들까지 십시일반 돈을 보탰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지금은? 론스타를 그토록 집요하게 반대했던 시민단체 대표는 뒷돈을 받은 혐의로 구속 기소된게 불과 얼마전의 일이다. 게다가 들리는 말로는 직원들의 반발도 크고 참여율도 저조하다고 한다.

최근 외환은행 한 직원은 행내 게시판에 “노조집행부에서 진행중인 투쟁기금 모금에 대해 직원들의 의문이 많다”며 “왜 추운날씨에 금융위 앞에서 계속 노숙투쟁을 하는지 그 목적도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이 직원은 또 “배보다 배꼽이 크다고…광고비 보다 홍보자문/대행비를 더 많이 지출한다는 게 상식적인가요?”라며 투쟁기금의 사용집행 내역에 대해서도 조목조목 꼬집었다.

이 대목에 가면 노조의 주장대로 ‘만일의 사태’(?)에 대한 준비금조로 투쟁기금을 모금한다는 데에 물음표를 가질 수 뿐이 없다. 추운 겨울을 나기 위한 돈을 모으는 개미인가, 아니면 개미들이 열심히 일해 번 돈을 뜯어가는 여왕개미이냐의 물음 말이다. 게다가 ‘대화와 협상’이 필요한 시점에 법원의 판결만 믿고 통합을 저지하기 위한 장기투쟁을 염두에 두고 있는게 아니냐는 의구심도 떨칠 수 없다.

‘노조’라는 일반명사에 곧잘 따라 붙는 단어가 ‘민주주의’다. 민주주의 좋은 단어다. 하지만 “민주주의는 모든 사람에게 그 자신이 압제자가 될 수 있는 권리를 준다”는 제임스 러셀 로웰의 말처럼 민주주의라는 허울은 역설적이기도 하다. 대화와 타협이 필요한 시점에 벌이는 외환은행 노조의 투쟁기금 모금이 직원들에게 또 다른 ‘압제’가 되질 않길 바랄 뿐이다. hanimom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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