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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쉼표] 불황수출
지난 1997년 말 동아시아 외환위기가 터지자 국제통화기금(IMF)이 구제금융을 대가로 내놓은 것은 고금리 처방이었다. 자본시장 규제를 풀고, 자산 매각을 포함한 고강도 구조조정과 함께 금리를 올림으로써 해외자본의 유입을 촉진하도록 한 조치였다. 이는 가뜩이나 자금난에 시달리던 기업들에 치명타를 가해 기업의 줄도산과 함께 실업자를 양산했다. 파산 지경에 놓인 한국이나 인도네시아, 태국은 이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고, 선진국 자본은 알짜배기 자산을 헐값에 매입해 막대한 시세차익과 환차익을 거두었다.


그로부터 16년이 지난 오늘날 미국이나 일본, 유럽연합(EU) 등 선진국의 경제난에 대한 처방은 이와 정반대다. 초저금리로도 경제가 살아날 기미를 보이지 않자 돈을 시중에 푸는 양적완화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일본이 10여 년 동안 이를 실시한 데 이어 미국이 6년 동안의 양적완화를 통해 경기회복의 전기를 마련했고, 지난주에는 EU가 1조1400억유로의 대규모 양적완화 계획을 발표했다. 양적완화는 초저금리와 통화가치 하락을 통해 기업의 대외경쟁력을 향상시켜 경기를 회복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고통이 뒤따르는 구조조정 대신 불황을 수출하는 전략이다. 글로벌 경제를 구성하는 어느 누군가는 그 부담을 떠안을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그 희생양이 신흥국이 될 것이라는 우려를 지속적으로 표시해왔다.

동아시아 외환위기와 선진국 경제난, 그 처방을 단순비교하긴 어렵지만, 이것이 우리가 당면한 현실이다. 비정한 자본의 논리,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것이다. 양적완화와 환율전쟁의 파장, 불황수출의 희생양이 되지 않도록 철저히 대비해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해준 선임기자/hj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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