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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리즘-한석희]고리타분한 변명에 시장은 작두 탄다
청양(靑羊)의 해다. 성격이 온순해 좀체 싸우는 일이 없는 양(羊)에 긍정적인 기운의 청(靑)까지 겹친 해라고 한다. 해가 바뀌면 으례 기대감을 갖게 하는 말이려니 싶다. 그런데 마냥 좋을 것 같은 기대감(?)이 때로는 독(毒)이 되기도 하고, 화(禍)의 원인이 되곤 한다. 아이러니하다. 최근 금융시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두 개의 장면을 보자. 하나는 바로 어제, 그리고 또 하나는 3개월째 질질끌다 외통수에 몰린 격이다.

장면 하나.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2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금리를 낮추는 문제는…” 이라는 답변으로 시장에 섣부른 기대감을 줬다. 아니 기대감(?)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금리인하라는 확신”(A증권사 관계자)과 함께 “금리를 낮춰야 한다는 방향성”(B증권사 관계자)까지 제시했다고 봐야 옳을 것이다.

시장은 이미 벌써부터 금리인하 기대감을 키우고 있었으니, 이제 불 붙기 시작한 장작불에 부채질을 한 꼴이다. 박 대통령과 청와대가 나서서 “원론적인 답변”이라고 항변하지만 이를 곧이 곧대로 믿을 사람도 없을 뿐 더러, 시장도 그렇게 반응을 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박 대통령의 발언 이후 국고채 3년물 금리가 한 때 기준금리(2.00%) 밑으로 떨어진 사실(fact)에 마냥 “원론적인 말을 한 건데 시장이 민감하게 받아 들였다”고 할 수 있는 노릇도 아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이 “금리의 ‘금’자도 얘기하지 않았지만 척 하면 척”이라고 말해 구설수에 올랐던 게 불과 얼마전(2014년 10월)의 일이다. 정권 초기엔 김중수 한은 총재와 청와대ㆍ현오석 부총리가 금리인하 여부를 놓고 살얼음판을 걷던 시기,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백브리핑을 자처하며 ‘금리인하는 우리의 바람이지, 이를 강요할 수 없지 얂냐’고 애써 진화하던 일도 있었다. 그런데 이젠 대통령이 나서서 시장이 민감하게 반응할 게 뻔한 ‘금리’를 언급했는데, 단순히 해프닝이나 원론적인 답변으로 치부할 수 있겠나.

장면 둘. 최근 금융위원회의 입장 선회(?)로 변곡점에 놓인 하나금융과 외환은행의 통합 과정도 정부 당국이 혼선을 부추기고, 섣부른 기대감을 갖게 하기는 마찬가지다.

신제윤 위원장은 지난해 줄곧 “당연히 노조와의 합의를 전제로 (통합이) 추진돼야 한다” “(5년 독립경영 보장 내용을 담은) 2ㆍ17 합의서는 지키는 것이 타당하다”고 말했다.

노조와의 합의가 없으면 접수조차 받지 않겠다고 했으니 노조에겐 그야말로 날개를 달아준 격이다. 애초 시장의 눈에선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는 ‘2ㆍ17 합의서’를 외환은행 인수 조건에 내걸은 것도 발 등에 불 붙은 금융위가 자초했다.

치열한 수 싸움이 난무하는 협상장에 앉는 이들 앞에서 자신의 패를 모두 내보인 모습이니, 노조가 어깃장을 놓을 수 있는 여지를 스스로 만들어 준 셈이다.

흔히들 시장은 살아 꿈틀거리는 생명체라고 한다. 바늘로 살짝만 찔러도 움찔하거나 요동을 친다. “원론적인 애기였다”는 고리타분한 변명에 시장은 위태위태 작두를 탄다. “입은 있어도 말은 하지 못한다” “입 닫은지 오래다”라는 듣기에 거북한 말이 필요할 때도 있다는 말이다. hanimom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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