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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X파일]조양호 회장님, 12년前 ‘기자폭언’ 사과 약속은요?
[헤럴드경제=홍성원 기자]‘땅콩 회항’ 사건으로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핫이슈’로 떠올라 있습니다. 그의 아버지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도 딸이 사회적 물의를 빚고 있는 데 대해 12일 “제가 (자식) 교육을 잘못시킨 것 같다”며 대국민 사과를 했습니다. 조 전 부사장도 같은 날 조 회장에 이어 사과를 했죠.

한진가(家) 부녀(父女)의 이런 ‘세트 사과’는 이 글을 쓰는 기자에게 잊고 지냈던 12년 전 기억을 떠올리게 합니다. 조양호 회장과의 인연입니다. ‘땅콩 회항’ 논란에서 드러나는 ‘폭언→대한항공 직원들의 사건 은폐시도’의 구조와 엇비슷합니다. 다른 게 있다면 기자와 조 회장간 ‘사건’은 일반에 전혀 알려지지 않았고, 조 회장은 사과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다는 점 정도입니다. DNA는 바뀌기 어렵다는 걸 절감하며 12년 전 상황을 복기합니다.


2002년 11월 17일, 당시 기자가 재직 중이던 신문사에서 취재 지시가 내려왔습니다. ‘조중훈 한진그룹 회장이 사망했으니 인하대 병원으로 가라’였습니다. 사회부 소속이었기에 그 날이 일요일임에도 군말없이 달려갔습니다. 한 시간 가량의 병원 취재 끝에 고인의 장례는 회사장(葬)으로 치러져 시신은 대한항공 서소문 사옥으로 옮겨진다는 얘길 듣게 됐습니다.

관련 사항을 회사에 보고를 한 뒤 기자는 그 서소문 사옥으로 이동했습니다. 대기 시간만 3~4시간이었습니다. 장례가 시작될 때까지 할 수 있는 게 없었습니다. 오후 8시께, 사옥의 각 층을 모두 돌아 다녀보기로 했습니다. 고인의 시신이 잘 도착했는지가 우선 궁금했기 때문이고, 어디에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한 층에 도착했을 때 사람들이 웅성웅성하고 있었습니다. 대여섯 명의 인부가 관(棺)처럼 생긴 걸 설치하는 중이었죠. 기자의 출입을 제지하는 사람이 없었기에 인부들에게 다가가 “이게 뭐냐”고 물었습니다. 한 관계자는 “시신 부패를 막는 냉장관”이라며 “주문을 늦게 하는 바람에 며칠이나 철야 작업을 했고 겨우 겨우 이제야 갖고 온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시신은 어디에 있나”라고 기자가 묻자, 이 관계자는 “회장네 집에 있지. 썪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인하대 병원에서 기자가 들은대로라면 고인은 3~4시간 전에 이 사옥에 도착해 있어야 했는데, 냉장관 설치가 지연돼 자택으로 향했단 얘기였습니다.

이런 식의 질문 두어 개를 하고 딱히 할 것이 없어 그 방에서 나가려던 찰나, “당신 뭐야”라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딱 봐도 조양호 회장이었습니다. 기자는 “○○신문 기자입니다”라고 신분을 밝혔습니다. 조 회장은 오른손을 들어 휘두르려는 동작과 함께“맞고 싶지 않으면 여기서 나가”라고 했습니다. 기자는 눈과 귀를 의심했습니다. 그래서 “○○신문 기자라고요”라고 재차 신분을 밝혔고, 그제서야 조 회장은 옆의 직원들에게 “밖으로 모셔”라고 했습니다. 직원들이 기자의 몸에 손을 대려 하기에 뿌리치고 제 발로 걸어 나왔습니다.

기자는 당혹감과 굴욕감에 조 회장의 언행을 윗선에 보고하고, 당시 상황을 담은 현장 기자용 칼럼을 준비했습니다. 냉장관 설치지연과 관련해선 한진그룹의 미래를 책임질 조양호 회장이 좀 더 꼼꼼하게 일을 처리해야 한다는 내용도 적었습니다. 이 내용을 사전에 파악했는지, 대한항공 홍보 임원들은 기자를 찾아와 고개를 숙이며 대신 사과를 했고, “회장님도 조만간 사과를 하시기로 했다”고 말했습니다. ‘한국에서 상주(喪主)를 비판하는 글을 쓰는 건 가혹하다’는 현실적인 조언도 뒤따랐습니다. ‘상가(喪家)에서 뺨맞기’라는 제목의 5매짜리 글이 빛을 보지 못한 이유들입니다.

조양호 회장은 여전히 기자에게 사과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당시 ‘회장님 사과’를 얘기한 홍보임원이 임기응변식으로 기자에게대처한 것이라면 조 회장은 자신이 어떤 잘못을 했는지 인지조차 못하고, 사과 약속도 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번 ‘땅콩 회항’ 사건 이후 대한항공 직원이 피해자인 사무장을 찾아가 사건 전말을 왜곡하려 했다는 보도가 나온 걸 보면 더욱 그렇습니다. ‘땅콩 회항’사건이 어떻게 처리될지 지켜보고 있습니다.

/hongi@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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