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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요광장> 국회 예산심의의 진화
정용덕(서울대 명예교수ㆍ행정학)


국회가 2일 내년도 예산안을 통과시킬 것이라는 소식이 들린다. 민주주의 나라의 국정운영에서 예산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2013년 미국에서 발생했던 소위 ‘셧 다운(shut down)’ 사태를 통해 짐작할 수 있다. 주어진 기한 내에 예산안 통과를 하지 못함으로써 연방정부 예산을 쓰는 대부분의 조직이 반달 동안 마비되고, 약 210만 명의 연방공무원들이 무기 휴가 등으로 직무 수행에 차질이 빚어졌다. 세계에서 가장 다원적이고 실용적인 미국 정치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게 된 배경이기도 하다.

한 나라의 예산결정 양식은 민주화의 진전에 따라 분화된 다양한 집단과 정당을 매개로 국민의 선호가 국정에 적절히 반영되도록 진화해 온 결과라는 것이 다원주의 이론가들의 시각이다. 이처럼 여러 집단과 정당 간의 협상과 절충에 의해 예산결정이 이뤄지는 만큼 경제적 합리성에는 부합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국민의 다양한 선호를 민주적으로 집합(agregation)해 낸다는 정치적 합리성 면에서는 최선의 현실적 방식인 것으로 여긴다. 대한민국 출범 이후 우리도 수차례에 걸친 개정을 통해 국제표준에 부합하는 다원주의 예산회계법이 만들어져 운영되고 있다. 이와 같은 다원주의적 예산결정 방식에 대한 비판이 신우파 이론가들에게서 제기된다.

국민들의 선호를 집합해내기는커녕 오히려 왜곡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관료들의 예산극대화, 집권정부의 선거경제주기 조작, ‘쪽지예산’을 놓고 밀실에서 전개되는 예결소위의 담합과 지역구 챙기기 등은 신우파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좋은 예다.

다원주의 예산결정에 대한 또다른 시각의 비판이 관료엘리트주의 이론가들에 의해 나온다. 이들이 보기에, 사회집단 및 정파적 선호의 단순 집합을 넘어서는 국가(nation) 전체의 발전목표가 필요하다. 이 발전 목표를 추진하기 위한 정책과 예산의 결정은 사익을 초월하여 국가(the state)의 이성을 발휘할 수 있는 뛰어난 정치지도자와 엘리트 관료들이 담당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기획처,재무부, 경제기획원, 재경원, 기획예산처, 기재부로 이어져온 역대 중앙예산기구가 주도해서 편성한 예산안을 여당이 국회에서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통과시킨 것, 역대 국회의 행정부 예산안 수정이 약 1%에 불과했다는 것 등은 관료엘리트주의의 설명력을 입증한다.

더 나아가 마르크스주의 이론가들이 보기에 자본주의 국가의 정책과 예산은 정경유착에 의해 혹은 구조적인 이유로 인해 자본(가)의 이익을 보호하고 지원할 수밖에 없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 19세기 비스마르크의 복지정책이나 20세기 루즈벨트의 ‘뉴딜정책’ 등도 궁극적으로는 자본가들의 이익을 위한 것으로 환원시킨다.

민주주의 이행 이후 우리나라 국회의 역할이 크게 향상된 것도 사실이다. 과거에 비해 “예산결정의 중심이 행정부에서 국회로 상당부분 이전되고 있다”는 전직 기재부 장관의 견해가 이를 뒷받침한다. 국회운영 면에서도 눈에 띠는 변화가 이뤄지고 있다. 특히, 2012년 국회법을 개정하며 도입된 국회선진화법이 한 몫을 하고 있다. 여당은 국회의장의 직권상정을 포기하고, 야당은 예산안의 헌법상 처리시한을 준수하도록 한 것이다.

그해 치러질 총선과 대선에서 여야가 모두 결과를 예측할 수 없었던, 일종의 ‘베일의 장막’에 가려진 상황에서 이 법이 도입된 이후 지난 2년 동안에 여당은 ‘후회’하고 야당은 ‘쾌재’를 부르는 양상이 나타났다. 그러나 이번 예산심의에서 야당이 극적으로 합의하도록 만드는데 결정적으로 위력을 보였다.

이 제도를 존중하면서 여야당의 간부들이 발휘한 리더십도 돋보인다. 이처럼 여야가 합의와 절충을 통해 예산심의를 마치게 된 것은 한국의 의회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하나의 디딤돌이 된 것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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