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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토요토미 히데요시 입맛 사로잡은 日553년 기업 몰락
[헤럴드경제=천예선 기자]553년 역사를 자랑하는 일본의 한 제과업체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연양갱을 최초로 만든 일본 정통 화과자업체 ‘스루가야(駿河屋)’ 얘기다.

스루가야는 총수의 불법증자 스캔들과 경영악화를 이기지 못하고 지난 6월 결국 문을 닫았다.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일본 다도(茶道)의 완성자 센리큐의 입맛을 사로잡았던 아시아 양갱의 전설 ‘스루가야’는 어쩌다 비운을 맞게 됐을까.

사진1.2: 일본 양갱

▶ 553년 명맥 끊긴 스루가야=시장조사업체 도쿄상공리서치에 따르면, 일본에는 100년 이상된 장수기업이 2만7411개에 달한다. 이중 500년이 넘는 기업은 158개다. 대부분 양조, 여관, 기모노, 건설 분야 등에 포진돼 있지만 화과자 등 제과 업계에서 500년 이상 장수 기업을 찾기는 매우 드문 일이다.

그중 하나가 스루가야다. 일본의 무로마치 막부 시대(1338~1573) 중기 1461년 창업했다.

초기 상호는 ‘츠루야’였지만 도쿠가와 5대(代) 장군인 쓰나요시의 딸 츠루히메가 기슈지방 도쿠가와 가문으로 시집가게 된 것을 계기로 이름이 바뀌었다.

스루가야의 전신 ‘츠루야’는 상호 이름에 츠루히메의 이름 ‘츠루(鶴)’가 들어간 것을 송구하게 생각하면서 ‘츠루야’라는 이름을 쓰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츠루히메의 시댁 도쿠가와 가문이 ‘스루가야’라는 이름 하사한 것이 유래가 됐다.

스루가야가 연양갱을 처음 만든 것은 1589년이다. 팥에 우묵가사리 추출물인 한천을 첨가해 설탕으로 조려 응고시킨 것이 일본 정통 화과자 양갱이다. 


▶영욕의 현대 스루가야=이후 근ㆍ현대를 거치면서 스루가야는 1944년 주식회사로 전환하고 1953년에는 매장을 일반에 공개했다. 1961년에는 도쿄증시에 상장하며 승승장구했다.

유명세 탓에 1984년 일본 열도를 경악케한 4개 식품사 독극물 사건인 ‘글리코ㆍ모리나가 사건’ 때도 범인으로 추정되는 ‘카이진21멘소’로 부터 5000만엔 협박편지를 받기도 했다.

특히 스루가야 양갱은 답례품으로 인기를 모으면서 1992년 전성기를 구가해 매출이 60억엔(600억원)을 넘어서기도 했다. 

사진3: 와카야마 소재 스루가야 본사. [출처:니혼게이자이신문]

▶사장 체포와 함께 몰락=사세가 기울기 시작한 것은 2004년 창업가문의 오카모토 요시하루(57) 사장이 11억엔 규모 위장 증자 혐의로 체포되면서부터다.

당시 스루가야는 실적부진에 따른 주가하락으로 상장폐지 위기에 놓였다.

오카모토 사장은 상장 폐지만은 면하기 위해 위장 증자 형식으로 재정 강화를 가장하려는 악수를 뒀다.

경영악화 속에 총수의 체포는 치명적이었다. 500년간 쌓아온 신뢰가 한순간에 무너지면서 스루가야는 몰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설상가상으로 일본 경제가 장기침체 늪에 빠지면서 ‘불명예 회사의 포장지’는 답례품 시장에서 외면받았다. 또 경영진의 잇단 교체는 경영기반을 상실하는 악순환을 낳았다.

결국 스루가야는 지난 1월 와카야마 지방법원에 파산 보호를 신청하고 기업 회생을 목표로 했지만 끝내 무위로 돌아가면서 지난 5월 말 사업운영을 전면 중단했다. 

사진설명: 2004년 11월 15일, 오사카부 경찰이 스루가야 위장 증자 혐의로 본사를 압수수색하는 모습. [출처:니혼게이자이신문]

▶500년 기업의 쇠락 근본원인은=스루가야 망조의 결정적인 원인은 오카모토 사장의 체포였지만 서양과자의 범람도 한몫했다.

일본 젊은 세대들은 초콜릿이나 캔디, 케이크 등 서양식 디저트에 길들여 지면서 양갱은 점점 외면받기 시작했다.

2000년대 중반부터 스루가야의 실적부진은 눈에 띄게 늘었고 매출은 최고점(60억엔)에서 4분의 1수준으로 폭락했다.

여기에 아베노믹스(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경제정책)가 촉발한 엔저는 파국에 종지부를 찍었다.

월스트리트저널( WSJ)은 “스루가야가 재도약을 위해 몸부림쳤지만 밀가루와 설탕, 팥 등 원재료 수입가격이 엔저 여파로 급등하면서 이미 휘청거렸던 회사가 벼랑 끝으로 내몰려졌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아베 총리 취임 이전 2012년 당시 달러당 80엔이던 엔화는 최근 116엔을 기록하는 초엔저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데이코쿠데이터뱅크의 후지모리 토오루 정보부장은 니혼게이자이신문에 “스루가야가 파산의 길을 걷게 된 본질은 신용을 잃은 것”이라고 강조했다.

상장유지라는 신뢰와 500년 이상 ‘노렌’의 신뢰 가운데 스루가야는 전자를 선택하면서 쇠락을 피할 수 없었다는 의미다.

‘노렌’이란 일본 가게나 회사 앞에 상호나 문양을 넣어 발처럼 걸어놓은 헝겊을 말한다. 노렌은 ‘영업중’임을 표시하는 징표이지만 가게의 신용과 품격을 보여주는 고객과의 ‘무언의 소통’으로 여겨진다.

후지모리는 “노렌은 곧 안전의 다른 말”이라며 “맛과 품질 뿐만 아니라 제작자의 신뢰까지 끌어올리는 강력한 마케팅 도구”라고 설명했다.

일본에서는 스루가야 파산 결정 이후 스루가야를 살리자는 서명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스루가야 노동조합은 본사가 있던 와카야마 지방법원에 1만2000명의 서명을 제출했다.

스루가야 500년 전통의 제조법과 화과자의 형태, 점포, 공장, 무엇보다 장인정신을 이대로 폐기처분하는 것은 역사적 문화적 손실이라는 판단에서다.

그러나 한번 ‘노렌’을 잃은 스루가야가 양갱으로 소생하는 길은 쉽지 않아 보인다. 


/cheo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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