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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길용 기자의 화식열전> 얕보고, 방심하면 진다
진(秦)은 춘추시대 전만 해도 중원의 본류가 아니었다. 서쪽 오랑캐(西戎)의 하나로 취급받다 주(周) 왕실을 호위한 덕분에 영(嬴)씨 성을 하사받아 제후에 올랐다. 하지만 춘추시대 내내 사실상 ‘왕따’에 가까웠다. 그래도 결국 전국을 통일한 것은 영정(嬴政), 진시황이다.

춘추시대 가장 광대한 국토를 가졌던 초(楚)도 선진문물과 전통을 자랑했던 중원에서 볼 때 남쪽 오랑캐(南蠻)일 뿐이었다. 하지만 장왕(莊王) 이후 강대국으로 부상하면서 진시황과 끝까지 자웅을 겨룬다.

전국시대를 호령했던 진(晉)도 초기에는 북방경계를 담당하던 소국이었다. 하지만 조금씩 힘을 키워 중원으로 남하했고, 결국 문공(文公) 이후 중원 한 복판을 호령하며 춘추시대를 풍미한다.

그럼 선진국을 자처했던 춘추시대 중원의 나라들은 어떤가? 정(鄭), 송(宋) 등 반짝 융성한 나라도 있지만 대부분 이렇다 할 업적을 이루지 못한 채 진(晉), 진(秦), 초(楚) 등에 병합당했다. 깔보던 오랑캐들이, 또는 변두리 세력들이 힘을 키우는 과정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자기도취에만 빠졌던 결과다.

요즘 기업들이 어렵다고 한다. 환율, 중국 경기, 국제유가 등이 모두 불리하다는 하소연이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면 대외상황이 어려웠던 적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우리 기업과 경제의 기초(fundamental)와 위상이 지금보다 훨씬 약했을 때도 어려운 시기는 있었다. 그 정도 겪었으면 대응능력이 생겼어야 하지 않을까? 불과 몇 년전만해도 글로벌 금융위기 극복이 성공적이라며 자랑하지 않았던가.

우리도 압축성장을 했다. 투기광풍, 외환위기 등 성장통도 있었다. 중국 경제의 진통이 결코 예상하지 못했을 상황인가. 중국이 자국기업을 위해 타기업에 배타적이었던 것도 원래부터 그랬다.

미국은 글로벌 금융위기 극복을 위해, 유럽은 재정위기 타개를 위해 돈을 찍어냈다. 돈을 찍어낼 때가 있으면, 언젠가 돈을 회수할 때가 있다는 사실이 그리 예상하기 어려울까? 장기불황을 겪던 일본이 엔화약세로 이어질 아베노믹스를 외친 지가 벌써 몇 년째인가?

국제유가 하락을 불러온 미국의 셰일가스 발견은 이미 수 년 전이다. 국내 화학산업을 위협하는 중동과 신흥국의 정유 및 화학시설 구축은 우리 기업들이 이들 나라에 공장을 지을 때부터 예측됐던 상황이다. 중국의 급성장으로 우리 기업들이 다시금 고도성장했고, 선진국들이 푼 돈 덕분에 증시도 많이 올랐다. 중국과 신흥국에 공장 지어주며 돈도 많이 벌었고, 셰일가스로 국제유가가 안정된 덕분에 최근에는 물가상승 우려도 덜었다.

누린 게 있으면 치를 것도 있는 셈이다. 제 잘난 맛에만 취해 경쟁자들의 반격과 추격을 가볍게 본 것은 아닌지 반성할 때다. 물건 잘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세계 경제와 흐름을 정확히, 날카롭게 보는 능력이 중요하다. 세상을 보는 눈을 갖는 것이 화식(貨殖)의 핵심이다.

kyh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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