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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리즘-한지숙>에볼라 보다 무서운 인간의 이기심
부조리 작가 알베르 카뮈의 역작 ‘페스트’에는 흑사병이란 재앙 앞에 놓인 다양한 인간 군상이 나온다. 소설 속 무대인 알제리 오랑시가 전염병 우려에 완전히 고립되자, 광기와 비이성이 시를 뒤덮는다. 전염병을 피해 달아나기 바쁜 시민, 페스트가 오만한 인간에게 신이 내린 징벌이라며 신께 모든 걸 의탁하는 신부, 절멸 직전이 평상시 보다 더 편안한 범죄자, 페스트에 대항해 자신의 직무를 다하는 의사, 페스트 앞에서 도피할까 싸울까 갈등하는 기자 등 극한 상황이 오자 숨겨져 있던 인간 본성이 다 드러난다.

감염자 1만명을 넘어선 ‘죽음의 바이러스’ 에볼라 바이러스가 만들어 놓은 지구촌 풍경이 이와 흡사하다. 감염원, 증상 조차 현실과 소설은 절묘하게 맞아떨어진다. 최초 감염원이 페스트는 쥐, 에볼라 바이러스는 박쥐이고, 감염자는 두 경우 모두 피를 토하고 죽는다. 결말도 똑같을 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소설에선 사람의 힘이 아닌 자연에 의해 페스트가 물러난다.

소설이나 헐리우드 재난영화, 드라마에서 익숙하게 봐 온 그림이 후진국, 선진국을 막론하고 발병국에서 고스란히 펼쳐지고 있다.

의료대국 미국 조차 전인미답의 길 위에서 갈팡질팡하고 있다.

‘에볼라 창궐 국가 방문객 입국 시 21일간 의무격리’를 두고 정치권에선 자기 주장만 난무하고 있다. 다음달 4일(현지시간) 치러지는 중간선거를 앞두고, 에볼라 대응을 정치 쟁점화 시키려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일부 주정부가 연방정부와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 민주당 출신 오바마 대통령은 21일간의 강제 격리 조치는 서아프리카에서 에볼라 구호 활동을 하고 돌아온 의료진의 사기를 꺽는 것이라며 소수자 인권 편을 드는 반면 일부 공화당 소속 주지사는 ‘자가(self)격리’를 권유하는 연방정부의 지침을 무시하고 강제격리를 강행할 방침을 밝히고 있다. 차기 대권주자인 크리스 크리스티 뉴저지 주지사가 대표적이다. 그는 의무격리 방침을 고수할 뜻을 공개석상에서 여러차례 내비쳤다. 에볼라는 고열, 구토 등 발병 증상을 보이기 전에는 전염되지 않는다는 과학적 사실을 애써 인정하지 않고, 어찌보면 일반인의 무지에서 비롯한 막연한 공포심을 이용해 유권자의 표를 한 표라도 더 얻으려는 심산으로 읽힌다.

에볼라 발병 이후 인간의 공포심과 이기심에서 발로한 ‘헛 짓’은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애완견을 안락사시킨 정부를 비난하는 스페인 에볼라 환자, 나이지리아 출신이라고 입학 자원자를 무턱대고 거부한 텍사스주의 한 대학교 학장, 격리조치에 반발해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외친 간호사 등은 두번 생각해봐도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에볼라 사지(死地)에서 바이러스와 다투고 있는 의료진들의 헌신, 희생정신, 이성, 이타심, 인간애가 아직 살아있다는 점이다. 부조리에 묵묵히 저항하던 ‘페스트’ 속 의사처럼 이들의 인간다움이야 말로 절망과 좌절을 희망과 도전으로 바꿔놓고 있다.

/jsha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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