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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해창 기자의 세상읽기> 판사님, 정당방위를 아시나요.
[헤럴드경제=황해창 선임기자]지극히 상식인 줄 알았습니다. 정당방위 말입니다. 그래서 다시 생활상식을 찾아 인터넷을 뒤져 보았습니다.

간추리면 이렇습니다. ‘몸에 튀긴 불꽃은 털어 버려야 한다’는 표현에 눈길이 머뭅니다. 너무나 당연한데도 말입니다. 법적 정의를 보면, 누구도 부당한 침해를 감수할 의무는 없다고 돼 있습니다. 물론입니다. 바로 이런 취지를 규정한 것이 형법 제21조의 정당방위(正當防衛)이라는 겁니다.

다시 말해, 정당방위는 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에 대한 현재의 부당한 침해를 방위하기 위한 행위, 즉 급박부당(急迫不當)한 침해에 대한 부득이한 가해행위(加害行爲)를 말합니다. 이런 경우 상대를 사망케 해도 상처를 입혀도 죄를 물을 수 없다고 돼 있습니다.

법의 평등성을 강조하는 상징물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그러자면 세 가지 요건이 반드시 성립돼야 한다는 겁니다. 여간 까다롭지가 않아 보입니다. 급박하고 부당한 침해가 분명히 ‘현재’이어야 하고, 자기 또는 타인의 권리를 방위하기 위한 것이어야 하고, 부득이한 것이어야 한다고 명시돼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정당방위 여부를 놓고 늘 법적 다툼이 치열한 이유를 알만합니다. 정당방위가 상식적으로 맞는데 법적으로는 과잉방어라는 판결이 흔한 것도 이런 까닭일 겁니다. 그래서 일반인들은 상식과 법 사이에서 혼란스러울 따름입니다. 

법의 억울한 집행을 의미하는 이미지

28일 자극적인 국제 뉴스하나가 있었습니다. 이란에서 벌어진 일입니다. 성폭행하려는 남성을 칼로 찔러 숨지게 한 여성이 며칠 전 사형을 당했다는 안타까운 사연입니다. 6년 전 19세이던 이 여성은 인테리어디자이너로, 사무실 인테리어를 의뢰한 한 남성을 따라 빈집에 들렀다 겁탈을 당할 위기에 놓였다고 합니다. 완강하게 저항하던 그녀는 그 순간, 자신의 가방에 있던 칼을 꺼내 그 남자의 등을 한 차례 찔렀고 그로인해 그 남성은 숨을 거뒀다고 합니다. 짐승으로 돌변한 그 남자, 국가 정보기관의 요원 경력자였다고 합니다.

이란 형법은 여성에게 매우 불리한 모양입니다. 국제사회의 구명운동에도 불구하고 이틀 전 칼을 구입해 소지했다는 이유가 ‘계획적 범죄’로 단정된 겁니다.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법은 싸늘했습니다. 결국 자포자기 한 그녀는 딸을 가슴에 묻고 아파할 어머니 걱정을 하며 “바람이 데려가게···울지마세요”라는 슬픈 유언을 남깁니다.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린 그녀는 끝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고 맙니다.

여성인권이 더 심하게 유린당하는 곳이 있습니다. 바로 아프가니스탄입니다. 이 곳 여성들은 부당한 폭력에 항의조차 할 수 없다고 합니다. 폭력을 피해 달아나려 해도 ‘남자’를 동반하지 않으면 집밖으로 나가지 못한다고 합니다. 자기보호를 위해 집 밖을 뛰쳐나가려 해도 불가능한 해괴한 처지입니다. 정당방위 여지가 아예 없는 겁니다.

판결의 영향을 강조하는 이미지

우리 사회도 정당방위 논란에 휩싸였습니다. 공분을 산 ‘뇌사 도둑과 빨래건조대 사건’이 그 것입니다. 집에 든 도둑을 잡은 스무 살 아들은 철창에 갇혔습니다. 곧 군에 입대할 이 청년이 인생이 졸지에 집 구석구석을 뒤지던 한밤의 도둑 하나로 망가진 겁니다. 검찰은 흉기 없이 도주하려는 도둑을 진압한 뒤 빨래건조대(흉기)로 과도하게 폭행했다며 기소했고, 1심법원은 뚝딱 징역 1년6월을 선고한 겁니다. 물론 폭행 후유증으로 뇌사상태에 놓인 도둑의 처지를 몽땅 외면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딱합니다.

그러나 아무래도 이상합니다. 야심한 밤에 집안에서 맞선 도둑이 흉기를 들었는지 도망가려 했는지 제대로 분간이 될까요. 기자는 회사 동료 10명에게 물었습니다. 100% 정당방위라는 겁니다. 이 판결을 두고 ‘도둑세상’, ‘외계인 법’이라는 공분이 이는 것은 당연합니다. 국민의 법 감정과 너무나도 동떨어진 판결, 상식까지 내동댕이 친 판결이 어디 이뿐이던가요. 

/hchwa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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