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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이프 칼럼> 전원생활서 맛보는 ‘고구마 행복’
박인호 전원칼럼리스트


어린 시절 시골에서 열대작물인 고구마의 재배과정을 지켜보는 것은 흥미진진한 즐거움이었다. 부모님은 3월 상순께 마당 한쪽에 땅을 판 뒤 거름을 넣고 짚을 덮었다. 그리고 그 위에 흙을 채우고 며칠을 기다렸다. 그러면 아래에서 열기가 올라오는데, 이 열을 이용해 고구마 싹을 키웠다. 돋아난 싹이 얼지 않도록 위에는 비닐을 씌웠다. 이후 낮에는 걷어내고 밤에는 덮어주기를 반복하다가 5월이 되면 고구마 순을 잘라내 밭두둑에 옮겨 심었다.

이렇게 정성을 들인 고구마 모종이 땅에 뿌리를 내리고 여름이 되어 줄기가 무성해지면 순을 채취해 나물반찬을 해먹었다. 추석 직후 본격적인 수확을 하는데 꽁보리밥에 노랗게 파묻힌 ‘고구마 밥’의 달콤한 맛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어릴 적 이런 추억이 각인된 때문일까. 필자는 2010년 가을 강원도 홍천의 산골로 들어온 이후 고구마는 매년 꼭 심는다. 사실 고구마는 대표적인 친환경 효자작물이다. 거름을 주지 않아도 되고, 농약을 치지 않아도 잘 큰다(물론 요즘 판매용 고구마는 대부분 비료와 제초ㆍ살충제를 뿌린다). 실제로 2년 연속 거름을 조금 준 땅과 전혀 주지 않은 땅에 비교 재배해본 결과, 되레 거름을 안 한 고구마의 수확량과 품질이 더 나았다.

이처럼 고구마를 재배하기는 비교적 용이한 편이지만 수확은 여간 어렵지 않다. 필자의 경우 농기계를 동원할 규모는 아니어서 일일이 손으로 캐내야 한다. 올해는 10월 중순부터 서리가 내리기 시작해 수확을 서둘렀지만 필자 혼자서 작업하다보니 진척이 느렸다. 땅이 딱딱한 지라 호미만으로는 어림도 없고 무거운 삼지창으로 흙덩어리를 찍어 떼어내다시피 해야 했다.

이를 지켜보던 아내가 안 되겠다 싶었는지 가족 총 동원령을 내렸다. 필자 혼자서 하면 사흘은 족히 걸릴 작업량인데 아내와 두 딸이 합세하니 단 하루 만에 끝났다. ‘가족의 힘’은 생각보다 대단했다. 농사품의 셈법은 1+3=4가 아니라 그 이상임을 알았다. 또한 고구마 가을걷이를 통해 가족애도 함께 거둬들였다.

이렇게 수확한 고구마 대부분은 박스에 넣어 집 거실 벽면에 차곡차곡 쌓았다. 전원생활 초기에는 거실에 수확한 농산물을 쌓아놓는 것이 뭔가 어색하고 불편했다. 하지만 5년차가 되니 이젠 거실에 쌓인 고구마 박스를 보고 있노라면 절로 배가 부르다.

‘땅속의 붉은 심장’으로 불리는 고구마는 이미 잘 알려진 건강식품. 위장을 튼튼하게 해주며 변비예방, 노화방지에도 효과가 있다고 한다. 과거 가난했던 시절 배고픔을 달래주던 고구마는 올 겨울 필자가족에게도 훌륭한 양식이 된다. 따끈따끈한 고구마를 먹을 때 마다 수확할 때의 가족애 또한 모락모락 피어나겠지. 이처럼 건강과 사랑을 선물하니 고구마는 진정 ‘축복의 작물’이다. 이런 작물을 하나 둘 늘려나가는 즐거움이 바로 전원생활의 참 행복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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