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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건우, 11년의 주짓수 라이프
[헤럴드스포츠=이성호 MMA 전문기자]김건우. 격투기에서 이 이름을 기억하는 이가 아직 남아있을 것이다. 11년 전엔 2003년 스피릿MC 헤비급 토너먼트를 통틀어 가장 많은 이변을 만들어내며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주짓수 파이터였다. 그 때가 수련 4개월 차 흰띠였다.

‘장풍 쏘는’ 정병일도, 레슬러 김민수도 김건우 결승진출의 제물이 됐고, 파란색 주짓수 도복에 레슬링 슈즈를 신고 흰띠를 맨 김건우의 모습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결승에서 이은수에 패한 뒤 프로파이터의 길을 택하지 않아 이후 모습을 보기는 쉽지 않았다.

김건우는 현재 부산시청에서 근무하고 있다. 그는 여전히 주짓수에 매료돼 있다. 파이터가 아닌 생활체육인의 길을 걷고 있다는 점만 팬들이 기억하는 과거와 달라졌을 뿐이다. 


주짓수를 그만둔 이들에게 다시금 열정의 불씨를 살려보자며 주짓수 전도를 마다하지 않는 11년차 주짓떼로 김건우, 그의 근황과 주짓수 라이프, 주짓수를 즐기는 이들과 배우고픈 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어떤 내용은 아는 사람들만 아는, 그러나 뜨끔할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이하 인터뷰 전문.

-자기 소개를 부탁한다.
▲동천유술회 본관에서 운동하고 있는 김건우라고 한다. 부산시청에서 청원 경찰로 일하고 있고, 11년 전에 2003년 스피릿MC 토너먼트 준우승을 했었다. 4개월 수련한 흰띠였다.

-그럼 이제까지 주짓수 경력은?
▲지금은 브라운 벨트다. 2003년에 처음 운동을 시작했고 중간에 학업과 부상 등으로 운동을 쉰 기간이 있었는데 포함하면 대략 11년여 정도 된 것 같다.

-‘장롱에 있는 도복의 먼지를 털자’는 개인적인 캠페인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어떤 의미인가?
▲오랜 시간동안 주짓수에 몸담으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왔다. 대부분 운동만큼이나 다양한 분야, 연령의 사람들과 땀흘리고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부분에 의미를 많이 두는 것 같다. 아무래도 주짓수 자체가 파트너십이 강조되는 운동이다보니 같이 운동하는 사람들간의 끈끈함도 있고 어려움도 있다. 반대로 다양한 이유로 운동을 그만두기도 한다. 


-가장 많은 경우의 수는 무엇인가?
▲아무래도 운동을 하면서 어느 정도 시간이 되면(대략 1~2년) 흰띠에서 파란띠 넘어가는 시기 즈음인 것 같다. 운동에 대한 정체보다는 사람들과의 관계 때문에 그만두는 것 같다. 사제 관계가 안좋아서 그만두는 경우가 가장 많고, 수련생들 간의 관계가 틀어져서 그만두는 이들도 꽤 많다. 안타까운 일이다.

-주짓수를 그만뒀다가 다시 하는 사람들의 경우는?
▲초창기나 오래전에 학업이나 부상, 가정사 등등 다양한 이유로 운동을 그만두었다가 최근에 주짓수가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지면서 ‘아~ 예전에 나도 곧 잘 했었는데’ 이런 생각을 하게 될 때가 있는 것 같다. 그럴 때 다시 운동을 같이 하자고 누군가 제안을 하게 되면 마음을 쉽게 먹는 것 같다. 용기 있는 분들이 아닌 이상엔 선뜻 스스로 체육관을 찾기는 힘든 것 같더라. 그 때문에 나도 사회생활을 하면서 예전에 주짓수를 하셨던 경험이 있는 분을 만나게 되면 언제든 마음 편히 같이 운동하자고 제의하는 편이다.

-사람과의 문제 때문에 운동을 그만두는 것은 좀 가혹하지 않은가? 좋아서 하는 것 뿐인데?
▲수련생 간에는 상한 감정을 앞세우다가 부상으로까지 이어지는 경우도 많았다. 특히나 몸을 맞대고 하는 운동이라서 서로 감정이 안 좋은 사람들이 경쟁심과 앙심으로 스파링을 하다가 다치게 된다. 작은 부상이라도 있게 되면 운동을 쉬게 되고, 운동을 쉬게 되면 체육관과 멀어지는 경우가 많다. 보기 싫은 사람이 있어서 체육관에 가기 싫어지다가 그만두는 경우도 적지 않았던 것 같다. 수련생 간의 관계 문제도 참 어려운 것 같다.

-지도자와의 관계 때문에 운동까지 그만두는 것은 이해가 잘 되지 않는데? 다른 주짓수 체육관으로 옮기면 되지 않나?
▲사제 간의 관계문제는 예전의 경우 주짓수 체육관이 많지 않기 때문에 A라는 체육관에서 운동을 그만두고 B로 옮기기가 정서상 쉽지 않았다. 지도자들 간에도 서로 다 아는 입장에 감정 싸움으로 번지게 하기 싫어 문제를 일으킨 것 같이 취급받는 수련생이 운동할 곳을 찾기는 쉽지 않았었다.

-아직까지 우리나라 주짓수 체육관 문화는 과도기라고 본다.
▲전통적인 도장의 도제관계라고 하기엔 많이 민주적인 분위기가 되고 있고, 피트니스 센터의 코치와 고객같은 관계도 아니다. 시대의 흐름은 변하는데 지도자와 수련생간의 관계는 발전하지 않은 것 같다. 지도자도 시대에 맞는 사고와 행동을 해야하고, 수련생도 주짓수라는 종목 특유의 정서를 고려할 필요는 있다.

-항간에 주짓수 체육관에서 수련생 간에, 지도자와 수련생 간에 비상식적이고 가학적인 사건들에 대한 이야기가 도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게 과연 있을 수 있는 이야기인가? 각 체육관 마다 지도자의 생각이 다르고 분위기도 다르겠지만 일단 주짓수 체육관이 회비를 내고 다니는 곳인데, 그런 곳에서 가혹행위에 가까운 일들이 벌어진다는 것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주짓수에 대한 이미지를 좋은 쪽으로 끌고오는데 많은 이들이 기여했는데, 이런 사건사고가 사실로 드러날 경우 큰 타격이 있을 것 같은데?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로 인해 주짓수가 마치 그런 운동인양, 주짓수 체육관이 마치 그런 공간인양 세간에 알려질까 두렵다. 최근의 주짓수계는 초창기의 폐쇄적인 분위기에서 많이 벗어나고 있다.

몇몇 지도자들도 제자(수련생)들이 자신의 소유물인양 굴기도 하지만 대다수의 의식있는 지도자들은 그들의 운동생활의 안내자나 멘토와 같은 역할을 하고자 노력한다. 수련생 간에도 언행을 조심히 하며 다른 사람을 불편하게 하는 것이 비매너인 것을 자각하고 보다 즐거운 인간관계를 만드는데 노력하는 사람이 대다수다.

-컴페티션(주짓수 대회 등)에 대한 이야기 좀 하자. 갈띠(브라운 벨트) 헤비급 중에 대회에 나오는 선수로는 거의 유일한 것 같은데 어떤 계기가 있나?
▲학생신분으로 운동을 할 때와, 직장 생활을 하면서의 입장이 많이 다르더라. 일상에 단조로움을 벗어나고자 하는 일탈의 목적도 있고, 동천백산 본관에서 채인묵 관장님을 제외하고는 제일 고참이라 몸소 실천하는 자세로 임하고자 기회가 되는데로 대회에 출전하고 있다.

-갈띠 헤비급 체급에선 당신의 경쟁자가 너무 없지 않나?
▲맞다(웃음). 너무 없다. 지금까지 갈띠 매고 대회에 4회 정도 나가봤는데 아직까지 체급경기는 해본 적이 없다. 앱솔루트(무제한급)에 나가도 단 한판을 이기고 우승하는 경우도 있고 같은 팀 동료가 출전해 매치업이 성사된 경우도 있다. ‘금메달 사냥꾼’이라는 표현을 들으면 괜히 뜨끔하긴 한데, 반드시 앱솔루트에 참가하고 있어서 내 뜻이 왜곡되지는 않을 것 같다. (김건우 선수는 인터뷰 이후 출전한 2014 아디다스 컵 갈띠 어덜트 앱솔루트 토너먼트에서 김동균, 정윤호를 꺾고 우승했다.)

갈띠 수련생들이 체급 불문하고 시합에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체육관에서 스파링을 하는 것과는 다른 느낌, 살아있는 긴장감은 컴페티션에서 밖에 느낄 수 없다. 직장생활을 하며 생활체육으로 하다보니 컴페티션의 기회가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더 많은 갈띠 들과 대회에서 경쟁하고 싶다. 중량급 층이 두터워졌으면 좋겠다. 주짓수 체육관을 운영하며 생업으로 삼고 있는 분들이 자기 훈련시간이 적거나 부상에 대한 걱정 등의 현실적인 문제로 인해 대회에 출전하는 것이 쉽지 않은 걸 알기에 말을 조심스럽게 할 수 밖에 없다.

-지는 것이 두려워서 도전하지 못하게 되는 것을 두려워하라는 식의 멘토링이 사회적으로 유행인데, 막상 도전하기는 쉽지 않은 분위기인 것 같다.
▲한국 특유의 문화가 어느 정도 작용하는 것 같다. 자신이 속한 집단이 늘 최고여야 한다는 강박이랄까. 특히나 지도자 역할을 하고 있을 때 그런 것 같다. 컴페티션에서 상대가 자기보다 실력이 높거나, 당일 컨디션이 좋아서 승부에서 질 수도 있고 이길 수도 있는데 사람들 눈에 어떻게 비칠까를 먼저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 지면 쪽팔리고, 패자의 굴레가 씌워질까봐 두려워하게 되는 것 같다.

한국사회 전반적으로 사업이든 뭐든 한번 미끄러지면 끝난 것처럼 취급하기에, 그런 부담을 감수하고 도전하는 것은 보통 멘탈로는 쉽지 않아 보인다. 그저 좋아서 하는 운동인데 한 두번 이기고 지는 것 때문에 비교하고, 스스로 창피하게 생각하는 것은 지양해야 할 바다. 운동을 즐겁게 하는데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한다.

-앞으로 어떤 주짓수인이 되고 싶은가?
▲생활체육인 최초의 블랙벨트가 되고 싶었는데 다른 분이 이미 하셨다(웃음). 주변에 선후배 분들이 체육관을 열고 주짓수를 생업으로 삼고 있는데, 나는 아직 직장생활을 하며 주짓수를 즐기는 상황이다. 언젠가는 체육관을 열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오랫동안 체육관에 회비를 내고 운동을 배우는 사람이고 싶다. 체육관에 오래 다니다 보면 회비를 내지 않는 ‘고참급(?)’ 관원이 되곤 하는데, 관장님이 눈치 안줘도 꼬박꼬박 회비내며 당당하게 체육관을 다니는 선례가 되고 싶다. 아주 기본적이고 상식적인 주짓수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길 바라는 마음이다.

-주짓수를 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 한단어로 말하자면?
▲‘존버’. ‘X나 버텨라’. 운동이고 인생이고 버티고 버티다 보면 결실을 이루게 되는 것 같다.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은?
▲주짓수를 예전에 하셨다가 오랫동안 쉬셨다면, 꼭 다시 한번 체육관 문을 두드리는 용기를 내보시길 바란다. ‘남’이 아니라 ‘나‘를 위해 다시 도복의 먼지를 털고 매트 위에서 즐겁게 운동하는 이들과 많이 만나고 싶다. 


showdown.leade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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