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황해창 기자의 세상읽기> 군인에게 일등석을 기꺼이 내주는 나라
‘우리의 스러져간 영웅들을 기억하라. 그들이 바로 우리가 자유를 누리는 이유다. (Remember, our fallen heros. They are the reason that we are free.)’ 이 한 줄의 경구에 군에 대한 미국인들의 인식이 오롯이 담겨있습니다.

미국인들의 군인에 대한 예우는 각별합니다. “일등석이나 비즈니스 석 고객, 장애인, 그리고 군인들은 지금 앞으로 나와 먼저 탑승하시기 바랍니다.”미국 국내선 공항 안내방송멘트입니다. 이 뿐만이 아닙니다. 웬만한 쇼핑센터에서는 제대증을 내밀면 최소 10% 추가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습니다. 관공서 민원실이나 은행 창구에서도 군인에게 우선 서비스를 해 줍니다. 

5월 26일 미국 메모리얼 데이에 보스턴 코먼 공원에서 열린 성조기 3000개 꽂기행사를 돕고 있는 한 봉사자.

지난해 11월, 아프가니스탄에서 전쟁을 수행하고 귀국해 샌디에이고로 귀향하던 미 해병대원 13명이 일등석으로 업그레이드를 받아 화제가 된 적 있습니다. 이들이 제복을 입고 나타나자 해당 항공사는 남아 있던 일등석 여섯 자리를 이들에게 제공했고, 이를 지켜 보던 일등석 승객들은 모자라는 7석을 선뜻 그들에게 양보한 겁니다.

미국인들의 제복에 대한 자부심과 존경심은 미국이 1등 국가인 이유를 잘 말해줍니다. 군인, 경찰, 소방대원 등 제복을 입은 이들의 헌신적인 자기희생이 있었기에 오늘의 강국 미국이 존재한다는 것을 잠시도 잊지 않는 그런 풍토라는 겁니다.

메모리얼 데이 행사 기간 미국 프로야구 선수들도 전투복 이미지 유니폼과 모자 등을 착용한다. LA다저스 투수 류현진의 투구 모습.

매년 5월 마지막 주 월요일은 미국의 법정 공휴일‘메모리얼 데이’입니다. 우리의 현충일(6월6일)과 외형은 비슷하지만 내용은 완전히 다릅니다. 토·일·월 3일 연휴동안 군인들을 위한 다양한 행사가 미국 전역에서 엄숙하면서도 유쾌하게 펼쳐집니다. 군인과 그 가족들은 나들이와 쇼핑의 즐거움을 만끽합니다. 일반인들도 덩달아 신바람입니다. 원래는 미국 남북전쟁 전사자를 추모하기 위해 1865년 5월 30일 제정됐지만 지금은 복무 중 숨진 군인은 물론 소방관이나 경찰관도 포함한다고 합니다.

엊그제 미국에 이런 분위기를 단적으로 보여준 의미 있는 소동 하나가 있었다는 뉴스가 눈길을 끕니다. CNN과 14일자 조선일보에 따르면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미국 국내선 항공기 이코노미석에 탄 미 육군 일등상사가 “제복상의가 구겨지지 않도록 옷장에 보관해달라”고 여승무원에게 부탁하자 “옷장은 일등석용”이라며 거절했다는 겁니다. 이를 본 승객들이 승무원을 나무랐고, 커튼 너머에서 사연을 알게 된 일등석 승객들이 앞 다퉈 그 군인에게 자리를 양보했지만 극구 사양하자 “국가를 위해 봉사해줘 고맙다. 옷이라도 보관하게 해달라”고 설득해 결국 그 제복을 일등석 옷장에 보관하는 것으로 작은 소란은 끝났다고 합니다. 

국군의 날 보무도 당당한 육군사관생도들(2013년).

그러나 일부 승객이 착륙 후 SNS에 항공사를 비난하는 글을 올리면서 사건이 확대되자 해당 항공사는 장문의 사과문으로 승객과 시민들에게 정중히 사과하기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군인 홀대 기업’이라는 이미지가 두려웠던지 자사의 공익기여도를 홍보하고 사과문 작성자는 자신과 아들의 군 복무 경력까지 세세하게 적었더랍니다.

반면, 우리 사회는 어떻습니까. 미국은 모병제로 직업 군인입니다. 자신이 원해서 갑니다. 그러나 우리는 병역의 의무로, 신체 또는 정신적 결함이 없는 경우에는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징병제입니다. 예우를 받아야 하는 쪽은 자신의 모든 것을 양보해 국가를 위해 나서는 징병제일 겁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는 여전히 예우는커녕 군인더러 거리낌 없이‘군발이’로 부르는 것도 모자라 그 뒤에 xx를 갖다 붙입니다. 자신도 군에 갔다 왔고 형제나 심지어 아들이 군에 있는데도 말입니다. 이런 풍조를 국민교육으로 바로잡을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것이기에 그렇습니다.

왜 이런 걸까요. 사회풍토를 나무라기 전에 먼저 군 내부를 들여다 볼 필요가 있습니다. 자고 일어나면 터지는 크고 작은 병영 내 사건사고로 군에 대한 업신여김은 전에 없이 심각한 수준입니다. 오늘 뉴스를 보면 사병들의 계급에서 이등병을 없앤다고 합니다. 계급장 고친다고 가혹행위가 없어질까요. 계급장이나 만지작하는 군, 참 뭣합니다. 

1만명 시대를 앞둔 대한민국 여군.

요 며칠 사이 여군에 대한 성범죄가 공분을 사고 있습니다. 내년이면 여군 1만 명 시대가 열린다지만 뿌듯하기보다 민망하고 불안합니다. 더 괘씸한 것은 여군 성범죄 대다수가 진급을 악용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 피해자 60%가 여하사이고 상관의 몹쓸 짓은 3년 새 4.5배나 늘었다는 겁니다. 여군들이 주적을 남군(男軍)이라고 한다는 대목에선 차마 얼굴을 들 수 없습니다.

올해로 3회째인 ‘제대군인 주간(8~14일)’이 슬근슬쩍 지나간 것도 이런 분위기가 반영된 탓일 겁니다. 대다수 국민들은 이런 것이 있었는지 조차도 모를 정도입니다. 사랑받고 존경받으려면 군이 먼저 답을 내놓고 변해야 합니다. 늠름한 대한민국 군을 다시 보고 싶습니다. 



/hchwang@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