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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슈퍼리치-하이라이프] 미술과 바람난 ‘재계의 여인’
사모님 또다른 명함, 슈퍼컬렉터…그들은 왜 미술품을 사는가
상류층 고품격 취미활동
남다른 안목으로 예술품 수집
구입-소장-재판매 과정 통해
수익창출 투자처로 각광

삼성 안주인 홍라희 관장
리움·플라토 등 3곳 운영
재벌家 앞다퉈 미술관 경영


[특별취재팀] 1984년 9월 1일. 미술가 앤디 워홀의 작품 40여 점이 한국에 처음으로 공개된 날이다. 워커힐 미술관은 당시 국내 최초로 앤디 워홀 전(展)을 기획해 한달 간 그의 작품을 전시했다. 지금은 팝 아트의 선구자이자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미술가 중 한 명으로 꼽히지만 20년 전만 해도 국내에서 앤디 워홀은 생소하기만 했다. 그의 개인전을 주도한 건 다름 아닌 최종현 당시 SK 회장의 부인 박계희 관장이었다. 워커힐 미술관을 운영하는 동안 박 관장은 이외에도 다양한 미술품들을 수집하고, 전시회를 통해 소개하면서 미술계에 컬렉터로 이름을 남겼다.

최근 찾아간 서울 한남동의 미술관 리움. 삼성그룹 계열인 이곳에선 개관 10주년을 맞아 기념전이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교감’이라는 주제에 걸맞게 동양과 서양, 고전과 현대 미술품들이 한 자리에서 전시되고 있었다. 삼성그룹 창업주 이병철 회장에서 이건희 회장의 부인인 홍라희 관장으로 이어지는 삼성가(家)의 ‘수집의 계보’를 한 눈에 보여준다. 생전에 이병철 회장이 열성적으로 수집했던 고미술품에 홍 관장의 주 관심분야인 현대미술품들이 더해지면서, 리움은 규모나 컬렉션 수준 면에서 국내 최고의 사립 미술관으로 평가받는다. 그만큼 국내 미술계에서 차지하는 영향력 또한 크다.

그동안 한국의 미술계를 양적으로 질적으로 이끌어 온 것은 재벌가 사람들이었다. 든든한 재력을 바탕으로 우수 작품들을 수집, 소개함으로써 대중들에게 미술을 접할 기회를 제공했다. 자연스럽게 슈퍼리치들은 미술계에서 ‘슈퍼 컬렉터’로 자리잡게 됐다.

개관 10주년을 맞은 삼성미술관 리움이 ‘교감’이라는 타이틀로 전관 전시를 선보이고 있다. 한국미술계최고 파워리더이자 현대미술 컬렉터인 홍라희 리움 관장의 대표적인 컬렉션인 데미안 허스트, 루이스 부르주아, 알베르토 자코메티 등의 작품이 전시장 곳곳을 채우고 있다.

이병철 회장은 1982년 직접 호암미술관을 지어 소장품을 대중에 공개한 바 있다. 당시 호암미술관에 기증한 미술품은 1100여 점에 이른다. 여기엔 11점의 국보와 보물도 포함돼 있었다. 현재 삼성그룹이 운영하는 3개의 미술관(호암미술관, 리움, 플라토)은 곧 미술 애호가였던 이 회장의 유산(遺産)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슈퍼리치들이 이처럼 미술품에 관심이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 미술품 수집은 지위에 걸맞은 상류층의 ‘고품격’ 취미활동으로 볼 수 있다. 현대에서 부를 나타내는 또다른 척도가 고가의 미술품 컬렉션이고, 이를 통해 자연스레 명예도 쌓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 미술계 관계자는 “단순히 재산이 많은 게 아니라 그림을 모으는 이들이 진정한 상류사회의 멤버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슈퍼컬렉터들은 무작정 예술품을 모으기 보다는 자신의 취향에 맞는 미술품 수집에 몰입한다. 이를 통해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고, 자신만의 남다른 안목을 주변에 나타낼 수도 있다.

과거와 달리 단순 수집에 그치지 않는다. 미술품은 슈퍼리치들의 훌륭한 투자처이기도 하다. 미술시장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는 서진수 강남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해외에선 이미 미술품의 가치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있어 부자들의 투자 포트폴리오에 미술품을 집어넣는다”고 설명했다. 중국의 부자 연구소인 후룬연구원 보고서를 보면, 중국 부호들의 투자 포트폴리오에는 예술품도 포함돼 있다. 부동산이나 주식처럼 미술품도 ‘구입-소장-재판매 과정’을 통해 수익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선 슈퍼리치들의 직접 구매여부가 잘 공개되지 않고, 주로 그룹 산하 미술관이나 재단을 통해 구매하기 때문에 부자들의 미술품 투자 규모를 정확히 파악하긴 쉽지 않다. 미술시장에서 이처럼 예술에 관심 많은 부자들이 지속적으로 활동할 경우 미술품의 가격도 오를 가능성 높다. 서 교수는 “부유층의 진출로 시장에 부(富)가 들어오면 작품 가격이 올라가고 더 좋은 작품이 출품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국내에선 미술에 관심이 많거나 미술을 전공한 재벌가 안주인들이 슈퍼컬렉터로 주목 받아왔다. 워커힐 미술관을 운영한 박계희 관장이 1세대격으로 이후 상당수의 오너 부인들이 모기업의 지원을 받아 미술관 경영에 나섰다. 홍라희 관장을 포함해 최태원 SK회장의 부인 노소영 관장(아트센터 나비),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부인 정희자 관장(아트선재센터), 김석원 전 쌍용그룹 회장의 부인 박문순 관장(성곡미술관)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이 중 아트선재센터와 성곡미술관은 모기업의 부도에도 불구하고 미술관 만큼은 안주인들이 포기하지 않고 운영을 이어오고 있는 경우다. 요즈음은 3, 4세 남자 오너들 중에서도 애착을 갖고 있는 이들이 많다. 경영에 활용하기도 한다. ‘代를 이어, 회사를 이어’, 미술품을 향한 슈퍼리치들의 사랑은 이래저래 식을 줄 모른다.

joz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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