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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술 칼럼] 세계태권도연맹, 전자호구 딜레마에 빠진 이유
[헤럴드스포츠=박성진 무술 전문기자] 태권도. 또 다시 전자호구가 문제가 되고 있다. 2016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을 앞두고 태권도 경기에 사용될 전자호구 선정이 태권도계의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는 가운데, 올림픽 태권도의 주관 단체인 세계태권도연맹(총재 조정원, WTF)이 딜레마에 빠졌다.

사정은 이렇다. 태권도 경기에 전자호구가 정식으로 도입되기 시작한 것은 2008베이징올림픽 이후. 조정원 WTF 총재는 베이징올림픽 직후, 전자호구를 도입하겠다는 발표를 했고, 이후 태권도 경기는 전자호구에 따라 급격하게 변했다. 기술이 변했고, 그에 따라 규정도 변했다.

태권도 경기의 백미라고 할 수 있는 화려한 발차기가 퇴조하고, 전자호구에 적응해 점수내기에 급급한 발차기가 순식간에 태권도 경기장을 장악했다.

당초부터 전자호구 도입에 대한 찬반은 갈렸다. 그러나, 판정시비를 해결하겠다는 WTF의 의지가 워낙 강력했기 때문에 전자호구 반대론은 묻혔고, 전자호구는 태권도 경기에 필수적인 것이 되었다.

결국 태권도 경기는 하체가 긴 신체조건을 앞세운 유럽 선수들 위주의 ‘발을 들고 툭 밀어차는 방식’의 발차기가 대세로 자리를 잡았다. 한국 태권도가 실력에 비해 저조한 성적을 거두기 시작한 것도 전자호구의 도입과 맥락을 같이한다.

현재 전자호구에 대한 선수, 지도자 등 태권도 관계자들의 기본적인 생각은 이렇다. “전자호구가 크고 작은 문제가 있지만, 문제가 나올 가능성은 서로 동일하니까 공정하다”는 것. 즉 복불복이라는 것이다. 다행히 런던올림픽을 비롯한 큰 국제대회에서는 전자호구로 인한 경기 지연이나 오류 등의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

따라서 2012런던올림픽에서의 태권도가 보여준 성공은 여전히 불안정함을 지니고 있는 상황에서 행운처럼 터져 나온 성공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불안요소는 대부분 전자호구에서 기인한다.


현재 세계태권도연맹이 공인한 전자호구는 ‘대도’와 ‘KP&P’ 두 개다. 대도는 스페인에 기반한 회사고, KP&P는 한국에 있는 회사다.

2012런던올림픽에서 사용됐던 것은 대도 전자호구. 라저스트 전자호구와의 경쟁에서 승리했고, 현재 국제태권도 경기에서 주류로서 사용되고 있는 전자호구다. 대도 전자호구가 태권도 경기의 대세가 된 것은 현 세계태권도계의 흐름이 경기는 물론이고 운영의 면에서도 유럽의 세력이 커진 것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유럽 태권도계의 강세가 세계태권도계에 미치는 영향과 우려에 대해서는 따로 정리할 필요가 있다.

대도 전자호구는 런던올림픽에서의 성공과 함께 태권도계의 주도적인 전자호구로 자리를 잡았고, 경쟁상대인 KP&P는 대도에 비해 열세를 면하지 못하고 있다. 그 기술에 대한 평가와는 별개로.

이러한 상황에서 2016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 사용될 전자호구가 대도로 결정될 것이라는 루머가 급속도록 퍼지고 있는 것이 현 태권도계의 상황이다.

대도 전자호구가 리우올림픽에 사용되는 것으로 확정될 경우, 우려되는 상황은 몇 가지 있다. 우선은 현 대도 전자호구의 기술적인 불완전함이 지속적으로 지적되어 왔다는 점이다. 지난 7월 중국 쑤저우에서 열렸던 WTF 그랑프리대회에서 한 번의 몸통 공격에 대해 1점이 올라가야 할 점수가 2점이 올라가는 일이 발생했다.

문제는 이러한 경우가 크게 문제화되지 않았을 뿐 종종 발생해왔다는 점이다. 게다가 한 국내 대회에서는 공격 동작이 없었는데도 점수가 올라가는 일이 발생했다. 경쟁 전자호구인 KP&P에 대해서도 문제가 지적되는 경우가 있었지만, KP&P가 지적받은 것은 통신 상의 문제인 경우가 많았다.

다시 말해, 태권도의 기술적인 면을 구현하는 데는 KP&P가 대도에 비해 상대적인 호평을 받고 있지만, 그 외적인 부분, 즉 무선 환경에서의 통신, 호환성 등의 면에서는 대도 측이 더 많은 경험과 함께 우위에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2016리우올림픽에서 이 양사의 전자호구 중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가에 대해서 가장 큰 권한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것은 세계태권도연맹이 아닌 스위스 타이밍이라는 회사다.

오메가 시계로 더 유명한 스위스 타이밍(Swiss Timing)은 2008베이징올림픽, 2012런던올림픽에서 시간과 점수에 관한 계측 장비에 관한 모든 것을 담당해 왔으며, 2016리우올림픽에서도 역시 같은 역할을 맡고 있다.

올림픽이 단순한 개별 종목의 국제대회가 아닌 지구촌 최고의 스포츠 축제인 만큼 올림픽에서의 태권도 경기 역시, 점수 표출과 관련해서는 스위스 타이밍과 긴밀한 협조를 해야 하는 상황이다.

따라서 WTF는 어떤 전자호구를 사용할 것인가에 관해 이미 공인을 받은 두 업체(대도와 KP&P)를 스위스 타이밍에 추천을 했고, 스위스 타이밍은 이 두 업체 중 하나의 업체를 선택해서 올림픽을 준비하게 된다.

스위스 타이밍의 입장에서는 전자호구가 태권도라는 개별 종목에 미치는 영향이나 기술적인 완성도 같은 것은 따질 이유가 없다. 오로지 스위스 타이밍과 호환이 얼마나 잘 이루어지고 문제 없이 대회를 치러낼 수 있느냐 만이 관건일 뿐이다.

스위스 타이밍의 입장에서는 이미 런던에서 한 번 함께 일을 해 봤던 대도에 기울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두 회사가 지리적으로도 멀지 않은 같은 유럽 안에 있다는 점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전자호구를 시간과 점수(Time &Scoring)을 다루는 단순한 계측 장비로 본다면 이러한 스위스 타이밍의 태도는 문제될 것이 없다. 그러나 전자호구는 계측 장비(Measuring Equipment)라기 보다는 기술 장비(Technical Equipment)에 가깝다. 단순히 점수만을 표출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전자호구는 이미 태권도의 기술을 변화시켜왔고, 앞으로도 기술 변화의 중심이 될 것이다. 전자 헤드기어의 도입이 그것을 여실히 증명하고 있다. 그리고 이 전자헤드기어는 오는 2016리우올림픽에서부터 도입될 예정이다. 전자헤드기어의 성공 여부는 리우올림픽에서 태권도 경기의 성패를 가를 가장 중요한 요소의 하나다.

두 개의 전자호구 회사 역시 전자헤드기어에 대한 준비를 마친 상태다. 세계태권도연맹의 주도 하에 양 사의 전자헤드기어에 대한 시연회 및 평가도 있었다. 이 평가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던 것은 KP&P다. 그러나 이러한 점은 스위스 타이밍에게는 전혀 고려의 대상이 아닌 것이다.

만약 스위스 타이밍에 의해 대도 전자호구가 2016리우올림픽 전자호구로 결정된 것이 발표된다면, WTF로서는 또 하나의 딜레마에 빠질 수 밖에 없다. 그것은 복수의 전자호구 회사를 유지하겠다는 계획이 무산될 것이기 때문이다.

WTF는 전자호구의 기술 개발을 외부 회사에게 맡긴 대신, 독점을 주지 않고, 복수의 회사들에게 기회를 주어 기술 개발을 독려하고, 개별 회원국에게 독점에 따른 경제적인 부담을 최소화하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대도가 후발 전자호구 회사였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현재와 같은 위치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WTF의 정책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아니었다면, 2008런던올림픽 전자호구는 지금은 사라진 라저스트 전자호구로 치러졌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 WTF 내부에서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KP&P가 설령 올림픽에 선정되지 않더라도 유지할 수 있도록, 최소한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입장 역시 공식적인 것은 아니며, WTF의 구조적인 문제, 즉 서울(성남) 사무소와 로잔 사무소 간에 입장이 다른 관계로 내부적으로도 불협화음을 표출하고 있는 상황이다. (로잔의 장 마리 사무총장과 성남 사무소 간의 이러한 불협화음은 지난 난징 유스올림픽에서 터져나왔다.)

정리하면, 리우올림픽에 대도 전자호구로 최종 결정되어 치러진다면, 당장 올해 말부터 세계태권도계는 크고 작은 문제에 부딪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WTF가 스위스 타이밍의 결정에 쉽사리 반대를 할 수도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고 그대로 상황을 따라간다면, 앞으로 여러 문제들이 터져 나올 것이 명약관화하다는 점이 현재 세계태권도연맹이 가지고 있는 딜레마다. 

kaku616@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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