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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길용 기자의 화식열전> 삼성 · LG의 다툼…알고보면‘복비죄’?
한무제(漢武帝) 때 대농령(大農令)을 지낸 안이(顔異)는 경제정책에서 황제와 충돌이 많았다. 그런데 어떤 신하가 무제의 정책을 옹호하자 안이가 입술을 삐죽거리며 불만을 나타냈다. 무제는 그에게 ‘마음 속으로 황제를 욕한 죄’, 즉 복비죄(腹誹罪)를 물어 사형에 처한다. 말 없이 입만 삐죽거린 게 무슨 죄인가 싶지만, 이 때는 한나라 역사를 통털어 황권이 가장 강한 시기다. 게다가 무제는 평소에 그를 탐탁해하지 않았다. 안이는 정황 상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을 했고, 무제는 아무리 그래도 지나치게 대응했던 셈이다.

얼마전 유럽 최대 가전박람회인 2014년 IFA가 열린 독일 베를린의 한 전자제품 매장에서 LG전자 임원이 삼성전자의 세탁기를 파손한 일로 두 회사가 법정 다툼을 벌이게 됐다. 삼성은 고의적이라며 LG를 수사의뢰했고 LG는 삼성이 단순 사고를 침소봉대 한다며 맞서는 형국이다. 대화로도 풀 수 있어 보이던 일이 굳이 법정까지 가게 된 것은 서로에게 복비죄를 물으려는 마음 때문이 아닐까?

하긴 일이 터진 이후에는 서로에 대한 비방을 내놓고 하니, 복비죄의 차원은 이미 넘어섰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어차피 결론은 많아야 셋 중 하나다. 삼성전자 제품과 LG전자 임원 중 둘 중 하나가 ‘비정상’으로 드러나거나, 유야무야 끝날 수 있다.

국민소득 높다고 선진국이 아니듯이, 덩치 크다고 다 글로벌 기업은 아니다. 경쟁사 간 상도(商道)에서도 세련된 모습을 보이는 게 글로벌 기업의 진정한 덕목이 아닐까? 스마트 혁명을 주도한 스티브 잡스에게는 많은 이들이 존경을 보내지만, 삼성의 트집을 잡아 특허소송을 제기한 애플에 박수를 보내는 이는 적다.

입을 삐죽거려 빌미를 제공한 LG에 일차적인 잘못이 있지만, 애플과도 화해한 삼성이 수사 의뢰까지 가야 했는지 하는 아쉬움도 있다.

두 회사의 다툼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지만, 세계 가전업계가 모두 삼성과 LG에게 박수를 보내며 막을 내린 게 올 해 IFA다. 애플이나 구글 등과의 글로벌 경쟁이 날로 치열해지고 있다. 사물인터넷(IoT) 등 미래사업 분야에서 삼성과 LG가 손잡고 글로벌 표준을 주도해야 할 상황도 예상된다.

이런 마당에 굳이 같은 한국 기업 끼리 와우각쟁(蝸牛角爭) 해봐야 결국 다른 나라 경쟁사들만 어부지리할 수 있다. 두 회사가 화식의 지혜를 되찾길 기대해 본다.
 

kyh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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