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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新앵그리맘] 엄마들이 세상에 나왔다…허약한 사회안전망이 탄생시킨 ‘생명정치’
[헤럴드경제=장연주ㆍ서지혜 기자]지난 4월28일부터 매일 4시간씩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세월호의 진상을 밝히라며 1인 시위를 하고 있는 오지숙(38) 씨. 그는 3살부터 중학생까지 5남매를 둔 엄마로, 최근에도 광화문 광장에 나오고 있다. 주말을 빼고 계속된 그의 1인 시위를 보고 공감하는 엄마들이 모여 ‘리멤버 0416’이란 온라인 그룹도 만들어졌다.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형성된 ‘앵그리맘(Angry Mom)’이 세상을 바꾸는 하나의 축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엄마들의 분노에서 이어진 직접 행동이 정치가 외면해온 주요 이슈들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것이다. 정치 사회를 변혁시키려는 힘이 가해지고 있다는 점에서 이들은 ‘新(신)앵그리맘‘으로 규정할 수 있다.

이들의 파워는 간단치 않다. 지난 6ㆍ4 지방선거에서는 세월호 참사에 분노하는 앵그리맘의 표심이 주목받아 진보교육감이 두배로 늘었다. 뿐만 아니라 워싱턴, 뉴욕, 파리, 베를린 등 해외교포 엄마들까지 세월호 참사 희생자를 애도하고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집회를 잇따라 열었다.

앵그리맘 역사는 오래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새로운 것은 아니다. 지난 2008년엔 유모차에 아이를 태운 엄마들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촛불집회 현장에 나타났다. 아이들의 안전한 먹을거리를 주장하는 엄마들의 시위는 국민들의 관심에서 멀어졌던 한미FTA를 재조명하는 계기가 됐다. 또 2010년 ‘6ㆍ2 지방선거’는 ‘무상급식의, 무상급식에 의한, 무상급식을 위한’ 선거였다. 당시 무상급식과 관련이 있던 ‘앵그리맘’은 초등학생 자녀를 둔 30~40대였다.

세월호 등으로 앵그리맘은 진화했다. 최근에는 ‘윤일병 폭행 사망 사건’을 계기로 아들을 군대에 보내지 않겠다는 엄마들의 분노가 행동화로 이어지고 있다. 전국의 아들을 둔 엄마들은 군대 관련 커뮤니티나 소셜네트워트서비스(SNS)를 통해 허술한 군 당국을 질타하는가 하면, 아들을 ‘사지(死地)’로 보내는 게 아닌가 하는 불안감에 ‘입영 거부 서명 운동’까지 벌이고 있다. 건강한 분노도 있지만, 극단적 분노도 존재한다는 점에서 우리 사회에는 경고음이 켜졌다.

엄마들을 집안에서 세상밖으로 뛰쳐 나오게 만든 원인이 됐던 세월호. 세월호 침몰 직후 걸렸던 서울광장의 노란리본이 이들의 절박한 사유를 말해준다. [이상섭 기자/babtong@heraldcorp.com]

전문가들은 이 같은 앵그리맘 현상을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아이들이 건강한 음식을 먹고 제대로 된 교육환경과 안전한 국가에서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에 기초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특히 국가가 가장 근본적인 생명을 지켜주는 일을 하지 못하자 엄마들이 자식의 생명을 지키려는 의도에서 시작된 ‘생명정치’의 탄생으로 진단한다.

김종갑 건국대 몸문화연구소장은 “세월호 및 윤일병 사건 등을 통해 자기 자식의 생명이 위협받고 있다는 것을 엄마들이 절감하면서 ‘생명정치’를 엄마들이 국가로부터 회수하고 있는 것”이라며 “국가가 국민의 생명을 지켜주는 일을 망각함에 따라 국민들이 국가를 신뢰하지 못하게 되는 상황이 됐다”고 꼬집었다.

그는 “즉, 다시말해 세월호 침몰에서 윤일병사건까지 국가의 무관심으로 자식의 생명이 위협받는다는 사실을 깨달은 엄마들이 국가의 생명정치를 가져가려 하는 것”이라며 “이는 국민과 정부 사이에 정치가 단절된, 정치의 근간을 흔드는 위험한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다만 앵그리맘 세력화에 대해서는 긍정과 부정의 시각이 교차한다. 예컨데, 군대 등 특정 사회가 일반 사회의 개입에 영향을 받는다든가 20대 청년의 삶에 엄마의 삶이 개입돼 경제적ㆍ심리적인 독립성 확보를 지연시킬 우려가 크다는 점에서 부정적이라고 전문가들은 진단한다.

송재룡 경희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최근 앵그리맘의 행동화는 자녀에 대한 불확실한 안정성을 스스로 적극 개입해서 안전의 여부를 확인하고, 안전이 확보가 안될 경우 뭔가 영향을 미치겠다는 것”이라며 “사회가 하지 못하는 것을 그나마 앵그리맘들이 한다는 측면에서는 긍정적이지만, 결코 이상적이진 않다”고 했다.

선진국에서는 사회 각 부문이 제도적ㆍ체계적으로 안전을 확보하고 시민들은 이를 믿고 살아가는데 비해, 한국 사회는 각 부문별로 신뢰를 전제로 한 기능화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아 이 같은 문제가 나타나고 있다는 해석도 뒤따른다.결국 엄마들이 과도하게 개입해 문제를 제기하고 비판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지만, 현실적으로 가족주의 성향이 강한 한국은 아직까지 ‘저(低)신뢰사회’로 ‘안전’이 확보되지 않으니 스스로 안전을 확보하고 살아갈 수 밖에 없는 현실을부정할 수는 없다는 지적이다.

yeonjoo7@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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