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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리즘 - 홍성원> 눈을 보고 말해요
아기띠를 맸다. 주말만이라도 40년 차이 부자(父子)의 농밀한 산책을 위해서다. 10만원을 훌쩍 넘는 이 띠 가격만 생각하면 속이 끓지만, 이게 버텨주지 않으면 9㎏짜리 6개월차 사내와 나름 장거리 도보여행은 언감생심이다. 행선지는 호수공원. 집에서 지근거리인데 처음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녀석이 한 마디 없다. 집에선 ‘어버버버’  잘도 재잘거려 우리만의 ‘랩배틀’을 했는데 영 조용하다. 세상을 다 담을 기세로 눈동자와 고개만 바쁘다. 그러다 딱 시선이 만났다. 심장이 쿵 내려 앉았다. ‘아빤 왜 이렇게 살아’ ‘우린 왜 부자가 아니야’…. 이런 식의 말이 검은자에 박힌 듯했다. 벌써 세상을 알아 버렸나? 그럴리 만무하다. 아이 눈에 비친 모습에 화들짝 제발 저린 것일 뿐이다. 곤란한 질문이 굽이칠 때가 많지만, 녀석과의 눈빛교환은 눈물겹게 즐겁다.

청와대 춘추관에 앉아 있으면 반응하기 애매한 얘기가 뉴스인양 전해진다. 박근혜 대통령이 앞으론 장관ㆍ수석비서관들과 수시로 만나 보고도 받고 국가 대사를 논하기로 했다는 게 그런 종류다. 집권한지 1년반이 다 됐는데 여태까진 뭐했단 얘기? 답은 대통령께서 일찌감치 올 초 기자회견에서 해줬다. ‘대통령은 업무시간 외엔 뭐하나’는 질문에 보고서를 읽는다고 했다. 미혼이시니까, 또 대답하기 껄끄러운 대목도 있을테니 의례적인 답이겠거니 했는데 농은 아니었던 셈이다.

같은 청와대 울타리 안에 있는 수석들도 대통령 얼굴 보기 쉽지 않고 서면이나 전화보고로 대신했다고 한다. 수시로 통화하는데 굳이 만날 필요가 있냐고 설명하는 측도 있다.
 
아무튼 ‘침묵의 페이퍼워크’는 청와대의 일하는 방식의 대세였고, 이젠 이를 과거지사로 넘기겠다고 한다. 궁금한 건 대통령 뿐 아니라 장관ㆍ수석들의 태도변화다. 받아 적는 자만 살아 남았던 ‘적자생존’의 현 정부 환경에서 ‘직언’을 감행하고 수용하는 열린 자세까지 가능할까? 2기 내각과 3기 청와대 비서진 면면을 보면 이런 용자(勇者)는 별로 없어 보인다. 그나마 다행인건 친박(親朴) 실세 장관(후보자)들이 고언을 서슴지 않을 가능성은 있다는 점이다. “그 분들은 준비된 답변만 하는 게 아니라 이 정부의 성공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언로가 막히진 않을 것”이라고 한 청와대 관계자는 전망했다.

“우리 신랑이 엄청 사모하고 있어요. 고우시네요.” 이 말은 박 대통령이 지난 1일 청주 서문시장내 삼겹살 거리를 찾아 상인들과 간담회를 할 때 한 삼겹살집 주인이 대통령에게 건넨 인사다. 예쁘다는데 정색할 사람 없듯 대통령은 활짝 웃었다. 눈을 보고 말하면 이렇게 되는 게 인지상정이다. 면전에서 욕하거나 비판하기 쉽지 않다. 그러나 국민이 바라는 건 필부(匹夫) 차원의 인사치레가 아니다. 최고권력자와 고위공무원이 이제 눈을 보고 말하게 된다면, 대통령이 먼저 손 내밀고 좀더 치열하게 서로에게 부딪힐 분위기를 만들었으면 한다. 혼자 지내는 연습을 박 대통령은 더는 해선 안 된다. 야당은 지리멸렬 세포분열 중이고, 고정팬이 있는 박 대통령은 크게 헛발질만 안하면 지지율 과반 넘는 건 일도 아니니 못할 것도 없지 않은가.  

홍성원 정치부 차장대우 /hongi@heraldco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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