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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 칼럼 - 박승윤> 황금알 낳는 거위
지난해 정부 당국자가 정책을 설명하면서 ‘거위’가 등장한 적이 있다. 연봉이 3450만원 이상이면 중산층으로 간주해 이들에게 연 16만원 정도의 세금을 더 부과하는 내용의 세제개편안을 조원동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이 기자들에게 설명하면서다. 프랑스의 루이 14세 국왕 시절 콜베르 재무장관의 ‘세금 징수 기술은 거위가 비명을 덜 지르게 하면서 최대한 많은 깃털을 뽑는 것과 같다’는 말을 인용, “거위에게서 고통 없이 털을 뽑는 방식으로 해 보려는 게 이번 세법개정안”이라고 말했다. 가뜩이나 살림이 팍팍한 중산층은 월 1만3000원 증세안에 거세게 반발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나서 세제 개정안을 수정토록 해 파동은 수습됐지만 실정 모르는 ‘탁상행정’의 단면을 웅변하는 사례였다.

기업들의 사내유보금에 과세를 검토중이라고 최경환 신임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말을 듣고 ‘황금알 낳는 거위’ 우화가 떠올랐다. 농부가 시장에서 사온 거위가 매일 황금알을 낳았다. 욕심이 커진 농부와 아내가 거위 뱃속에는 황금알이 가득찼을 것으로 생각해 배를 가르자 아무 것도 없더라는 얘기다. 기업의 사내유보금을 황금알에 비유하는게 적절한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사내유보금을 가계나 시장에 쏟아내라고 세금을 부과하는 것은 거위의 배를 가르는 행태와 다를바 없어 보인다.

사내유보금에 대한 과세 추진은 개인의 가계소득에 비해 기업들이 벌어서 쌓아둔 자금이 훨씬 많으니 이를 투자나 배당, 임금 형태로 풀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사내유보금은 현금성 자산 외에 토지,공장,기계 등의 유형자산까지 모두 포함하므로 사실상 ‘이중과세’라는 논란은 잠시 접어두자. 기업이 보유한 현금성 자산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돈이 돌도록 하는 방법이 영 마뜩잖다.

모든 기업들은 미래 성장동력을 찾기 위해 혈안이다. 미래를 담보할만한 사업이다 싶으면 보유자금은 물론 외부 차입까지 해서 베팅을 한다. 투자의 책임은 온전히 회사 몫이다. 삼성그룹은 막대한 투자가 필요한 반도체와 스마트폰 개발에 뛰어들어 성공함으로써 글로벌 기업의 위상을 확보했다. 현대자동차그룹이 세계 빅5 차 기업으로 도약한 것은 품질과 디자인 향상을 위해 부단히 투자했기 때문이다. 반면 STX나 웅진그룹의 몰락은 투자 실패의 대가를 보여주는 반면교사다. 삼성이나 현대차 그룹은 지금도 새로운 미래 먹거리 투자처를 찾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투자에 인색한 자산기업이라는 평가를 받는 중견기업들도 안을 들여다보면 생존을 담보할 사업 아이템이나 M&A 대상 기업을 찾아 헤맨다. 사실 사내 유보는 필요한 때 베팅하기 위한 투자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정부가 할 일은 기업을 옥죄기보다 과감한 규제 완화와 통화ㆍ재정 정책을 통해 기업들이 국내에서 일자리 생기는 공장을 짓고 실패한 기업을 인수할 수 있는 투자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주변국의 비판에도 돈을 풀어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는 미국과 일본을 벤치마킹할 필요도 있다. 창의적인 경제정책으로 ‘황금알 낳는 거위’를 많이 육성해야 한국 경제가 산다. 

박승윤 산업부장 /parks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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