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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제광장 - 김유태> 중산층을 위한 전세 경제학
전세가격급등에 수급균형 붕괴
서민 주택마련 수단 기능 상실
전세부채화로 가계건전성 악화
전세비중 줄이고 월세 확산돼야



지난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기준 중산층 비중은 69.7%로 2009년 66.9%에 비해 늘어났지만 일반 국민들이 체감하는 중산층 비중은 이에 미치지 못할 정도로 체감 경기가 좋지 않은 상황이다. 최근 현대경제연구원에서 발표한 보고서를 보면 우리 국민들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중산층은 월 소득이 515만원인 개인이 35평짜리 주택을 포함해 6억 6000만원의 자산을 보유하고 매년 155만원 정도의 후원금을 기부해야 한다. 중산층으로 가는 길이 참으로 멀게만 느껴지는 대목이다. 결국 주택을 보유하지 않고는 중산층에 진입하기가 어렵다는 의미인데, 그 길목에 우리나라에만 존재하는 전세제도가 자리하고 있다.

국내 주택시장은 매매, 전세, 월세 등 주거형태에 따라 시장분할이 이뤄져 이들 시장간 자율조정을 통해 주택 수급불균형을 해소하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국내 임대시장의 구조변화가 진행되면서 전세시장을 중심으로 시장간 수급균형이 무너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전세가격 상승과 맞물려 가계의 전세 레버리지가 높아지면서 예전에는 들어볼 수 없었던 전세버블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전세에서 월세로의 구조변화가 진행되면서 전세제도의 퇴진 등 전세제도의 후진성에 대한 논의가 빈번하게 제기되고 있다. 가정경제 차원에서 보면 전통적 전세제도는 순자산이 실질임금상승률에 따라 증식되는 자산보전의 기능을 지니고 있다. 가계의 잉여 소득을 연금방식으로 장기간 적립해 전세보증금을 규모화하고, 주택을 보유함으로서 투자주기가 종료되는 생애주기형 주택금융의 특징을 보인다. 전세제도는 금융접근성이 취약했던 시기에 일반 서민들이 주택구매력을 높일 수 있는 중요한 수단으로 자리매김해 왔다.

자금운용 측면에서 보면 전세제도는 고도로 선진화된 금융기법으로 볼 수 있다. 임대인은 전세보증금을 무이자로 확보해 시장금리 수준의 운용수익을 추구할 수 있다는 점에서 무위험 재정거래(interest arbitrage)의 원천으로 작용한다. 반면 임차인은 전세보증금에 기회비용을 거주비용으로 지불하고 주택 경기상황에 따라 주택 매매수요로 이동하는 경우가 보편적이다. 이처럼 전세제도가 주택마련을 위한 금융수단으로 자리매김해 왔으나, 최근의 금융위기 이후 전세보증금에서 전세자금대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게 늘어나는 등 ‘전세의 부채화과정’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전세자금대출의 증가율이 가계대출증가율, 소득증가율, 주택가격증가율 등을 가볍게 넘어서면서 가계의 부채구조 건전성이 악화되고 있다. 전세제도의 형질 변화로 인해 고유의 자산형성 기능, 주택매매 잠재수요 등의 순기능을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프랑스의 세계적인 경제학자인 토머 피케티교수의 이론에 따르면 일반 국민들의 소득 증가가 자본의 축적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면 소득 분배구조가 악화돼 계층간 부의 편중의 심해지고, 이는 중산층에서 저소득층으로의 이동을 촉진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피케티 지수를 우리나라에 적용하면 2000년 5.8배, 2007년 7.0배, 그리고 2012년에 7.5배 등으로 증가하고 있는데, 이는 중산층의 붕괴까지는 아니어도 최소한 중산층에 진입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다.

향후 주택시장이 주택을 보유하는 매매시장과 주택을 소비하는 월세시장을 중심으로 재편되고, 전세시장은 중산층을 위한 매매시장의 범주에 편입될 것으로 예상된다. 전세가격 상승에 대응하기 위해 전세 레버리지를 올리는 정책은 결국 중산층으로 가는 진입장벽을 높이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주택 임대시장 정책은 전세가격의 안정을 통해 가계의 전세 레버리지를 낮추고 월세시장의 확산을 유도하는 방향으로 패러다임 변화를 모색할 필요가 있다.

김유태 농협경제硏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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