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어떤 자리에서 다소 엉뚱한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와인이 어떤 것이냐’는 것이었다. 딱히 뭐라고 대답하기 곤란해서 망설이자, 질문을 던진 사람이 직접 대답했다. 지금 이 순간 소중한 사람과 함께 마시고 있는 와인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그는 이 대답은 지난 2009년 1월, 미국 허드슨 강에 불시착할 때 그 비행기에 타고 있었던 한 사업가가 후회한 내용이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죽을지도 모르는 불길한 예감이 들던 순간, 그 사업가의 뇌리를 스쳐지나간 것은 며칠 전 소중한 친구가 집으로 찾아왔는데, 자신이 수집한 와인이 아까워서 차마 병을 따지 못한 채 그냥 보냈다는 후회였다고 한다. 와인 수집이 취미였던 그의 집에는 좋은 와인이 많았지만, 소중한 친구를 위해 술 한 병을 따서 함께 마시지 못했던 자신의 옹졸함이 갑자기 떠올랐다는 것이다.

그 얘기를 전해 듣고 집으로 돌아온 나는 밤새 ‘사업가’와 ‘후회’라는 두 단어가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나도 비록 작은 규모지만, 평생 호텔업과 외식업을 해 온 사업가 한 사람이 아닌가. 그렇다면 미국의 그 사업가처럼 죽음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그런 순간에 내게 밀려올 후회는 어떤 것일까?

거기에 생각이 미치자, 평생 일만 하고 살아온 내 모습이 보였다. 서비스 사업의 특성상 토, 일요일은 물론 남들이 모두 쉬는 명절조차도 제대로 쉬어본 적이 없이 일에만 매달렸던 과거가 나를 바라보며 묻고 있었다. 너는 과연 후회하지 않을 수 있어?

그렇게 해서 사실상 내 생애 첫 번째라고 부를 수 있는 진정한 여행을 떠나게 됐다. 승용차도 버리고, 가족에게는 간단한 메모 한 장 남겨놓은 채 무작정 집을 나섰다. 그리고 비로소 나는 해방감에 젖을 수 있었다. 일을 비롯한 모든 것에서 자유로웠다. 햇빛도 찬란했고, 숨 쉬고 있는 공기조차도 상쾌하다 못해 싱그럽기까지 했다. 내 몸은 물론 영혼까지도 내 안에서 춤추는 느낌이 들었다. 왜 이렇게 좋은 것을 60이 훌쩍 넘은 이제야 알아차렸을까? 그날 그 지인의 엉뚱한 질문 하나가 내 인생을 다시 돌아보게 해 주었다. 일 하는 만큼 휴식도 중요하다는 깨달음. 버리면서 얻었다고나 할까? 이것이 내가 여행을 통해 받은 충격이었다.

이제 곧 휴가시즌이 다가온다. 많은 사람들이 산이나 바다로 떠날 것이다. 또 늘 그래왔듯이 해외로도 나갈 것이다. 그러나 해외여행을 계획한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올해만큼은 여행계획을 국내로 돌려주시면 싶다. 온 국민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세월호 사건으로 어느 산업보다도 관광산업 쪽이 가장 직격탄을 맞았기 때문이다. 정부가 피해 관광업계에 500억 원이란 자금을 특별 융자해 주었지만, 그것은 겨우 마중물 역할에 그쳤다. 이제는 업계 스스로의 두 다리로 일어서야 할 때이다. 이때 국민들이 힘이 되어주면 한다. 여행을 가주는 것만으로도 관광업계에 분명 큰 도움이 된다.

곁들여 한 가지만 더 부탁드리자. 이왕이면 올해는 휴가를 하루 더 가달라. 경기가 심리에 크게 좌우되지만, 그 중에서도 관광분야는 심리에 참으로 취약하다. 이 일에 정부도 캠패인으로 동참해 주고 있지만, 국민이 하루만 더 휴가를 가면 이를 통해 관광업계 종사자들이 받게 될 심리적 안정은 말할 수 없이 클 것이다. 국민 모두가 국내로, 그리고 하루 더 휴가를 떠나 더 많은 것을 얻고 돌아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것이 후회하지 않을 삶을 사는 한 방법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