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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통과 열정으로…해외시장은 나의 숙명”
헝가리·런던 등 두루거친 ‘국제통’…김기범 KDB대우증권 대표의 위기 극복 리더십
지난 28일 김기범 KDB대우증권 대표는 바쁜 일정을 쪼개 대전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 우수 점포(용전동지점)와 부진 점포를 방문해 직원들을 직접 만나기 위해서다. 2012년 대표로 취임한 이후 이렇게 매월 전국을 누벼왔다.

‘직원들은 가족’이라는 신념으로 벽을 허물어왔다. 경청과 겸손을 금과옥조로 여긴다. 이것이 바탕이돼야 결단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지난 26일 서울 여의도 KDB대우증권 대표 접견실에서 미소속에서도 결의에 찬 그를 만날 수 있었다. 노타이 복장으로 들어선 김 대표는 접견실의 ‘상석’은 비워둔채 맞은편에 자리했다. 누구와도 늘 그렇게 앉는다고 했다. 최고경영자의 권위는 찾아볼 수 없었다. 때이른 초여름 날씨 못지않게 열정으로 가득한 모습에서 인터뷰는 약속한 2시간반을 훌쩍 넘겼다.

금융투자업계는 여전히 최악의 상황이지만 죽을 각오로 임하면 안될 게 없다는 그에게서 대우증권의 미래를 엿볼 수 있었다. 이력서에 ‘최초’라는 수식어가 늘 따라붙는 그는 국제전문가 답게 해외로 뻗어가는 대우증권, 통일후 대우증권의 역할에 이르기까지 ‘넘버 원’ 증권사의 CEO다운 경영철학을 가감없이 털어놨다.

▶“진정어린 소통이 위기 극복의 원천”=김 대표는 소통의 시작은 권위를 내려놓는 것이라고 말한다.

“대표과 임원, 임원과 직원의 소통이 제대로 돼야만 진정한 시너지를 낼 수 있습니다. 소통을 통해 임직원들의 협조와 참여를 이끌어 내는 것이 최고의 경영전략이라고 생각합니다. 임직원들과 혁신을 함께 이루고, 다시 소통과 배려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것이 제 경영철학입니다.”

이를 바탕으로 김 대표는 몸을 낮춰 현장과 동고동락하는 스킨십 경영에 앞장서고 있다.

“전체 직원 3000명 중 지점 직원이 절반 이상입니다. 일선 영업 현장의 목소리를 듣지않고서야 경영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방문한다고 하자 처음에는 실적부진 지점 직원들이 ‘무슨 추궁을 하려나보다’며 곱지 않은 시선도 있었다. 횟수를 거듭할수록 이런 오해는 풀려갔다.

대표와 직원들이 마음을 터놓고 강점과 약점을 논의하면서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나갔다. 직원들 조사는 꼭 챙긴다는 원칙아래 하루에 상가(喪家) 두 곳을 들르기도 한다. 조문 온 다른 직원들과 자연스레 만날 수 있어 상가 역시 소통의 장이 된다.

매주 월요일에는 팀별로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같이 한다. 사내방송과 사보를 통해 회사 경영상황을 자세히 공개한다. ‘직원 모두가 회사를 정확히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게 김 대표의 생각이다.

소통 경영의 효과는 어려운 업계 환경에서도 대우증권이 한 단계 도약하는 저력이 되고 있다. 스스로를 낮춤으로써 대규모 조직에 자발적이고 능동적인 문화가 확산되고 있다는 게 안팎의 평가다.

직원 교육에도 심혈을 기울인다. 직원들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 경영의 기본이라고 했다.

김기범 KDB대우증권 대표의 두 발은 여의도에 있지만 시선은 먼 곳을 향했다. 대우증권의 앞날을 생각하는 모습은 옹골차 보였다. 굵직한 목소리에 소탈한 웃음이 매력인 그는 직원들과의 소통이 모든 일의 시작이자 원천이라고 했다.
김명섭 기자/msiron@heraldcorp.com

▶위기앞에 움츠러들기 보다는 새 돌파구 모색으로 타개=위기를 맞을 때마다 항상 새로운 먹거리에서 돌파구를 찾았다. 중요 결정땐 과감하고 신속한 편이라고 했다. 한번 정해지면 머뭇거리지 않는 스타일이 때론 과하기도 하다고 털어놨다.

1983년 미국 씨티은행 입사 이후 30여년동안 금융맨으로 살아온 그는 CEO로 10여년을 보냈는데 늘 위기의 중심에 서 있었다. 그 때마다 사업을 축소하는 ‘관리형’ 대신 신규 수익원을 찾는 ‘공격형’ 경영을 보여줬다.

처음 최고경영자 자리에 오른 2001년 7월 한불종합금융이 그러했다. 당시 한불종금은 3년 연속 적자로 자본금 부분잠식 상태였다. 내노라하는 종금사들이 외환위기의 주범으로 지목되며 줄줄이 문을 닫던 상황이라 한불종금은 ‘바람 앞에 촛불’ 신세였다.

김 대표는 취임하자 마자 과감히 부실을 정리하고 새 출발을 모색했다. 4년간 노력해 부실채권 0%의 ‘클린 북(clean book)’을 만들겠다는 목표를 내놨고 강력한 드라이브로 3년 만에 달성했다.

위기 앞에 주춤거리거나 단기 실적을 노렸다면 이같은 과감한 결정을 내리지 못했을 것이다.

주주들의 절대적인 신임을 얻기 시작했고 무려 3연임에 성공했다. 2007년 메리츠종금증권 CEO로 옮기기 직전 3년간 한불종금은 흑자를 기록했고 자기자본도 취임 당시 160억원에서 1000억원으로 6배 이상 불어났다. 지금의 금융투자업계 위기 속에서도 한 발 물너서기 보다는 오히려 공격적인 횡보를 이어가고 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금융투자업계의 인력 구조조정과 지점 축소ㆍ이전은 고육지책에 불과합니다. 고객 신뢰가 무너지고 영업부진으로 이어지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습니다.”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전문화, 그리고 고객 지향적인 리테일(소매) 강화의 기회로 삼고 있다. 대우증권은 천편일률적인 점포 규모를 상권 등을 반영해 다변화하는 ‘점포 혁신’을 시도하고 있다. 상권이 축소되는 곳은 지점을 폐쇄하거나 규모를 축소하는 한편 신상권으로 뜨는 인천 송도와 경기도 판교에 직원 3~4명으로 구성된 미니 점포를 개설할 계획이다.

고객이 원하는 장소와 시간, 원하는 컨텐츠를 제공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이다. 요즘은 온라인쪽, 특히 앱 부문에 부쩍 신경을 많이 쓴다.

▶시선은 국내를 넘어 세계로=김 대표는 대우투자자문 국제업무와 헝가리 대우은행ㆍ증권, 런던 대우증권 등을 두루 거친 ‘국제통’ 답게 위기극복의 탈출구로 세계 시장을 주시하고 있다.

1994년 포항제철 미국주식예탁증서(ADR) 뉴욕 상장, 1995년 세계은행 아리랑본드 최초 발행, 1996년 인도네시아 현지기업 외화표시채권 첫 발행, 1997년 스위스 프랑 교환사채(EB) 발행 등 국내 사상 첫 해외 딜을 숱하게 성사시켰다.

이같은 경험은 해외 진출의 자신감이자 큰 밑거름이 됐음은 물론이다.

국내 최초의 여러 해외 딜을 성사시킨 것은 무엇보다 값진 경험이었고, 최근 시장이 어렵다보니 오히려 인내와 도전정신이 다시 생겨난다고 했다.

취임 후부터 추진해 온 지역별 특성에 맞는 해외 특화 전략을 지속해 나가고 있다.

“뉴욕 런던 홍콩 등 ‘선진 시장형’ 거점에선 부동산, 부실채권(NPL) 등에 대한 자기자본투자(PI)를 특화시켜 국내 투자자들에게 다양한 상품을 제공하는 전초기지로 키울 겁니다. 인도네시아처럼 자체 성장동력이 큰 신흥국 거점에선 현지에 진출한 뒤 종합 증권사로 키워나가고, 기타 국가에서는 딜 소싱(거래 물건 확보) 위주의 프로젝트를 수행할 계획입니다.”

해외에서 가시적인 성과도 나오고 있다. 작년 6월 인도네시아 금융당국으로부터 현지 최대 온라인 증권사인 이트레이딩증권 대주주 변경 승인을 받아 현지법인을 설립했다.

몽골 현지법인도 개설했다. 이를 토대로 각종 자원·에너지·부동산 개발을 자문하고 몽골 국채와 현지 은행 채권상품을 국내에 들여와 판매하고 있다. 올 들어선 몽골 현지법인 자본금을 늘리고 현지 교민과 자산가를 대상으로 한 자산관리서비스를 시작하는 등 다각적인 영업에 나서고 있다.

이에 대우증권의 해외진출은 점점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김 대표가 해외진출에 집중하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국내 60여개 증권사가 무한 경쟁을 펼치다보니 수수료 덤핑 등의 악순환 속에서 고급 인재들이 떠나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같은 고급인력을 해외로 진출시킬수만 있다면 윈윈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과거처럼 해외근무에 과도한 수당은 더이상 없다. 추가 비용없이 성과에 따른 인센티브로 충분히 커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회사와 직원간의 신뢰와 믿음이 뒷받침돼야한다는 것이 김 대표의 생각이다.


▶“금융 약자의 편에 서고 싶다”=자본시장의 역할이 매우 중요해졌다고 했다. “한국은 제조업이 기반이지만 금융이 필히 받쳐줘야합니다. 또 국가경쟁력은 이제 첨단산업에서 판가름나게되는데 첨단에는 바로 자본시장의 역할이 필요합니다.”

통일 금융과 관련해서는 진작에 직원 10여명으로 구성한 미래경영위원회(주니어보드)의 연간 활동 주제로 ‘통일 후 금융비즈니스’를 정하고 연구중이다.

그의 포부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저소득층의 부채나 자산관리 서비스로까지 확대하고 싶다고 했다. 그는 “30년 넘게 금융맨으로 살아온 경험을 살려 ‘소셜 임팩트 펀드(Social Impact Fund)’를 조성, 지속적인 사회공헌활동을 전개하고 싶다”고 말했다.

저소득층에 대한 자산관리는 사회 안전망 확충의 의미도 있다. 이들의 자산증식은 곧 경제활력 제고와도 맞닿는다. 이런 활동을 지속적으로 하기위해서는 기본적으로 회사 자체가 수익을 내고 튼실해야한다.

그가 오늘도 새 수익원 발굴을 위해 매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정리=박세환 기자/greg@heraldcorp.com



김기범 대표가 걸어온 길

▷1956년 서울 출생
▷1975년 경복고 졸업
▷1979년 한국외대 정치외교/경제학부 전공
▷1983년 펜실베니아대학 와튼스쿨 MBA
▷1983~1988년 씨티은행 기획조정실장
기업금융부장
▷1988~1990년 대우투자자문 국제업무과장
▷1990~1994년 헝가리 대우은행 기획실장
헝가리 대우증권 사장
▷1994~1997년 대우증권 국제금융부장
▷1997~1999년 런던 대우증권 사장
▷1999~2001년 대우증권 국제사업본부장
▷2001~2007년 한불종합금융 대표
▷2007~2010년 메리츠종합금융증권 대표
▷2012년 6월~ KDB대우증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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