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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크엔드] 붉은함성 성지…마음 統했다, 힐링 通했다
2002년 붉은악마 가득찬 서울광장…4년마다 어김없이 열리는 힐링공간
같은생각·같은목표로 에너지 발산

세월호 참사에 깊은 생채기 대한민국…국민 상처 어루만질 치유의 장 기대


“2002 월드컵 미국전 비가 내리던 시청 앞 광장. 우산을 접어야 함께 응원할 수 있다는 누군가의 한마디에 수만개 우산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월드컵은 우리를 통하게 한다 …”

최근 전파를 타기 시작한 현대자동차의 2014 브라질월드컵 광고 한 장면이다. 2002년 6월의 서울광장은 그렇게 뜨거웠다. 미국전이 열린 6월10일 서울광장과 광화문 사거리에 몰린 사람들만 무려 30만명. 12년 뒤인 2014년 여름, 또 다시 광장은 붉은 얼굴로 들썩인다.

4년마다 돌아오는 월드컵 축구대회. 그때마다 주목받는 ‘광장’은 힐링의 장소였다. 광장은 대한민국의 상처를, 개개인의 번민을 치유하고 보듬었다.

월드컵 길거리 응원의 태동은 1998년 프랑스월드컵이다. 이보다 한 해 전인 1997년 천리안·하이텔 등 PC통신의 축구 동호회에서 프랑스월드컵 아시아 예선을 앞두고 국가대표팀에게 조직적인 응원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오면서 만들어진 ‘그레이트 한국 서포터즈 클럽’(Great Hankuk Supporters Club)이 모체다. 이후 국가대표 서포터스 명칭 공모를 통해 ‘붉은악마’(Red Devils)가 선택됐고, 붉은악마는 1997년 8월 10일 열린 한국과 브라질의 친선 경기에 처음으로 붉은색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서포팅을 시작했다.


이 시기는 바로 대한민국 경제사에서 가장 수치스럽고 어두웠던 시대였다. 외환위기로 수많은 기업이 무너졌고 가장들은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었으며 가족은 뿔뿔이 흩어졌다.

누군가의 위로가 필요했고 기댈 수 있는 어깨가 절실했던 그 시대, 우리에겐 광장이 있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지만 약속이라도 한듯 붉은 옷을 입고 광장으로 몰려들었다. 생판 모르는 얼굴, 전혀 상관없던 사람들이 똑같은 생각으로 한 곳을 보며, 같은 목표를 향해 소리를 내질렀다. 광장에선 모든 사람이 한마음이었다. 우리가 함께한다는 걸 깨달으며 상처는 자연치유됐다.

광장은 셀프 힐링의 무대였다.

사람들은 그곳으로 자꾸 모였다. 절정은 2002 한·일 월드컵이었다. 그 중에서도 미국전이 시발점이 됐다. 조별리그 1차전인 폴란드전 승리로 반세기만에 월드컵 첫 승을 따낸 데다 동계올림픽 ‘오노사태’ 등으로 반미감정이 불거지면서 미국을 반드시 꺾어야 한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만들어졌다.

전국의 광장 곳곳에 운집한 응원인파는 첫 경기인 폴란드전(50만명)과 예선전인 미국전(77만명)만 해도 그 수가 많지 않았다. 하지만 한국의 16강 진출이 확정됐던 포르투갈전에 279만명이 몰리더니 역사상 최초의 16강전인 이탈리아전에는 420만명이 전국의 광장으로 몰려나왔다. 스페인전과 독일전에는 각각 420만명, 650만명이 몰렸다.

서울광장과 광화문 일대를 붉게 물들인 1000만명의 뜨거운 함성은 전세계로 타전되고 외신의 호평이 잇따랐다. 그렇게 역사적인 월드컵 4강 신화가 탄생했다.


올해도 ‘힐링의 광장’이 열린다. 월드컵의 해, 대한민국은 세월호 참사로 300여명의 꽃다운 생명을 잃었고, 온 국민이 비통해 했다. ‘아픔을 발전의 동력으로 승화시키면서 일상으로 돌아가자’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맞게 되는 6월 월드컵은 그 어느때 보다 감회가 남다를 것으로 보인다.

공감과 나눔의 둥글고 붉은 외침이 노란색 리본과 함께 나부낄 것이다. “붉은 옷 보다는 노란옷을 입자”, “검정색 바지에 황색 또는 적색 티셔츠를 입자”는 감론을박 속에는 사랑도 함께 자리한다. 따뜻한 분위기가 더해질 올해 월드컵 광장 응원 역시 힐링일수 밖에 없는 이유이다.

조범자ㆍ서상범 기자/anju1015@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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