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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리즘] 2014년 그 우울한 가정의 달 첫 자락에서…
슬픔과 분노, 그리고 ‘그래도 살아야 한다’는 삼중주... 2014년 5월 가정의 달은 꽈배기 처럼 복잡하게 얽힌 채 그렇게 문을 열었다. 최장 6일간에 달하는 ‘황금연휴’ 동안에도 세월호 현장에서 들려오는 뉴스는 계속됐고, 꽈배기 처럼 얽힌 감정의 삼중주는 좀체 풀리지 않았다.

하지만 분위기는 불과 1주일여와는 확연히 달랐다. 국민들은 넋을 놓고 앉아 있기 보다는 밖으로 내달렸다. 과거의 슬픔에서 벗어나기 위해 ‘현재’와 ‘미래’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지난 5일 서울 명동 한 복판은 가족단위 나들이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인사동과 남대문 시장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황금연휴 내내 경부를 비롯해 서해안, 영동, 서울-춘천간 고속도로 등 전국 주요 도로는 모두 나들이 차량들이 점령했다. 길거리 한 켠에 일렬로 죽 늘어진 ‘노란 리본’ 만이 세월호의 아픔을 기억하고 있을 뿐이었다.

세월호 쇼크에 매출이 일시적으로 빠졌던 유통업체들도 이 기간 만큼은 모처럼 화색이 돌았다. 마이너스 성장에 허덕이던 이마트는 이 기간 20% 대의 높은 성장세를 기록했고, 롯데백화점 역시 기존점 기준으로 10.4%에 달하는 매출 성장세를 올렸다. 경기가 그나마 좋았던 지난 2010년 당시 20% 대에는 못미치지만, 최근 분위기를 감안하면 이례적인 수치다.

왜...물음표가 꼬리를 문다. 손 한번 써보지 못하고 바다 밑으로 가라앉은 세월호의 충격에서 그렇게 빨리 벗어난 것인가. 또 다시 대한민국이 ‘망각의 늪’에 빠진 것인가.

유통업체 한 관계자는 이에대해 “다들 분위기가 그래서 대놓고 말은 못해도 세월호는 일시적 쇼크였다. 아직 섣불리 단정할 수는 없지만 사람들이 가정에 대한 미안함에 오히려 지갑을 열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현오석 경제부총리의 말을 따라가면 머리속이 더 복잡해진다. 현 부총리는 7일 ”경제가 회복세를 보이고 있지만 민간소비가 (세월호 사고) 영향을 받아 부진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최근 소비위축 등에 따른 대응방안 논의를 위해 9일 대통령께서 직접 주재하는 ’긴급민생대책회의’가 열릴 것”이라고까지 했다.

누구 말이 맞나. 참 쉽지 않은 문제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뇌리를 스친다. 숫자가 생명인 현장에선 소비 부진의 원인을 면밀히 훑었다. 매출이 갑작스레 늘은 이유도 나름대로 찾았다. 하지만 정부와 여론은 여전히 ‘세월호’에 모든 것을 묻으려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잠시 샛길로 빠져 세월호 참사 이후 인터넷 상에서 음모론이 부쩍 늘은 것도 개운치 않다.

세월호 만큼은 ‘망각의 늪’에 빠져서는 안된다. 그래야 대통령이 그토록 외치는 ‘정상’에서 일탈한 대한민국을 정상으로 돌릴 수 있다. 그래야 실추된 어른들의 권위도, 정부에 대한 믿음도 되살릴 수 있다. 그렇다고 모든 것을 세월호에 묻으려고 해서도 안된다. 변명은 변명일 수 뿐이 없다는 자명한 논리에서 벗어나지 말자.

연휴 기간 우연치 않게 7살짜리 아이와 함께 본 TV만화가 생각난다. 마법에 걸려 말할 때 마다 개구리 소리가 나는 공주에게 토끼는 이렇게 말했다. “난 도토리를 잃어버리면 항상 내가 왔던 길을 되돌아가. 그러면 도토리를 찾을 수 있었어” 공주는 이틀동안 자기가 한 행동을 되집어 보고 나서야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마법을 푼다는, ‘다 컸다고, 모든 것을 안다’고 생각하는 어른들의 시각에서 보면 뻔한(?) 내용의 만화다.

어쩌면 복잡한 감정의 기제가 어우러진 황금연휴 기간 사람들은 이 뻔한 만화의 주인공이 됐는지 모른다. 바쁘다는 핑계로, 가족이니까 이해해주겠지 하는 알량한 생각을 버리고 ‘사랑해’ ‘미안해’ ‘고마워’ 하는 단어들을 떠올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정부는 여전히 ‘변명의 늪’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닐까.

소비자경제부 한석희 차장/hanimom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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