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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변재곤의 스포츠 오딧세이> 삶의 정도(正道)
나는 고등학교 교사인 아내와 고등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인 아들이 있다. 세월호의 참사 소식을 보고 몸서리치도록 떨리고 두려웠다. 어느 경우든 피해갈 수 없는 상황에 놓일 수 있었다. 그래서 유가족의 희망과 절망을 동시에 느낄 수 있을 것만 같다. 잔인하게 너울거리는 팽목항의 물결 앞에서 내 자신의 무력함에 울분을 토로하며, 해가 지면 진도체육관 바닥에 머리를 뉘어야하는 사치에, 다시금 분노가 치밀었을 것이다. 생사의 갈림길에 선 가족을 당장 구해내지 못하는, 못난 가장이라는 자책감에 그 밤을 그렇게 뜬눈으로 지새고, 혹시 들릴 구조소식에 희망을 걸었을 것이다.

같은 날 예약순위에 밀려 세월호를 타지 못한 다른 학교는 내내 아쉬워하며 다른 교통수단을 이용해야만 했다. 결국 파괴된 사회안전망으로는 누구든 이번 참사의 예외자가 될 수 없었다. 어찌 이런 기괴한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문제의 핵심을 도저히 요약할 수 없는 총체적 난국이라는 말밖에는 다른 말은 할 수 없겠다.

다급한 순간, 구조를 지휘 통제할 해양경찰은 지리멸렬했고, 정부도 창구일원화외에는 별달리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했다. 구조와 수색사이의 갈지자 행보가 이어지자 희생자 가족은 절규하기에 이르렀다. 내 가족처럼 여기고 자식과 남편과 아내를 살려달라고. 이성과 감성이 시시각각 변하면서 비분강개를 넘어 절절한 읍소까지 이어졌다. 그러는 사이 이를 악용하려는 외부인의 철없는 행동도 있었다. 또한 혼선을 초래한 언론의 보도행위도 도마 위에 올랐다. 결국 정해진 시간과의 사투는 오직 결과만이 해답을 낼 수 있었다. 하지만 비통하게도 단 1명의 구조소식도 들려오지 않았다. 거듭되는 공복들의 복지부동의 습관은 팽목항의 들끊는 여론과 국민들의 질책에 속시원한 답을 주기는 이미 역부족이었다. 하물며 유사시에 빛을 발해야 할 선량들은 역시나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무엇이 이리도 우리 사회를 멍들게 만들었을까? 지금껏 리더들의 언행은 표리부동했었다. 오히려 성숙한 시민의식이 이 나라의 근간이 됐다. 탈출하라는 신호를 간절히 기대하며 기다렸던 승객들의 높은 시민의식을 폄하해서는 안 되겠다. 며칠전 지하철 2호선 상왕십리역 추돌사건에서도, 서민들의 높은 의식수준이 확인된 바 있다.
인면수심의 선주와 선원들의 행동이 지금껏 통과될 수 있었던 것은 집단과 자신만의 영리를 추구하려는 물질만능주의 폐단이 주된 원인이 됐다. 갑을 지향하면서 권력과 부를 추구하는 기성세대의 삶의 목표가 인간의 참된 가치인 정직과 진실의 의미를 속단케 했다. 큰소리치면서 이 사회를 이끌 것 같던 이들은 위기상황엔 간데 없었다. 단지 삶의 자세에 대해 깊게 고민하는 자원봉사자들의 소리 없는 행렬과 잠수사들의 끝없는 노력만이 희생자가족의 아픔을 그나마 달랠 수 있었다.

이제는 희생자 가족들의 남은 생에 대해 머리를 맞댈 때이다. 희생자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우리는 그들을 오랫동안 기억해야겠다. 스포츠 구단이 나서서 매년 그날 그들을 기억하는 추모행사가 마련돼야겠다. 우리 마음속에 영원히 노란 리본을 간직하기 위해서. 

칼럼니스트/aricom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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