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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 칼럼 - 함영훈> 초대형 비리 주범에 솜방망이질 한 이후…
사극 ‘정도전’은 개인 전기(傳記)라기 보다는 여말선초(麗末鮮初)의 혼란상을 배경으로 어떤 내용의 개혁이 필요한지, 어떤 리더십이 있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정도전 식 정치시스템은 귀족 합의체였다. 군주는 군사력을, 사대부는 명분과 세력을 제공하는 구조이고, 방법론은 ‘합리적 토론’이었다. 정치자금은 과전법, 즉 명문세도가가 국가업무인 병역의 면제를 조건으로 소작농에게서 받던 토지임대료를 국가가 받도록 해서 조달한다는 구상이다. 그러나 나중에 변질돼 ’귀족 1%를 위한 사회‘로 귀결된다.

이에 비해 이방원은 고려말 혼란상이 왕권 약화에 있었다고 보고 강력한 중앙집권체제를 꾀하면서 신흥 공신과 측근들을 중용해 이들을 통해 자기 뜻이 하달되기 바랬다. 내 사람을 만드는데엔 돈이 많이 들어갔기 때문에 자신은 물론 측근들의 뇌물 수수에 관대했다. 이방원이 우려곡절 끝에 등극하던 1401년, 조말생이 증광문과에 장원급제한다. 이 수재는 측근으로 기용되며 승승장구했다. 세종으로의 정권이양기에 병조판서를 맡던 조말생은 그러나, 당대 최대 권력형비리의 몸통이 된다. 그가 챙긴 뇌물은 노비 48명, 땅 4결(약 100만㎡), 은병 수천근 등 800관에 달했다. 당시 양형기준은 ‘80관 이상 사형’이지만 세종은 “선대왕부터 헌신한 공신으로서 그 공로를 잊을수 없다”면서 귀양을 보내는데 그쳤다. 조말생은 몇 년 지나지 않아 동지중추원사로 부활한다. 성군 세종도 의리에 약해 원칙을 어겼고, 뇌물 관행은 귀족부터 하급관리까지 사라질 줄 몰랐다.

형조판서 이승손은 여러 왕에 걸쳐 측근 노릇을 하던 권맹손의 고변때문에 ‘소 10마리를 뇌물로 받은 혐의’로 파직됐다. 하지만 얼마후 이승손은 권맹손의 매관매직 비리를 고발해 권을 낙마시킨뒤 예조판서로 복귀했다. ‘X묻은 개’는 너나 할 것 없었다. 요즘도 대형 게이트때 마다 ‘정관계 리스트’가 나도는 것을 어렵지 않게 볼수 있다.

윗물이 흐리니 아랫물도 탁했다. 황해도 기근 구제를 위해 양곡 500섬을 보내자 안악군수는 200섬을 빼돌렸다. 대재앙의 희생자나 불우 이웃을 위한 성금 마저 착복한 것이다. 2013년에도 비슷한 논란이 있었다. 장교들은 마구잡이 징집통지를 해놓고는 빼주는 조건으로 뇌물을 챙겼다. 그래서 상당수의 병영에선 어리거나 나이 많은 노약자 비중이 군졸의 절반에 육박했다고 사서는 전한다. 요즘도 심심찮게 ‘병풍’사건이 터진다.

포졸들은 곤장을 살살치거나, 통금 시간 위반을 봐주는 대가로 금품을 받았고, 죄인들의 집단탈주를 묵인하며 거액을 챙겼다가 조정을 충격에 빠트리기도 했다. 역관은 외국상인의 체류기관 연장, 조기 귀화 등을 미끼로 돈을 받았다고 실록은 전한다.

법규, 원칙, 매뉴얼이 무너진 곳에는 반드시 탐욕과 금권이 판을 쳤음을 역사는 말해준다. 뇌물과 검은 거래는 선한 생명까지 위협한다는 점을 우린 목도하고 있다.

출발선에서 조금 빗나간 조준이 과녁에서는 엄청난 오차를 만들어 낸다. 투명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대수술은 대통령의 의지에서 출발한다. 수술에 실패하면 통치의 실패로 여길 분위기다. 

함영훈 라이프스타일부장 /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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