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같은 우려가 현실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러시아의 ‘천연가스 공급 중단’ 엄포에 유럽이 떨고 있다.
푸틴 대통령이 10일 (현지시간) ‘가스 무기’ 카드를 빼들자, AP통신과 파이낸셜타임스(FT) 등 서방언론은 유럽연합(EU) 28개국을 분열시키기 위한 의도로 풀이했다.
다음주 우크라이나 사태 해결을 위한 미국-러시아-EU-우크라이나 간 4자 회담을 앞두고, 우크라이나의 ‘연방제 개헌’을 수용하라고 압박하는 제스처라는 해석이다.
푸틴 대통령은 유럽 18개국에 보낸 서한에서 우크라이나로부터 받을 빚이 밀린 가스공급가 170억달러에, 의무 인수 계약파기에 따른 위약금까지 더해 총 354억달러라고 적시했다. 이는 국제통화기금(IMF)가 우크라이나에 제공할 구제금융액 140억~180억달러를 훨씬 뛰어넘는다. 만일 대금을 갚지않으면 가스 공급을 중단하겠다는 엄포도 넣었다.
▶서유럽 보단 동유럽 의존도 커 =유럽 전체 천연가스 수요의 31%가 러시아산이란 건 익히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 가운데 우크라이나를 경유하는 ‘브라더후드’와 ‘소유즈’를 통한 공급량이 절반인 15%를 차지한다. 즉, 우크라이나로의 가스 공급이 막히면, 당장 유럽 가스 수요량의 15%가 부족해진다.
러시아산 가스 의존도는 러시아와 인접한 국가일 수록 높다. FT에 따르면 2012년 기준 폴란드 79.8%, 체코 100%, 슬로바키아 99.5%, 루마니아 86.1%, 불가리아 100%, 그리스 59.5%, 헝가리 43.7%, 불가리아 100% 오스트리아 71% 등이다. 러시아 가스가 끊기면 24시간 무중단으로 가동하는 석유화학, 중공업, 조선, 자동차 등 동유럽 제조업이 크게 흔들릴 수 있다. 이 경우 독일(35.7%), 이탈리아(28.1%), 프랑스(15.6%), 네덜란드(11.2%) 등 러시아산 의존도가 상대적으로 적은 서유럽의 에너지 비용 상승 등 연쇄 작용을 일으킬 게 뻔하다.
EU는 우크라이나에 러시아 가스 공급이 중단될 경우 슬로바키아를 통해 우크라이나로 가스를 공급하는 방안도 고려 중이다.
▶떨고있는 서방 에너지 기업들 =영국 BP와 쉘, 프랑스 토탈, 미국의 엑손모빌 등 서방 에너지기업들도 걱정이 커지고 있다. 특히, 러시아 국영석유회사 로즈네프트의 지분 20%를 보유한 BP가 러시아와 서방의 관계 악화 시 가장 큰 타격을 볼 것으로 예상된다. FT에 따르면 러시아는 BP의 세계 석유생산과 저장량의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다. 또 로즈네트프의 BP 전체 수입 기여도는 지난해 16%(22억달러)였다. 10일 런던에서 열린 BP의 주주설명회 자리에선 투자자들 사이에서 로즈네프트 지분이 러시아로 귀속될 가능성, 가스 및 석유 개발프로젝트 차질 등 우려가 쏟아져 나왔다. 쉘이 사할린에서 2개프로젝트를 통해 액화천연가스 100만톤을 생산하고 있으며, 엑손모빌은 사할린1 석유및가스 프로젝트에 지분 30%를 보유하고 있다.
러시아 가스 공급 중단 시 단기적 영향은 미미하다는 분석도 있다. 스위스 안보문제연구소(CSS)의 조나스 그래츠는 독일방송 DW와의 인터뷰에서 “서유럽 가스 저장소에 4개월치 분량인 60% 가량이 채워져 있다”며 “헝가리, 불가리아는 타격받지만 EU에 미칠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낙관했다. 귄터 웨팅어 EU 에너지집행요원은 “유럽의 이번 겨울이 따뜻해 작년보다 가스 저장량이 높아졌다”고 전했다.
러시아의 유럽시장 의존도를 무시할 수 없다는 점도 낙관론의 배경이다. 러시아 전체 예산의 60%는 석유, 가스에서 발생하는데 유럽이 가장 큰 시장이다. 러시아는 EU의 세번째로 큰 교역국으로, 2012년에 유럽으로 2150억유로 상품을 수출하고, 1234억유로를 수입했다.
한지숙 기자/jshan@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