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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변재곤의 스포츠 오딧세이> 영원한 현역 박세리
열흘 정도 봄이 일찍 찾아왔다. 생체리듬에 맞춰 꽃망울을 터트리는 식물들이 화들짝 놀라 예년보다 앞서 꽃을 피웠다. 능선을 향해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는 산길주변에, 다섯 갈래로 곱게 갈라진 분홍빛의 진달래가, 객을 그리도 반길 수가 없다. 흐드러지게 핀 벚꽃은 이미 바람에 날려 아쉬운 자태만이 남겨 놓았다. 이제 그 꽃들은 그렇게 질 것이다.

만개한 꽃처럼 주인공의 삶을 살고 싶지만 세상사 이치에 따라, 인간도 노년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 이는 곧 퇴직을 의미하기도 한다. 반갑지 않은 선물(?)이다. 본인의 의지와 달리 관습과 법령에 따른 마지막 임계점이 될 것이다. 제 2의 인생설계를 위해 생소한 영역까지도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그래서 만년 현역이라는 말을 들을 때 중년층은 더 없이 반가워한다. 


프로골퍼 박세리는 서른일곱살인 지금도 현역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대단한 일이다. 지난 7일(한국시간) 끝난 메이저대회 크라프트 나비스코 챔피언십에서 공동4위를 차지했다. 전성기였던 2003년 분위기가 연상되는 듯 팬들을 마냥 설레게 했다. 뭔가 큰일을 벌일 것 같은 기대감이 있었다. 그녀에게 커리어 그랜드슬램(생애 통산 4대 메이저대회 우승) 목표는 남달랐다. 위기에서 자신을 지켜줄 이유가 됐다.

흔들릴 것 같지 않은 열정이 한동안 정체기에 빠졌었다. 늦게 찾아온 사춘기랄까? ‘내게 있어 골프는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봉착하게 됐다. 그간 영화처럼 찾아온 명예와 부는 너무도 어린 스무살의 나이부터 시작됐다. 여과장치가 없는 국민의 기대는 그녀로 하여금 동년배의 삶을 일견 포기케 했다. 조숙하기만을 기대했다. 효심이 깊고 책임감이 강하기에 반론 없이 주어진 상황을 받아들였다. 자신의 존재의 의미를 타인의 요구와 지시에 따라 순응한 것이다.

내면의 성찰은 슬럼프와 동시에 맞물려 돌았다. 오차 없이 굳건히 자신을 지켜줄 것으로 믿었던 실체들이 일상의 일탈로 변해갔다. 성적은 하위권을 맴돌았고 감정에 충실하면서부터 갈음해야 할 분노마저 직설적인 화법과 맞물려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그럴수록 불에 기름을 부은 듯 세인들의 관심은 경기이외의 사실에 더욱 주목해갔다.

위기였다. 구원의 손길이 필요했다. 인생에서 순풍만을 기대할 것은 아니다. 역풍이 불때가 곧 전진과 변화를 도모한다고 했다. 결국 목표의식이 추락하려는 그녀를 붙잡았다. 첫 번째 위기탈출은 명예의 전당 헌액이 매개체가 됐다. 긴 고통 뒤의 성과였다. 주위에서 조심스럽게 은퇴를 이야기할 때 다음 목표인 커리어 그랜드슬램 달성이라는 말로 두 번째 위기 탈출 신호를 보냈다.

마음이 머문 곳에 길이 열리는 법인가. 2010년 벨 마이크로 클래식에서 우승하면서 진정한 우승의 의미를 깨닫게 됐다. 우리 모두는 그녀의 커리어 그랜드슬램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그 길은 지금처럼 천천히 자신의 길을 가다보면 이루어질 것이다. 남을 위한 골프가 아닌, 자신을 위한 골퍼의 길이라면 족하지 않을까 싶다.

칼럼니스트/aricom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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