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현장에서 - 최정호> 정부發 담합…책임지지 않는 공무원
“소비자의 서비스 및 가격 선택권의 기회가 없어지거나 줄어드는 상황이 초래된 점을 고려하면, 양사의 담합행위는 매우 중대한 위반 행위다.”

지난 25일 대법원이 SK브로드밴드(옛 하나로텔레콤)에 대한 공정거래위원회의 과징금 부과가 정당하다는 판결문 중 일부다. 이로써 KT와 SK브로드밴드는 시내전화 요금 및 시장점유율 담합의 대가로 각각 949억원과 18억900만원의 과징금을 내게 됐다.

그런데 판결문 중간에 흥미로운 문구 하나가 숨어있다. “정부 시책이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친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다”고 재판부는 명시했다. KT와 SK브로드밴드의 요금 및 시장점유율 담합에 정부가 관여했다는 말이다.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보면 이번 사건에서 정부, 즉 당시 정보통신부(현 방통위와 미래부)가 어떤 행동을 했는지 좀 더 명확하게 알 수 있다. 2005년 당시 공정위의 조사를 보도한 기사 중에는 “정통부가 KT에 대한 요금인가제를 유지하면서 이를 기반으로 묵시적 요금 담합이 이뤄질 가능성이 크며, 정통부의 과열마케팅 자제 요구에 부응하다가 담합 혐의를 받게 된 측면이 있다”고 억울해한다는 업계 관계자의 발언이 소개됐다.

정통부가 KT에 하나로텔레콤보다 일정 수준 이상의 요금을 더 받는 대신, 가입자 중 일부를 의무적으로 하나로텔레콤에 양보토록 강요했다는 것이다. 정부가 나서 담합을 조장했다는 의미다. 그런데 공정위의 조치, 또 법원 판결 어디에서도 문제의 공무원이나 그 조직에 대한 처벌은 찾아볼 수 없었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공무원들의 이런 반시장적 월권 행위는 반복되고 있다. 최근 미래부는 이통 3사 임원들을 과천 정부종합청사로 소집, 대국민 선언문을 낭독하게 했다. 종전까지 평균 60만원 가까이 지급했던 보조금을 정부 가이드라인인 ‘27만원’만 주겠다는 대국민 선언이다.

10년 후 공정위와 법원은 이번 일에 또다시 담합의 칼날을 들이밀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 칼날은 통신 3사만을 향할 것이다. 10년 전 시내전화 시장과 똑같은 구도다. 그리고 그때나 지금이나 담합을 주도한 공무원은 결코 책임지지 않는다는 사실도 변함없다.

최정호 산업부 choijh@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