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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제광장 - 주경순> 담뱃갑 포장만큼은 규제가 필요하다
세상이 규제 문제로 떠들썩하지만 필요한 규제 이야기 하나만 하자. 세계보건기구(WHO)는 담배에 4800여종의 화학물질과 69종의 발암성 물질이 있다고 경고하고, 세계공중보건 문제 1위로 지정하는 등 흡연의 해악에 대해 비중있게 다루고 있다.

흡연의 해로움은 과거에도 많은 논란이 있었으며, 그럴 때마다 담배회사들은 아름다운 여성과 품격있는 신사가 담배를 물고 있는 광고 이미지로 소비자들을 현혹했다. 신사와 숙녀는 담배를 피운다는 암시와 함께 담배가 남성다움을 나타내는 가치재임을 알리는 데 열중했던 것이다. 담배에 박하, 바닐라, 딸기 향이나 색소까지 첨가해 담배가 건강에 해롭지 않다는 것을 강조하려고, 또는 해롭다는 사실을 숨기려고 애써 왔다.

담뱃갑 포장은 그 미화작업의 선두에 있었다. 그런데 최근 십수년 새 선진국 대부분은 금연을 유도하기 위해 담뱃갑 디자인과 광고에 대해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 특히 호주는 2006년부터 담뱃갑 앞면의 75%, 뒷면 90%의 크기로 흡연의 폐해 사진을 넣도록 의무화했다. 2012년부터는 모든 담뱃갑에 정해진 서체와 크기의 활자만 사용하고, 로고와 브랜드 등은 일체 사용할 수 없게 추가로 규제를 강화했다. 소위 ‘꾸미지 않은 담뱃갑 포장(Plain Package)’ 제도다. 담배만큼은 규제완화라는 세계적인 추세와 반대방향으로 가는 셈이다. 미국에서는 올해 2월 행정부의 금연캠페인 발표 직후 대형 의약ㆍ화장품 소매유통업체인 CVS가 전국 7600개 매장에서 담배 판매를 중단한다고 밝혔다. 판매 중단으로 약 20억달러(2조원)의 매출이 줄어들 것으로 전망했지만, 담배 판매가 국민 건강을 해친다는 권고에 따라 결정을 내렸다.

우리의 경우를 보자. 세련된 담뱃갑 디자인에 더해 판매점 내부의 광고는 갈수록 화려해지고 있다. 대부분 편의점은 가장 눈에 잘 띄는 계산대 뒤에 담배를 진열하고, 디지털 디스플레이와 LED조명을 사용해 돋보이게 하고 있다. 이런 환경에서 흡연 폐해에 대한 경각심을 주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담뱃갑에 폐암환자의 섬뜩한 사진을 삽입해 그 폐해를 적극적으로 알리는 외국과 비교하면 너무 대조적이다.

최근 국민건강보험공단이 흡연 폐해를 과학적으로 밝힌 연구분석 결과를 근거로 4월 중 담배회사를 상대로 500여억원에서 2300여억원의 담배 소송을 제기한다고 한다. 지난 2월 WHO 서태평양지역본부(WPRO)가 “한국의 담배소송 소식을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다. 건보공단의 소송을 담배규제를 강화하는 세계적 흐름 속에서 중요한 사건으로 인식하고 적극 지지한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아울러 WHO가 2003년 담배규제기본협약(FCTC)을 계기로 구축한 전문가, 국제변호사 등 인적 네트워크 및 축적된 자료도 제공하겠다고 약속했다.

세계 각국은 담배를 국민들로부터 떼어놓기 위한 실질적인 규제에 나서고 있다. 이런 흐름 속에서 한국의 담배소송 과정은 전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될 수밖에 없다. 세상에 팔리는 물건 중 사용에 따른 해악을 포장지에 스스로 표시해야 하는 제품은 담배가 유일하다. 우리나라도 보다 적극적인 규제가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주경순 전국주부교실중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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