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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변재곤의 스포츠 오딧세이> 체육훈장 서훈, 무엇이 문제인가?
타클라마칸사막과 고비사막의 황사가 봄바람을 타고 어김없이 우리를 괴롭히고 있다. 멈추는 곳까지 눈 안에 들어왔던 그 서울의 산야를 뿌연 안개 속에 깊게 가두는 날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과거의 황사는 알칼리 성분을 함유하고 있어 물과 토양의 산성화를 막아줘서 식물에 유익했다. 지금은 중금속과 발암물질 등의 미세먼지가 강한 바람에 섞여 인체에 해롭게 됐다.

이렇듯 자연의 황사가 있다면 인간 구성원들이 인위적으로 생성시키는 황사현상도 있다. 안개는 걷히면 말짱해진다. 황사는 안개와 달리 걷혀도 우리 몸속의 어느 장기에 탈을 낼지 몰라 겁이 나기 마련이다.

얼마 전 체육훈장 중에 최고의 훈장인 ‘청룡장’의 2014년 서훈 기준을 놓고 우리 사회는 양분됐었다. 일순간에 몰아치는 광풍처럼 지극히 우려되는 전경이었다. ‘김연아도 못 받는 청룡장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로 시작해서 ‘꼭 김연아이기에 법을 어기며 훈장을 줘야하는가?’라는 반론뿐만 아니라, 어느 정치인의 훈장 서훈의 급을 놓고도 설왕설래했다. 또한 박태환의 경우를 지적하며 관련단체의 오기를 비판했다. 더 나아가 실제 수상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수상자인 것으로 거명되는 실례를 범하기도 했다.

현실과 괴리된 정책안이 문제의 발단이었다. 서훈 기준을 상향 조정시키면, 실질적으로 수혜자의 수가 줄어든다는 문제점에 대한 보완책이 허술했다. 현실적으로 봐도 우리의 양궁과 쇼트트랙을 제외한 나머지 종목에서 청룡장을 받기는 지금의 제도로는 어려울 것이다.

달아오르는 여론을 허겁지겁 무마하기위해 정부는 특례조항을 들고 나왔다. 가산점을 적용해서 김연아에게 청룡장을 수여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촌극이 벌어졌다. 정부의 원안은 훈장의 영예(榮譽)성을 높이는 것은 물론, 비경기인에게도 수상의 기회를 넓히자는 것이 취지였다. 방향성은 옳았다. 경기장이 있어야 선수들이 자웅을 겨룰 수 있듯이 숨은 공로자의 노력도 동등하게 평가됐어야 했다. 좋은 입안을 놓고 시행에 따른 세밀하고 세련된 분석이 따라주지 못한 것이 병폐였다.

정부는 국민의 비난에 대해 겸허한 자세를 취하면서, 애초의 옳은 방향성과 취지에 대한 성의 있는 설득과정을 병행했어야 했었다. 손톱 밑의 가시를 뽑으려다 손톱마저 뽑게 될지 모르겠다. 여론의 함몰을 방지하면서, 다양성이 부족한 우리사회에 다시금 자정노력이 수반되도록 멀리 보는 백년대계가 필요했다. 만시지탄의 느낌이 든다.

역사책을 읽을 때마다 두려움이 엄습한다. 사가(史家)들은 어찌 이리도 야박할 정도로 옳은 일과 잘못된 일의 당사자를 만천하에 고지할까. 내 자신의 언행이 그래서 중요한 것인가. 국민도, 정부도 지금이 바로 역사의식에 대해 고민할 시점이 아닐까 싶다.

사막화현상을 방지하려면 꾸준한 식수(植樹) 작업이 필요하듯이 우리에게도 쏠림현상을 방지할 수 있는 자양분이 필요하다. 올바른 어른이 있어 그의 식견과 행위를 따르는 즐거움이 있으면 좋으련만 그런 어른이 쉬이 보이지 않으니….

aricom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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