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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헤럴드 포럼 - 이정> 사무직 근로시간 관리 어떻게 할 것인가
정부와 여당은 법정근로시간을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단축하는 법안 통과를 서두르고 있다. 일과 삶의 조화를 꾀할 수 있도록 근로시간을 단축하고 일자리는 나눠야 한다는 데 대해서는 노ㆍ사ㆍ정 모두 공감하고 있다. 문제는 법정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추가 비용을 누가 어떻게 부담할 것인가이다. 수혜자 부담 원칙에 따라 노사가 공평하게 분담하는 것이 맞다. 근로자는 근로시간 단축으로 저녁이 있는 삶을 영위할 수 있다면,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임금은 양보해야 한다. 하지만 과거 법정근로시간 단축 역사를 보면 근로시간이 단축된 만큼 근로자들의 소득이 줄어들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바 없다. 결국 기업은 근로시간이 단축된 만큼 생산성 향상을 통해 이를 보상하는 해법을 모색할 수밖에 없다.

현행 근로시간법제는 공장 생산라인의 블루칼라에 대한 근로시간을 관리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따라서 초과근로를 엄격하게 제한함과 동시에, 시간외 및 휴일근로에 대해서는 가산수당의 지급을 의무화하고 있다. 하지만 지식기반 경제사회에서 고용 형태가 복잡하고 다양화되고 있는 화이트칼라의 노동 가치를 근로시간만으로 평가하기에는 부적합한 면이 있다. 현행 법제는 근로시간과 임금이 연동되어 있기 때문에 같은 일을 능력이 모자라 장시간 근로에 종사하는 근로자가 유능한 직원보다 임금을 더 많이 받는 구조이다. 이러한 모순을 해소하기 위해 사무직근로자에 대해서는 근로시간법제의 적용을 배제하거나 탄력적으로 운용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도 근로시간 단축과 더불어 출퇴근 시간을 스스로 정할 수 있는 ‘선택 근로시간제’를 비롯해 업무의 변화에 효율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탄력 근로시간제’, 실근로시간을 산정하기 어려운 경우에 일정시간 근로한 것으로 보는 ‘간주시간 근로제’ 등을 도입해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제도는 근본적으로 정형 근로를 전제로 한 것이기 때문에 연구나 제품 개발과 같은 고도의 전문직이나 재량성이 큰 노동에 적용하기에는 태생적인 한계가 있다.

한편 미국은 공정 근로기준법에서 사무직 근로자에 대해 근로시간 규제의 적용을 배제하는 소위 ‘화이트칼라 이그잼션(White Collar Exemption)제도’를 도입하여, 유능한 인재의 능력을 활용하고 근로시간에 대한 합리적 운용을 꾀하고 있다. 일본도 노동기준법에서 ‘전문 업무 및 기획 업무’에 대한 재량근로제를 도입한 데 이어, 최근에는 미국식 화이트칼라 이그잼션제도를 일본의 고용환경에 맞도록 개선하여 입법을 시도한 바 있다. 우리도 다소 늦은 감이 있지만, 근로시간 단축과 함께 사무직근로자들에 대한 근로시간을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근로시간 단축과 유연화를 꾀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근로자 개개인의 근로시간에 대한 의식 및 직장환경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일과 가정을 양립하기 위해서는 현재와 같은 직장 중심의 생활에서 벗어나 가족공동체의 소중함과 사회 참여에 대한 가치관을 보다 중요시하는 환경을 조성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전제를 충족할 때 비로소 장시간 근로에 따른 저출산 및 고령화문제도 아울러 해결될 수 있으리라 기대된다.

이정 한국외국어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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