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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달지만은 않은 ‘苦3’…그들만의 초콜릿
폭행트라우마 · 스토커 · 성정체성…
청소년 눈높이서 본 성장통 포착
그들의 은어 · 거침없는 일탈 생생
“상처 입은 아이들 보듬고 싶었다”


어쨌든 밸런타인
/강윤화 지음
/창비
많은 사람이 학창시절을 봄에 비유한다. 이는 기억의 모난 부분을 마멸시켜 아름다운 추억으로 윤색하는 시간의 힘 덕분일 터이다.

가슴 아팠던 첫사랑, 수학여행에 몰래 가져와 마신 소주, 사소한 오해로 흔들린 우정 등 돌이켜 생각해보면 미소짓게 되는 추억이다. 그러나 그 추억은 당시에 마치 인생의 전부인 것처럼 심각했다. 학창시절을 봄으로 바라보는 청소년 소설의 시각은 어쩌면 독자인 청소년의 눈높이와 가장 동떨어져 있을지도 모른다.

제7회 창비청소년문학상 수상작인 강윤화 작가의 장편소설 ‘어쨌든 밸런타인’은 학창시절을 겨울로 그려내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이 작품은 성장과 갈등 해결이라는 기존 청소년 소설의 클리셰에서 벗어나 청소년이 느끼고 받아들이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담아내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지난 18일 서울 무교동의 한 식당에서 기자와 만난 작가는 “지난 서울시교육감선거 때 자신의 자식이 학교에 다니지 않는다는 이유로 투표를 하지 않는 주변 어른의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며 “모든 어른이 청소년기를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른이 된 이후에는 그 시절과 자신을 단절시키는 현실이 안타까워서 그 시절의 이야기를 청소년의 눈높이에서 담고 싶었다”고 말했다.

작품 속 여섯 주인공들은 겉보기와는 달리 저마다 가슴 속에 큰 고민을 안고 있다.

유현은 관심병 환자처럼 보이지만 어린 시절에 겪은 폭행으로 인한 트라우마를 안고 있다. 재운은 유현의 스토커로 놀림받지만 실은 위태로운 소꿉친구의 곁을 지키려 애쓰고 있다. 전형적인 모범생과 문제아인 홍석과 진석은 서로에 대한 애증으로 상처를 주고받는 쌍둥이 형제다. 다정은 학교생활에 열심이지만 주변에 자신의 존재감을 심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고 있다. 남학생하고만 붙어 다니는 이수는 성소수자다.

주인공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크고 작은 영향을 미치며 고등학교 3년이라는 3번의 겨울을 헤쳐 나간다. 초반에 헐거워 보였던 주인공들 저마다의 이야기는 후반부로 갈수록 유기적으로 결합해 한덩어리를 이룬다. 이 과정에서 작가는 어설프게 아는 척하거나 훈수를 두지 않고 그저 주인공들의 일상과 매 순간 그들이 느끼는 감정을 가감없이 펼쳐낸다. 각종 은어와 다소 수위가 높은 표현, 일탈에 대한 묘사는 작품에 생생함을 더한다.

작가는 “내 학창시절엔 친구와의 관계와 갈등이 가장 큰 문제였는데, 요즘 청소년은 입시라는 거대한 벽에 갇혀 제대로 갈등을 표출하지도 싸우지도 못하고 있다”며 “청소년이 입시를 위해 소모되고 있지만, 우리 사회는 입시 이후 청소년의 삶에는 관심이 없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전했다. 

강윤화 작가는 제7회 창비청소년문학상 수상작인 장편소설 ‘어쨌든 밸런타인’을 통해 학창시절을 봄이라는 계절에 비유하는 기존의 청소년 소설의 클리셰에서 벗어나 학창시절을 겨울로 그려내며 청소년이 느끼고 받아들이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담아냈다. [사진제공=창비]

퇴학을 당하기도 하고 번듯한 대학에 진학하지도 못하는 등 주인공들의 졸업식 풍경과 진로는 그리 밝지 않다.

밸런타인데이에 열린 졸업식에서 주인공들은 초콜릿을 받아들고 학교를 떠난다. 초콜릿의 달콤쌉싸래한 맛은 종종 어른의 맛으로 묘사된다. 졸업식을 마치고 청소년기를 막 벗어난 주인공들이 받아든 어른의 맛은 의미심장하다. 지독히 현실적으로 묘사된 졸업식 풍경 속에서 다정이 남긴 “앞으로 갔든 뒤로 갔든 제자리걸음은 아닐 것”이라는 말은 초콜릿의 달콤쌉싸래한 맛과 어우러져 가슴 먹먹한 감동을 선사한다.

작가와 동석한 오세란 문학평론가는 “ ‘완득이’ 이후 유쾌하고 명랑한 청소년 소설이 붐을 이뤘는데, 이 작품은 상처 입은 아이들을 주목하고 도닥이는 진지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의미있다”고 호평했다.

이번 작품은 작가의 첫 장편소설이자 첫 청소년 소설이다. 작가는 “청소년이 입시를 위한 존재가 아니라 앞으로 이 사회에서 어른과 함께 살아나갈 사람들이라는 걸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앞으로 청소년과 성인이라는 한정된 영역의 독자를 겨냥하기보다 많은 사람이 읽을 수 있는 작품을 만들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정진영 기자/123@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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