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주례보다 축가 단골…老眼 전문醫 또 하나의 인생
박영순‘아이러브 안과’원장

성가대하다 아내 권유로 성악 입문
병원 끝나고 정식 레슨 9년째
협연 · 독주회 통해 사회공헌 실천도

3년전부터는 복싱 “맞을만한 실력”
지난 주말 한 · 일복싱전서 애국가 제창



한국의 이재성과 일본의 와타나베 타쿠야 선수의 동양타이틀 전초전이 있던 지난 16일 오후 2시 서울 관악구민종합체육센터 특설링. 경기장에 묵직한 음색의 애국가가 울려퍼지고 1500석을 가득 매운 경기장은 우레와 같은 박수소리로 가득 찼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국내 노안수술의 권위자인 아이러브 안과의 박영순(61) 원장. 이재성 선수의 라섹수술을 직접 집도한 인연과 전 세계챔피언 유명우 씨의 요청으로 이날 애국가 독창에 나선 것이다.

경기 사흘 전인 지난 13일 오후 6시께 신사동 박 원장의 병원에서 그를 만났다. 하늘색 두건과 마스크를 벗어든 박 원장은 소년 같은 웃음으로 취재진을 맞았다. 익살을 머금은 아이의 얼굴, 꿈을 꾸는 소년 같은 인상이다. 맑은 얼굴의 비결을 묻자 그는 망설임 없이 “노래 덕”이라고 대답한다.

“노래 때문에 제 삶이 훨씬 풍요로워졌어요. 노래를 듣고, 그 노래를 부르고 있으면 응어리진 마음이 다 내려가는 것 같아요. 일을 하면서 알게 모르게 쌓이는 스트레스가 있는 모양입니다. 노래가 없다면. 글쎄요, 지금쯤 술ㆍ담배에 찌든 의사가 돼 있지 않을까요.”

인천시립교향악단 첼리스트였던 부인 이인실 씨의 권유로 9년 전 시작한 성악이다. 성가대에서 찬송가를 부르던 그에게 부인 이 씨는 “당신 목소리 꽤 좋다. 정식으로 배워보지 그러냐”고 성악 배울 것을 권유했다. 그렇게 시작한 성악. 중앙대학교 예체능 계열 부총장까지 지낸 처형 이연화 교수까지 나서서 그를 도왔다. 안 원장은 처형의 소개로 바리톤 이재환 중앙대 음대 교수에게 정식으로 성악을 배우기 시작했다. 오후 7~8시 병원일이 끝나면 곧바로 레슨을 받으로 달려갔다는 박 원장. 

2010년 11월 27일 몰도바 오케스트라와 함께 어려운 백내장환자 돕기 자선음악회에서 독창을 하고 있는 박영순 원장. [사진제공=아이러브 안과]

“음악을 듣고, 노래를 부르는 것이 그렇게 좋을 수 없어요. 악보를 제대로 읽기 위해 이탈리아어와 독일어도 배웠습니다. 부인에게 혼도 많이 났어요 ‘당신 노래 이것밖에 못해. 그럴려면 하지마’라며 부인의 타박까지 견뎌야 했으니깐요. 성악을 본격적으로 배우고 한 5년쯤 지나니 부인이 ‘이제 들어 줄 만하네’ 그래요. 허허.”

대한아마추어성악동호회, 데뮤즈, 벨칸토 등의 회원으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박원장. 그는 2006년 12월 처음 독창회를 가진 후 2010년 국내 순회 공연 중인 러시아 몰도바 오케스트라의 초청으로 협연을 가지는 등 최근까지 총 4차례의 독창회를 가졌다.

목소리도 한결 아름다워졌다. 이탈리아 베르디음악학원의 한 교수는 그의 음색에 대해 “다른 성악가들의 목소리가 플라스틱으로 만든 샹들리에라면, 당신이 목소리는 ‘크리스털로 만든 샹들리에’라고 극찬하기도 했다.

“처음 독창회 무대에 섰을 때는 너무 얼떨떨했어요. 처형인 이연화 교수가 피아노 반주자로 나섰는데, 그때는 연주자가 너무 훌륭했다는 기억밖에 나지 않아요. 마술피리에 춤추는 코브라처럼, 그렇게 노래를 불렀죠. 무대에 많이 섰어요. 직원들 앞에서, 각종 모임 앞에서 노래를 부르다 보니 이제는 노래 부르는 것이 어느 정도 익숙해졌습니다.”

여느 성악가와 마찬가지로 그의 일상은 성악가의 것이 됐다. 하루도 노래를 거르는 날이 없었다. 직원들이 퇴근을 하고 난 뒤에는 수술실에 들어가 가운을 입은 채 노래를 불렀고, 집에서는 부인 앞에서 노래를 시험 치르듯 부르기도 했다. 곧 이사할 병원에는 소극장 같은 연주실도 마련해뒀다. 목소리를 관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출퇴근길에 길에서도 노래를 불러요. 사람들이 가끔 돌아서기도 하는데, 뭐 ‘목소리가 나쁘지 않으니’ 미친 사람 처다보듯 하지는 않더군요. 관리를 하기 위해서 목에 좋다는 도라지 차, 은행을 즐겨 먹습니다. 특히 보신탕이 목에 좋다는 소리를 들은 뒤 1년을 먹었어요. 목이 좋아진 기분이 들기는 하던데, 피검사를 하고 나니 콜레스테롤이 너무 높아져 있어요. 절제해야 된다고 생각하고 그 뒤로는 잘 안 먹습니다. 허허.”

취미 수준을 넘어서는 노래솜씨 덕에 결혼식 축가 요청도 많이 들어온다. 특히 그는 결혼을 앞둔 직원들의 요청은 거절 하는 법이 없다. 4명의 직원들 결혼식에서 노래를 불렀다. 60이 넘었는데, 주례사를 해 달라는 요청은 안 들어오고 축가 요청만 들어온다며 웃는다.

사실 박 원장에게는 성악 말고도 취미가 하나 더 있다. 복싱이다. 지난 16일 한ㆍ일 복싱전에서 애국가를 부르게 된 것도, 복싱을 하면서 맺게 된 인연 때문이다. 박 원장은 3년 전부터 인근 체육관에서 복싱을 배우고 있다. 


“제가 사실 214기 공수특전단 출신이에요. 특전단에 들어가면 운동을 원없이 시켜준다기에 군의관을 그쪽으로 지원했어요. 운동을 원없이 했어요. 의사가 된 뒤에는 조깅, 골프를 주로 했지요. 골프는 친구들이 끌고 가서 했는데 저는 별로였어요. 카트 타고 움직이고, 내기하고, 제가 사업가는 아니잖아요. 음악을 하면서 골프를 끊었어요. 조깅ㆍ등산 등을 하면서 뭘 할까 고민하던 중에 복싱을 선택하게 된 거에요.”

매주 두 차례씩 병원 인근 체육관에서 그는 몸을 푼다. 박 원장은 아직 대전 경험은 없지만 스파링 연습은 많이 했고, 장난이 아닐 정도로 맞아도 봤다고 웃으며 말한다.

“복싱은 노래와도 연관이 있어요. 복근이 성악을 하는데 있어 큰 역할을 하거든요. 뭐 굳이 노래 때문에 복싱을 배우게 된 건 아니지만요. 사실 주위에 흉흉한 이야기도 많이 들리고 해서 내 가족, 내 몸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도 컸어요. 운동을 할 때는 정말 열심히 해요. 3분 동안 링 위에서 온 에너지를 다 쏟고 나면 ‘인생 뭐 있나’라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실력이요? ‘맞을 만한 실력’이라고 해두죠. ”

출퇴근길 목청 높여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섀도 복서로 변해 거리에서 ‘훅훅’거리기도 한다는 박원장. 60대의 나이에도 그가 청년의 미소를 지을 수 있는 것은 그의 취미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김태열ㆍ박병국 기자/cook@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